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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보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보물)이다. 조선 건국 직전인 이성계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금강산에 모신 사리장엄이다. 가장 안쪽의 은제 도금 탑형 사리기와 이것을 넣는 은제도금팔각당형 사리기, 청동 발, 백자 발 순으로 포개어 납입되었다. 방짜유기, 부분 도금, 타출기법 등 당대 공예기법을 파악할 수 있으며 백자사리기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백자이다. 백자발과 사리기에 새겨진 명문에 따르면 이성계가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1391년)에 부인 강씨 등과 함께 발원하여 만들어 봉납하였음을 알 수 있다. 1932년 금강산 월출봉에서 발견되었다.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 고려 1390~1391년 | 백자, 금동 등, 보물>
<은제도금탑형사리기>
<내함과 사리병>
<사리기에 새겨진 글자>

분충정난 광복섭리 좌명공신 벽상삼한 삼중대광 수문하시중 이성계 삼한국대부인 강씨 물기씨 – 은제도금탑형사리기에 새겨진 글자 –

<은제팔각당형사리기>
<글자가 새겨진 부분>

영삼사사 홍영통, 정순택주 황씨, 흥해군부인 배씨 석와 경오년(1390) 삼월 어느날, 사리탑을 조성하여 받들어 모십니다. 납자 월암, 시주 가이씨, 안월, 동지밀직 황희석, 박씨 복수, 낙랑군부인 묘선, 강택, 강양군부인 이씨 묘정, 승전보덕, 낙안군부인 김씨, 효인희관, □지 신남 만든 사람은 나득부, 이씨, 노비 □용, 박자청 – 은제팔각당형사리기에 새겨진 글자 –

<귀이개>
<유기발>

홍무 24년 신미년(1391) 2월 어느 날 사리합을 조성하였습니다. 신견, 묘명, 박룡이 시주하였습니다. – 유기발에 새겨진 글자 –

<백자발>

금강산 비로봉에 사리를 맞이하여 한치하고 기록합니다. 석가여래께서 입별하신 지 2천 4백여 년이 지난 대형 홍부 24년 신미년(1391) 5월 어느 날, 월암과 지금의 시중 이성계는 만인과 함께 발원하며, 이 뜻을 금강산에 감추어 두고자 하오니, 미륵불이 세상에 나오실 때 받들어 사람들에게 보이시고 진실한 교화를 도와서 함께 성불하기를 바라옵니다. 이 서원은 견고하며 부처님과 조사께서 증명해주실 것입니다. 신미년 5월 어느 날에 기록합니다. 함께 발원한 야납(승려) 월암, 함께 발원하고 시주한 문하시중 이성계, 함께 발원한 삼한국대부인 강씨, 함께 발원한 낙랑군부인 김씨(묘선해), 함께 발원한 강양군부인 이씨(묘정한情), 함께 발원한 낙안군부인 김씨, 함께 발원한 흥해군부인 배씨, 함께 발원한 나머지 많은 사람들은 미륵불의 삼회설법을 기다려 우러러 예불할 인연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함께 바른 깨달음 이루기를 바라옵니다. – 백자발에 새겨진 글 –

<백자발>

대명 홍무 24년 신미년(1391) 4월 어느 날 서원을 세웠습니다. 함께 사합砂盒의 조성을 발원하고 깊은 산속에 나아갔습니다. 석가여래께서 입적하시고 2천여 년이 지난 대명 홍무 연간에 은둔 수행자 월암과 송헌시중 이성계가 만인과 함께 발원하오며, 이 뜻을 금강산에 감추어 두고자 하오니, 머지않아 도래할 미륵불 세상의 삼회설법이 이루어지는 때를 기다려 다시 열어 예불하고자 함입니다. 이 서원은 견고하며 부처님과 조사께서 증명해주실 것입니다. – 백자발에 새겨진 글자 –

<백자발>

이성계가 조선 건국 직전에 발원한 사리장엄
조선 건국 직전인 1390-1391년에 이성계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금강산에 모신 사리장엄입니다. 백자 발과 청동 발, 탑 모양의 금동 사리함 등 여러 점을 돌로 된 함에 넣어 모셨습니다. 백자 발과 사리함의 표면에 미륵이 내려올 때를 기다린다는 내용의 명문을 적었습니다. 불교를 깊이 믿었던 이성계는 고려시대의 불교 성지였던 금강산에 사리장엄을 모시면서 새 나라의 건국을 꿈꿨던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25년
  2. ‘보물 금강산 출토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구 일괄’, 국가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