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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 만산고택

경북 봉화군 춘양면에 있는 <봉화 만산고택>이다. 19세기말에 지어진 대지주계층이 살았던 큰 규모의 한옥이다. 동쪽으로 흐르는 운곡천을 바라보고 다. 본채, 서실, 별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실을 제외하고 각 건물을 담장으로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본채 오른쪽에 안채 중문을 두는 등 경북 북부지역 상류층 주택의 지역적 건축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만산晩山’ 적힌 흥선대원군의 현판이 남아 있는 등 구한말 왕실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봉화 만산고택>

솟을대문을 하고 있는 대무채는 앞면 11칸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하고 있다. 문간방과 창고, 외양간 등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집을 찾았던 손님의 수행원들이 묵을 수 있도록 크게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문채>
<안에서 본 모습>

이 집을 처음 지은 만산 강용은 구한말 관료를 지냈으며, 낙향하여 도산서원장을 지내는 등 지역의 명망가였던 것으로 보인다. 흥선대원군이난 영친왕이 쓴 글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볼 때 이곳을 방문했던 인사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손님과 수행원이 묵을 수 있는 공간으로 서실과 별채, 넓은 사랑채를 두고 있으며, 안채와 별채에 담장을 두어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사랑채 마당>

본채는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오른쪽에 안채를 출입하는 중문이 있다.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로 남쪽에 대청마루를 북쪽에 온돌방을 두고 있다.

<본채>
<왼쪽에서 본 모습>
<사랑채 대청마루>
<사랑채 왼쪽 마당>
<중문이 있는 본채 오른쪽>
<안마당>
<안채 뒷마당 출입문>

서실인 앞면 2칸의 별채 성격의 건물로 손님들이 묵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마 밑에 있는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는 글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것이라 한다.

<서실>

별채인 칠류헌은 영친왕을 비롯한 구한말 유력인사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로 활용되었던 공간이다. 담장과 출입문으로 본채와 공간을 분리하여 손님이 머물기 편하도록 배려하고 있다.

<별채인 칠류헌 출입분>
<바깥쪽 출입문과 담장>
<칠류헌 마당>
<바깥에서 본 모습>

<출처>

  1. 안내문, 봉화군청, 2025년
  2. ‘봉화 만산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