보물로 지정된 여러 점의 안중근 유묵 중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청초당(靑草塘)’,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爲將義務)’이다. 여순감옥에 사형수로 있으면서 많은 이에게 글씨를 남겼는데 상당수가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이토히로부미의 암살과 그 이후로 보인 그의 행적은 당시의 국제정세와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보물)는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씨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왼쪽 아래에 있는 인장대신 찍은 안중근 의사의 장인이 인상적이다.
안중근의사가 남긴 글씨로 만주의 여순감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순국할 때까지 쓴 200여점의 글씨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열자인데,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힌다”라는 뜻이다. 이 작품은 보물 569호로 일괄 지정된 스무점의 유묵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다. 필제가 매우 단정하고 흐트러짐이 없으며 획마다 힘이 느껴져 정렬한 최후를 앞둔 안중근 의사의 굽힐 줄 모르는 강인한 의지와 충혼이 전해지는 듯하다. 특히 왼쪽 하단에는 “大韓國人 安重根 書”라고 쓰고 혈서로 인해 손가락 한 마디가 없는 장인을 인장으로 대응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안내문, 동국대박물관, 2010년)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청초당(靑草塘)’이다. 푸른풀이 돋는 언덕(연못의 제방)이라는 뜻으로 1910년 3월 순국하기 직전 여순감옥에서 쓴 유묵이다.
안중근 유묵 – 청초당, 보물
‘청초당(靑草塘)’은 푸른 풀이 돋는 언덕(연못의 제방)이라는 뜻으로 1910년 3월 여순감옥에서 쓴 유묵이다.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청구(靑丘)’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 안중근 의사의 애국정신을 느낄 수 있다. 민병기 씨가 선대부터 소장하였던 것을 기증하였다. (안내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2012년)
안중근 유묵 – 임적선진 위장의무, 보물
‘임적선진 위장의무(臨敵先進爲將義務)’는 적을 만나 앞장서는 것은 장수된 자의 의무라는 뜻으로 군인 본분을 강조한 글로 1910년 3월 여순감옥에서 쓴 유묵이다. 순천 거주 전지훈의 소장품이었으나 대한제국 최초 함정 양무호의 함장 신성순의 손자인 신용극씨가 구입하여 기증하였다. (안내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2012년)
<출처>
- 안내문,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2012년
- ‘안중근 의사 유묵’,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