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 중 한반도 동남부에 존재했던 변한을 계승한 가야연맹체는 국가체제를 갖추었던 고구려.백제.신라와는 달리 연맹체국가 형태를 유지하였다. 가야연맹체는 한.중.일 해상교역로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고, 지역에서 생산되는 철을 기반으로 상당한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연맹체는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높은 온도의 밀폐가마, 고속 회전 물레 등 발달된 토기 제작기술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며 회청색의 아주 단단한 토기를 만들었다. 높은 기술수준과 조형미를 갖춘 가야의 토기는 곡선적인 다리를 가진 굽다리접시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침이 특징적인데 연맹체 국가답게 지역별로 다양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슴이 붙은 구멍단지로 제사나 각종 행사에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에게 사슴은 신령스러운 동물이었다. 사슴은 특히 시베리아 지역에서 신성시 여겨지는 동물로 샤머니즘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단지의 아가리 아래쪽에 사슴 두 마리가 나란히 장식되어 있다. 몸체는 밑이 둥근 공 모양이며 중앙 한 쪽에 구멍이 뚫려 있다. 몸체 위에는 넓게 벌어진 깔대기 모양의 아가리가 붙어 있다. 사슴의 뿔은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어 있다. 사슴은 고대 북방 아시아의 여러 민족이 신성시한 동물로, 이를 숭배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가야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굽다리에 가야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상하 일렬의 사각형 구멍이 뚫려 있는 굽다리 접시이다. 단추 모양의 꼭지가 달린 뚜껑이 얹혀 있어 한 세트를 이룬다. 김해 지역 금관가야의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대성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된 토기로, 5세기대 가야 지배층의 세련된 토기 문화를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굽다리 위에 말 또는 사슴과 같은 모양의 장식을 올린 뒤, 짐승의 등에 뿔잔을 붙인 형태이다. 뿔잔의 끝부분은 고사리 모양으로 말려 있어 조형미가 느껴진다. 뿔잔은 삼국시대 경주.김해.부산 등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많이 확인되는데, 굽다리 형태가 곡선적인 것으로 보아 가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의례 등의 행사 때 음료나 술을 담는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은 금관가야 무덤들로 길이 약 300m, 높이 20m 정도의 낮고 경사가 완만한 구릉에 자리잡고 있는데 다른 가야 고분과는 달리 봉분을 크게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 결과 1~5세기에 조성된 무덤들로 평지에는 1~3세기 무덤이, 구릉 정상에는 4~5세기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출토 유물로는 토기류와 철기류, 중국제 거울, 북방계 말갖춤, 방패형동기, 호랑이모양 띠고리, 청동솥 등이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은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고령의 서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능선부를 따라 수십기의 대형무덤이, 아래쪽에는 중.소형 무덤이 분포되어 있다. 무덤은 외형상 원형봉토분이며, 내부구조는 돌널무덤,동덧널무덤,돌방무덤으로 되어 있다. 수백기의 무덤이 모여 있어 가야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그중 봉분이 큰 것은 72기가 있다. 여러명이 같이 묻혀있는 무덤들이 발견되어 당시 순장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형태의 토기를 비롯하여 금동관.갑옷, 투구, 칼, 꾸미개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금관가야와 대가야
<삼국유사>에 따르면, 42년에 하늘에서 여섯 개의 황금알이 구지봉에 내려왔다고 한다. 이 알 속에서 여섯 아이가 태어났고, 그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를 수로라고 불렀다. 수로는 그 해 왕위에 올라 금관가야를 세웠고, 나머지 다섯 알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각각 여러 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의 산신인 정견모주가 낳은 두 아이가 각각 대가야와 금관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전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다채로운 문화를 번영시키다.
가야는 여러 거점 지역을 중심으로 작은 나라들이 공존했다. 이 나라들은 수백 년이 긴 시간 동안 서로의 문화를 공유하고 존중하면서 각자 개성 있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러한 문화적 특색은 토기와 무덤에서 잘 드러난다. 토기는 부드러운 곡선미를 강조하며 굽다리접시.긴목항아리.그릇받침 등과 같이 여러 종류를 만들었는데, 지역마다 다른 형태와 무늬로 토기를 장식했다. 무덤은 높은 구릉에 만들고 많은 껴묻거리를 시신과 함께 묻는 풍습은 같지만, 무덤의 구조나 널의 형태와 배치, 순장 방식 등에서는 각자의 특색을 갖고 있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0
가야 토기는 곡선적인 다리를 가진 굽다리접시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받임이 특징적인데 높은 온도에서 구워 대체로 밝은 회청색을 띠고 있다. 3세기 후반 금관가야(김해 일대)에서는 물결무늬가 새겨진 화로 모양의 그릇받침과 입술이 바깥으로 꺾인 굽다리접시, 그리고 두귀가 붙은 항아리가 등장한다.
단단한 토기의 등장
가야는 3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토기 제작 기술을 활용하여 이전보다 단단한 토기를 생산했다. 토기를 만들 때 물레를 빠르게 돌려 모양을 만들고 표면을 매끄럽게 했다. 또한 1,000 ~ 1,200℃ 정도의 높은 온도로 밀폐된 가마에서 구워 매우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가야의 토기는 대부분 짙은 회청색을 띤다. 한편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뜨거운 불의 힘으로 반질반질 윤기가 도는 자연유가 생겨 도자기같이 광택이 나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깨와 꼭지 두 개가 달린 항아리 형태로 만들었다가 점차 다양한 모양의 토기들을 제작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각양각색의 지역별 토기
가야의 토기는 지역마다 형태와 특징이 다르다. 금관가야는 아가리가 밖으로 꺽인 굽다리접시와 손잡이가 달린 화로 모양 토기가 대표적이며, 아라가야는 볼꽃모양의 굽구멍이 뚫린 굽다리접시가 대표적이다. 대가야는 굽다리접시가 가로로 넓고 납작하여 안정감을 주며, 원통형 그릇받침에는 뱀이나 고사리 모양과 같은 긴 띠가 세로로 붙는 것이 특징이다. 소가야의 경우 그릇받침과 항아리의 아가리 끝이 수평으로 꺾여 벌어진 것이 특징이다. 비화가야는 그릇 뚜껑에 애벌레 무늬가 장식되며, 접시는 얕은데 비해 굽다리가 굵은 굽다리접시가 많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가야가 남겨놓은 많은 고분들에서는 부장품으로 각종 유물들을 남겨 놓고 있는데, 철제무기류와 함께 가야를 상징하는 유물로 다양한 모양의 상형토기를 들 수 있다. 인물이나 기물 등을 본떠서 만든 토기인 상용토기는 가야와 신라지역에서만 주로 출토되는 유물로 수레.배.집 등의 토기에서는 당시 가야인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며, 각종 동물모양의 토우에서는 그들의 사후관이나 정신세계를 추론해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도 바퀴모양토기를 가야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각배라고도 하는 뿔모양의 잔에서는 중앙아시아와의 교류관계를 보여주는 등 다양한 문화교류의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둥글고 큰 수레바퀴를 뿔잔의 양 옆에 붙여 만든 것으로 무덤에서 출토된다. 영혼을 나르는 의미로써 제사 등의 의례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닥이 높게 설치된 집 형태로 가로와 세로로 이어진 지붕과 출입문이 표현되어 있다. 낙동강주변 주남저수지 부근에 있는 다호리지역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삼국시대 창고인 부경의 구조를 알 수 있다.
다리접시의 받침 부분 위에 집신과 잔을 붙인 형태이다. 넓은 밑판과 여러 갈래의 줄로 연결된 짚신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생동감 넘치는 상형토기
상형토기는 사람.동물.사물 등의 형태를 본떠 만든 토기를 말한다. 가야의 상형토기는 집.배.짚신 등의 사물이나 새.말.사슴 등 동물을 본뜨고 장식한 것이 많다. 대부분 무덤에서 발견되는데 속이 비었거나 뿔잔이 달린 것들도 있다. 이러한 상형토기는 음료나 술을 담아 장례 의식에 사용한 후 무덤에 함께 묻은 것으로 보인다. 상형토기는 가야 사람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보여준다. 또 사후 세계의 안식을 바라는 가야 사람들의 염원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영혼의 길잡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담겨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가야의 상형토기, 철제무기와 더불어 무덤의 부장품으로 많이 묻혀 있던 유물이 금.은.옥으로 만든 꾸미개이다. 가야의 꾸미개로는 지배층의 권위를 나타내는 금동관을 비롯하여, 귀걸이.팔찌.목걸이 등도 다양한 종류의 꾸미개들이 출토되고 있다. 가야의 관은 신라의 것과는 다르게 풀꽃모양의 세움장식을 하고 있으며, 왕이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귀족계층에서 사용한 것인지는 알려지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합전 옥전 M4호분 출토 금귀걸이'(보물)이다. 대가야 지배층 무덤인 합천 옥전고분군(사적) M4호 무덤에서 출토된 한쌍의 금귀걸이다. 가야의 긴 사슬장식 금귀걸이 중 화려하고 보존상태과 양호하다. 5세기 가야를 대표하는 유물로 당시의 금속공예 수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련된 장신구
가야 사람들은 다양한 공예 기법으로 장신구를 세련되게 만들었다. 거푸집을 쓰거나 표면을 두드려 둥글고 가는 형태를 만들고, 무늬를 새기거나 금과 은을 입혀 장식했다. 가야의 장신구에는 관.귀걸이.목걸이.팔찌 등이 있다. 가야의 관은 고령 지산동 유적에서 출토된 풀꽃모양 세움 장식이 있는 금관과 광배 모양 세움 장식이 달린 금동관이 대표적이다. 귀걸이는 주된 고리가 가늘고 중간 장식이 둥글다. 귀걸이 끝에는 샃니자 모양이나 나뭇잎 모양의 장식이 달린 것이 많다. 이와 더불어 유리.수정.마노와 같은 광물을 가공해 만든 구슬 목걸이가 많은 것도 가야 장신구의 특징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24년)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2024년
-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