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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월천서당, 조목이 후학양성을 위해 세운 서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월천리에 있는 ‘월천서당(月川書堂)’이다. 조선시대 고위관료를 지낸 인사나 학자들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퇴계의 제자로 유일하게 도산서원에 모셔진 월천 조목(1524~1606)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퇴계가 세웠던 도산서당이나 같은 제자인 유성룡의 병산서원, 김성일의 임천서원과 비슷한 기능과 위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임천서원이나 병산서원과는 달리 서원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안동 월천서당>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단촐한 규모를 하고 있다. 가운데 2칸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양쪽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옆에서 본 모습>

조목(1524 ~ 1606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퇴계 이황의 제자로 공조 참판 등을 역임했다. 생활이 빈곤하였으나 학문에만 전념하여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퇴계의 제자 중 병산서원과 임천서원에 따로 모셔진 유성룡과 김성일과는 달리 유일하게 도선서원에 모셔졌다. 퇴계 이황이 ‘월천서당’이라 적힌 현편을 직접 써 주었다고 한다.

<현판이 걸린 오른쪽 온돌방>
<건물 왼쪽>
<옆에서 본 모습>
<아래에서 본 모습>

월천서당 뒷편으로는 ‘팔우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고 서당 앞 왼쪽에 ‘월천선생구택’이 있다. 두 건물 모두 최근에 복원해 놓은 건물이다. 오른쪽 앞에는 재실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다.

<팔우정>
<월천선생구택>
<재실로 보이는 건물>
<월천서당 앞을 흐르는 낙동강>
<안동 월천서당>

월천서당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월천 조목이 중종 34년(1539)에 세워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조목은 퇴계 이황의 제자로, 명종 7년(1552)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의병을 모집하여 망우당 곽재우와 합세하여 국낙극복에 앞장섰다. 특히 조목은 벼슬을 사양하고 학문 연구에만 매진한 대학자로 존경받았다. 조목의 위패는 퇴계 이황의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에 모셔졌다. ‘월천서당’이라는 현판은 퇴계 이황이 썼으며, 마루 오른쪽 벽면 중앙에는 성산 이묵재의 글씨로 ‘날마다 바르게 사는 집’이라는 뜻이 ‘시재是齋’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안내문, 안동시청, 2024년)

<출처>

  1. 안내문, 안동시청, 2024년
  2. ‘월천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4년
  3. ‘조목’, 위키백과,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