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농암종택’이다. 농암 이현보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종택이다. 건물은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와 별당에 해당하는 긍구당, 명농당이 있다. 낙동강이 집앞을 흐르고 있는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건물 중 긍구당은 입향조 이헌이 고려 후기에 건축한 건물이라고 하며, 다른 건물들은 대체로 후대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당에는 불천위 조상으로 농암 이현보를 모시고 있어 ‘농암종택’이라 부른다.
별채로 사용하고 있는 긍구당은 안동 입향조인 이헌이 고려후기에 처음 지은 건물이다. ‘ㄴ’자형 을 하고 있는 건물 외형은 충남 아산의 맹사성 고택에서 볼 수 있는 조선초기 건축 양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면서 다른곳에 옮겨졌다가 2007년 이곳으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긍구당
긍구당은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문신인 농암 이현보(1467~1555) 가문의 종택에 속한 별당이다. 이 건물은 원래 영천 이씨 집안의 안동 입향조인 이헌이 고려 후기에 처음 건축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용도로 사용하였다. 이현보 당시에 너무 낡은 상태였는데 아들 이문량이 다시 고쳐지었다. 본래 도산면 분천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67년 도산면 운곡리로 옮겼다가, 농암 유적지를 정비하면서 200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다시 지었다. 현재 농암 종택의 서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종택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긍구당이라는 이름은 이현보가 <서경>의 한 구절에서 취해 지은 것으로, 여기에는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훌륭한 업적을 소흘히 하지 말고, 오래도록 이어받으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면에 걸린 현판의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신잠이 썼다. 긍구당은 ‘ㄴ’자형의 건물로, 기단을 2단으로 높게 만든 후 건물 전면에 누마루를 두고, 뒤에는 온돌방과 마루를 둔 구조로 되어 있다. (안내문, 안동시, 2024년)
종택 왼쪽 뒷편에는 ‘명농당’이라는 별채 건물이 있다. 농암이 1501년 낙향하면서 지인 집이라고 하는데, 후대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명농당
1501년 농암 44세, 고향에 ‘명농당’이라는 조그만 집을 짓고 벽 위에 ‘귀거래도’를 그렸다. 그리고 4년 뒤 49세에 잠시 휴가를 얻어 명농당에 들러 시를 써서 붙이고 다시 한 번 귀거래의 의지를 다졌다. 그렇지만 아직 부모님이 계시니 그만둘 수 없다고 했다. 1542년, 농암은 드디어 임금의 만류를 뿌리치고 정계를 은퇴했다. 어버이가 모두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임금은 친히 접견하고 ‘금서띠’와 ‘금포’를 하사했다. ~ 생략 ~ (안내문, 안동 농암종택, 2024년)
종택 뒷편에는 농암 이현보를 기리기 위해 세운 ‘분강서원’이 있다.
농암종택(1370년 ~ )
농암종택은 농암선생이 태어나고 성장한 집이며, 직계자손들이 650여년을 대를 이어 살아오고 있는 집이다. 최초 이 집을 지은 분은 영천이씨 안동입향시조 이헌으로, 선생의 고조부이다. 군기시소윤 벼슬을 했다. 고려말 영천에서 서울로 내왕하다가 이곳 산수를 사랑하시어 그대로 복거하였다. 자손들은 이분으로부터는 23세손, 선생으로부터는 18세손까지 내려왔다. 농암선생이 ‘불천위’로 모셔졌기에 ‘농암종택’으로 부른다. 종택은 2,000여 평의 대지 위에 사당, 안채, 사랑채, 별채, 문간채로 구성된 본채와 긍구당, 명농당 등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긍구당’은 1370년 전후, 이헌이 지은 건물이며, ‘명농당’은 1501년 선생 나이 44세 떄 귀거래의 의지를 표방하고 지은 집으로, 벽 위에 ‘귀거래도’를 그렸다. ~ 생략 ~ (안내문, 안동 농암종택, 2024년)
<출처>
- 안내문, 안동시청, 2024년
- 안내문, 안동 농암종택, 2024년
- ‘긍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