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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대법원청사, 서울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대법원 청사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위치한 구 대법원청사이다. 이 건물에 일제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법원 건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지하1층, 지상3층의 근세 고딕풍 건물로 철근콘크리이트조와 벽돌조 구조에 화강석과 갈색타일을 붙여 외벽을 장식하고 있다. 중앙계단을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中庭)이 좌우대칭을 하고 있는 日자형 평면배치를 하고 있다. 아치형 포치(Porch)가 돌출된 현관을 비롯하여 전체적으로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권위주의적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는 건물이다.

<구대법원청사>

일제강점기에 법원청사로 지어진 건물로 1995년 서초동으로 이전할때까지 대법원청사로 이용되었다. 지금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왼쪽에서 본 모습>

건물은 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3개의 아치가 있는 포치(Porch)현관을 두고 있다. 일제강점기 공공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건물 외장과 창호>

건물 외장은 화강석과 갈색타일을 붙였으며, 아치모양의 창문을 두고 있다.

<현관 포치>

현관 내부로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현관 내부에서 본 청사 앞 마당>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건물 내부>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전면부를 제외하고는 새로 신축한 건물이다.

<미술관 1층>

건물내부가 원래 건물 형태와 완전히 다른 구조를 하고 있다.

<중앙로비와 계단>

중앙 로비가 3층까지 완전히 개방되어 있어 넓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2009년 르느와르 특별전이 열렸을 때의 모습>

<내부 통로>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은 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미술관이다. 세계적인 걸작들이 순회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가장 선호하는 공간인 것 같다.

<2층 전시실 입구>

<미술관 3층 휴게실>

<구대법원청사 앞 마당>

숲으로 가려져 있지만 덕수궁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이다. 마당 앞 숲에는 야외조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구 대법원청사, 등록문화재, 1928년, 서울 중구 서소문동
이 건물은 1928년에 지어진 경성재판소 건물이다. 그 자리는 조선말 개화기 때 평리원(平理院, 한성재판소)이 세워졌던 곳이다. 이곳은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대법원 청사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은 지하1층, 지상3층으로 근세 고딕풍으로 지은 것이다. 뾰족 아치가 아닌 반원형 아치를 사용함으로써 장중함을 더하고 있다. 이 건물은 철근콘크리트조와 벽돌조 구조에 화강석과 갈색타일을 붙였다. 건물의 평면은 日자로 만들었는데, 중앙계단과 연결통로를 중심으로 정사각형의 중정(中庭) 두개가 있어 좌우대칭을 이루었다. 법원 단지가 이전된 후 서울시가 이 건물을 인수하여 서울시립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개조공사를 하였다. 공사 중 구조적으로 약화된 부분들이 드러나 정면의 벽판만 보존하고 나머지 부분은 철거하여 새 건물을 이어 지었다. 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 보존 방법 중의 하나인 정면보존 방법의 사례이다. <출처:문화재청>

법원과 관련된 일화가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서 걸어가다 보면 분수가 있는 삼거리가 있고, 그 남쪽편 언덕에 고딕풍의 오래된 건물인 구대법원청사 건물이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김장생, 이황 등 유명인사들이 살았던 곳으로 구한말에는 육영공원, 독일영사관, 독립신문사옥 등이 자리잡았던 유서깊은 곳이다. 구한말 사법기관인 평리원(平理院: 한성재판소)이 이곳에 자리잡으면서 1995년 대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사법부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다. 대법원 이전 이후 건물구조 등의 문재로 전면부를 남겨놓고 리모델링하여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도심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는 접근성 등의 장점으로 다양한 해외 걸작들의 순회 전시를 위한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구대법원청사가 자리잡고 있는 언덕>

덕수궁 동남쪽 나즈막한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주변에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등기소 등 공공기관이 많이 자리잡고 있다. 원래 대법원과 관련된 공공기관들이 들어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대법원청사 오르는 길>

원래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이었겠지만 지금은 숲속길로 탈바꿈했다.

<구대법원청사>

청사는 언덕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건물 외형에서도 일제강점기 공공기관 건물에서 보여주는 위압적이면서 권위적인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는 구한말 근대적인 사법기관인 한성재판소가 들어선 이래 법조타운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 티켓박스>

<배재학당 앞 정동길로 나가는 길>

<청사 마당과 정원>

퇴계 이황 집터, 김장생(金長生)의 생가터 등 권문세가들의 저택이 있었던 유서깊은 자리이다. 이 곳에 구한말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을 비롯하여, 독일영사관, 독립신문 등이 자리잡기도 하였다. 정원에는 현대 미술 조작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앞 마당에 전시된 작품>

<숲의 수호자, 최우람 작, 2006, 스테인레스 스틸>

<생각하다, 배형경 작, 2012년, 청동>

육영공원 터, 육영공원은 정부에서 세운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서양학문을 가르쳤다, 1886년 9월 설립 당시부터 1891년 박동(현 수송동)으로 옮겨가지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독일영사관터, 독일영사관은 1884년 이곳에 있던 육영공원과 자리를 맞바꾸면서 정동시대를 열었다. 1902년 다시 상동(현 남창동)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 독립신문사 터, 독립신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으로 한글판과 영어판 두가지로 발간하였다. 1896년 4월7일 창간할 때부터 1899년 12월4일 폐간될 때까지 사옥이 이곳 독일영사관터 안에 있었다. <출처:서울시청>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