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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물걸리 사지, 홍천강 교통 요지에 있는 절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동창로에 있는 “홍천 물걸리 사지” 절터이다. 이곳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나 홍양사라는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이곳에는 석탑과 석조불상 등 5점의 보물이 남아 있으며 발굴조사 결과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 고려시대 철불 파편, 암막새와 수막 등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강원도 동해안에서 한강하류 서울로 연결되는 교통로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신라 때 군사조직이 주둔했던 교통요지에 있었던 대형사찰로 추정된다. 지금도 절터 옆으로 서울과 양양을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다.

<홍천 물걸리 사지>
<위성사진>

삼층석탑(보물)은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 놓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삼층석탑이다. 전체적인 구성이나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나 정향화된 통일신라 후기 석탑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홍천 물걸리 삼층석탑 (보물)>

현재 남아 있는 절터 규모는 크지 않으나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결과 금당터 등이 확인되었으며 화강석 석재, 기와 등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삼층석탑 뒷편 건물터>
<삼층석탑 동쪽 건물터>
<화강석 석재들을 모아 놓은 곳>
<뒤에서 본 절터>

절터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석조대좌(보물),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삼층석탑 등 보물 5점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보호각 건물에 모아 놓았다.

<보호각>
<내부>
<석조여래좌상(보물)과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은 석조대좌 위에 올려져 있다.머리에 소라모양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그 위로 상투모양 머리묶음이 솟아 있다. 얼굴은 풍만하지만 턱이 뾰족하고 단정한 느낌을 주고 있다. 손은 지권인(智拳印) 수인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을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천 물걸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석조여래좌상”(보물)은 얼굴은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으며 머리에는 상투모양의 육계가 있다. 손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어 석가여래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에 비해 평면적이며 왜소한 느낌을 주고 있다. 

<홍천 물걸리 석조여래좌상(보물)>

석조대좌(보물)는 광배와 대좌만 남아 있는데 그 중 대좌는 원형의 잘 보존되어 있다. 머리광배는 없어지고 몸광배만 남아 있다. 광배 안쪽에는 덩툴무늬를,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보물)>

석조대좌 및 광배는 불상은 없지만 광배와 석조대좌가 온전히 남아 있다. 배모양의 광배는 전체에 걸쳐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안쪽에는 화려한 넝쿨무늬가, 바깥쪽에는 불꽃무늬가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대좌는 8각형 평면에 상대, 중대, 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홍천 물걸리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석조대좌 받침돌 부재>
<석조광배 조각>
<문화재 표지석>

절터는 홍천강과 내촌천이 합류하는 교통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 때 군사조직이 주둔했던 군사 요충지였다. 지금도 고속도로가 절터 옆으로 지나가고 있다.

<마을에서 본 절터>

삭주의 물길과 거대 사찰
수운이 편리한 곳에 사찰이 세워져 문물을 교류하는 장소의 역할도 겸하였습니다. 홍천 물걸리 절터는 홍천강과 내촌천이 합류하여 동해안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이 됩니다. 원주 법천사와 거돈사 인근은 배들이 선단을 이루어 지나다니던 남한강의 주요 뱃실로 인파가 모이고 물자가 집중되는 곳이었습니다. 수로와 육로가 이어지는 곳에는 이처럼 거대 사찰이 들어서는 한편, 만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나루를 중심으로 도진촌이 발달하였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국립춘천박물관에서는 이곳에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 고려시대 철불파편, 철쇄파편, 암막새, 수키와 조각, 암키와 조각, 청자조각, 토기 조각, 조선시대 백자 조각 등이 있다.

<부처, 홍천 물걸리 절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대좌, 홍천 물걸리 절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사다리꼴 기와>
<치미 조각>
<부처>
<부처>
<부처>
<풍탁>
<암막새>
<암막새>
<철불>
<벽돌>
<글자를 새긴 기와>
<수막새>
<글자를 새긴 기와>
<글자를 새긴 기와>
<수막새>
<수막새>

홍천 물걸리 절터 기와
절터에서 나온 8세기 중엽의 보상화문 수막새는 신라 왕경의 동궁과 월지 수막새 문양과 유사합니다. 오리를 표현한 암막새 역시 신라의 쌍조문 전통을 이은 모습입니다. “王”등의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기법상 고려시대 초로 추정됩니다. 통일신라 군사 조직인 벌력천정이 주둔했던 군사 요충지이자, 홍천강을 따라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에 물걸리 절터와 같은 대형 사찰이 들어섰습니다.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홍천 물걸리 사지
이 절터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으나, 홍양사가 있었던 곳으로 전한다. 절터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석조대좌(보물), 석조대좌 및 광배(보물), 삼층석탑 등 보물 5점이 보관되어 있다. 1967년에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여래입상을 비롯한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확인되었고, 절터에는 여러 석재들을 모아 놓았다. 또한 2003년과 2015년에 절터 일부를 발굴하고 조사하여 금당지의 일부가 확인되기도 하였다. 1982년에 현재의 보호각을 새로 짓고 이곳에 불상을 옮겨 보존하고 있다. (안내문, 홍천군, 2024년)

<출처>

  1. 안내문, 홍천군, 2024년
  2. 안내문, 춘천박물관, 2023년
  3. “홍천 물걸리 사지”,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