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해 계절 변화 등을 예측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려는 학문으로, 고대부터 동서양 모두에서 제왕의 중요한 학문으로 여겨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첨성대 등 다양한 천문 관측 유물이 남아 있으며, 고구려의 천문지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제작된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도 전해진다. 조선은 일식과 혜성 등 다양한 천문 현상을 오랜 기간 기록으로 남겼으며, 초기에는 중국과 함께 높은 수준의 천문학을 유지했다. 그러나 중기 이후에는 서양 과학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천문 지식과 유물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고궁박물관에서 소장.전시하고 있는 천문 관련 유물들은 조선의 천문학 수준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이자 조선 왕실을 대표하는 유물로 손꼽을 수 있다.

<천상분야열차지도각석(국보)>는 석비형태의 직육면체 돌에 천문도를 새겨 놓은 것이다. 태조는 권근을 비롯한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조선의 개국이 하늘의 뜻임을 알리고자 제작하였다. 고구려가 만들었던 천문지도를 바탕으로 조선시대에 변화된 내용을 반영하여 새긴 것이다. 윗부분에느 짧은 설명과 함께 천문도가 새겨져 있고, 아랫부분에는 천문도 이름, 작성 배경과 과정, 제작에 참여한 사람의 명단과 날짜 등이 젹혀 있다.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 다음으로 오래된 천문도이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을 관측하여 그 변화를 알아내어 계절의 변화 등을 예측하고 하늘을 뜻을 파악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고대 이래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보물)>는 별자리를 돌에 새겨 놓은 천문지도로 조선 초 태조 때 제작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다시 돌에 새긴 것이다. 둥글게 그린 하늘 안에 1,467개의 별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는 천문도를 만들게 된 경위와 명단이 적혀 이다. 전체적인 구성의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태조 때 새긴 천문도와 완전히 같고 권근이 작성한 설명문이 그대로 적혀 있다. 대리석에 다시 새긴 것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새겨져 있는 글씨와 별이 대부분 판독 가능하다. 이 천문도를 만든 경위 등은 <증보문헌비고> 등에 잘 나타나 있다.

조선의 하늘 –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은 하늘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배열해 놓은 천문도로 돌에 새겨 만들었습니다. 태조 즉위 초인 1395년(태조 4)에 조선 건국 이전부터 전해지던 천문도 각석의 탁본을 구해 별자리 위치를 보정한 후 완성했습니다. 이를 통해 천문을 살피고 시간의 흐름을 파악해 백성에게 알리는 관상수시(觀象授時)의 의무를 실현하고,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천문도에는 1,467개의 별과 295개의 별자리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심원에는 1년 내내 볼 수 있는 별자리가, 바깥에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별자리가 새겨져 있고 별의 크기와 깊이를 다르게 표현해 밝기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천문도와 더불어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해와 달, 별에 대한 이론 등이 적혀있습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표면이 닳아 1687년(숙종 13)에 다른 돌에 옮겨 새겼으며, 각석 두 점이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조선의 하늘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는 돌에 새긴 ‘석각본’이 가장 유명하지만, 이를 널리 보급하거나 보존하기 위해 나무에 새긴 <목판본>도 존재한다. 가장 대표적인 목판본은 선조 때(1571년) 제작된 것이다. 태조 시대의 석각본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마모되어 글자가 흐릿해지자, 이를 보존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판으로 다시 새겼다. 관상감에서 제작하여 당시 2품 이상의 고위 문신들에게 하사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내용은 원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별자리 배치, 설명문, 28수(宿)의 명칭 등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1,460여 개의 별과 은하수, 황도와 적도 등을 매우 정교하게 새겼다. 신한은행이 구입해 기증한 목판본을 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태조 대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목판에 새겨 종이에 찍어낸 것이다. 1571년(선조 4) 제작한 것으로, 관상감에서 120점을 만들어 일부를 2품 이상 문신들에게 하사했다. 은하수를 제외한 천문도 바탕은 옅은 푸른색으로 채색하였고, 적도와 28수 별자리 그리고 일부 별자리는 붉은색으로 표시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평혼(平渾)’은 조선 시대 천문학에서 사용되었던 ‘평면 별자리판’을 의미한다. 평혼은 입체적인 천구의 별자리를 평면으로 투영하여 관측과 계산을 편리하게 만든 도구이다. 주로 북극을 중심으로 하늘을 펼친 형태를 하고 있다. 고정된 별자리판 위에 회전할 수 있는 장치를 얹어 시간과 날짜에 따른 별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별자리를 평면에 새긴 천문 기구다. 황동판 양면에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보이는 별들을 새기고 해가 지나가는 길인 황도를 그렸다. 판 둘레에는 360도 눈금과 조선 후기 시각법인 12시 96각을 새겼고, 황도선을 따라 24절기와 12궁 별자리를 표시하였다. 원판을 회전하면서 절기와 시간에 따른 하늘의 영역과 별자리를 확인할 수 있으며, 가운데 위치한 계형을 돌려서 해나 별의 위치를 읽으면 시간을 알 수 있다. ‘桓堂册製’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19세기 학자 환당 박규수가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천문성신도(天文聖神圖)는 조선 후기 국왕의 통치 이념과 천문학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별자리 그림이다. 조선 후기인 18~19세기에 제작된 유물들이 전해진다. 과학적 정밀도에 치중한 석각본과 달리 채색 등을 사용하여 화려하게 그려졌다. 실제 관측용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커서 별자리의 모양이 다소 정형화되거나 미적으로 재해석된 경향이 있다. 하늘에 나타나는 현상(일식, 월식, 별의 움직임)이 지상의 통치자에게 보내는 경고나 축복이라 믿는 천인감응설이 반영되어 있다.

별자리 그림을 엮은 책이다. 14면에 걸쳐 동양 대표 별자리인 28수의 형태와 이름을 수록하고 있다. 책 마지막에는 별자리 전체를 그린 대형 천문도를 실었다. 이 천문도는 원형의 하늘에 별자리를 그려 넣은 구성이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과 비슷하지만, 각 별자리 모양은 청나라에서 유입된 새로운 천문학을 반영한 조선 후기 천문서 《신법보천가(新法步天歌)》를 따랐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별자리 관측과 별자리 지도
계절마다 일정한 시간에 떠오르는 별자리를 파악하는 것은 천문 현상을 이해하는 기본이었습니다. 구형의 하늘을 만들고 그 위에 별자리 위치를 표현한 천구의(天球儀), 평면에 하늘을 원형으로 묘사하고 별자리를 그린 천문도(天文圖)는 별자리 관측과 이에 대한 이론적 탐구가 종합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지구본과 지도를 제작해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태조 대 만든 <천상열차분야지도 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1395년, 태조 4)과 세종 대 만든 혼상(渾象)은 조선 전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천문도와 천구의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서양 천문학을 반영한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1742년, 영조18), <혼천전도(渾天全圖)> 등의 별자리 지도와, 천구를 평면화 해 만든 평혼의(平渾儀) 등 새로운 천문도와 천구의가 제작되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혼천의(渾天儀)는 해, 달, 오행성(수·금·화·목·토성) 등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관측 기구이다. 동양의 전통적인 우주관인 ‘혼천설’을 바탕으로 만들어 졌다. 여러 개의 동심원 모양 고리(환)가 겹쳐진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 고리는 하늘의 특정한 궤도를 상징한다. 혼천의는 중국의 역법에 의존하지 않고, 한양의 위도에 맞는 독자적인 시간과 절기를 계산하는 기초가 되었다.

천체의 운행을 나타내고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 의기이다. 중첩된 여러 고리에는 360도(방위각), 12시 96각 (시각), 24절기와 황도 12궁(별자리)이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촬영한 사진에는 지지대가 있는데,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인검(寅劍)은 단순히 적을 베는 무기가 아니라, 하늘의 기운을 빌려 사악한 귀신을 물리치고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지키는’벽사(辟邪, 귀신을 쫓음)용 검이다. 주로 왕실에서 소유했으며, 전쟁터에서 쓰는 것이 아니라 궁궐에 비치하여 재앙을 막는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국왕이 종친이나 공신들에게 특별한 신뢰의 증표로 하사하기도 했다.

인검은 인년寅年, 인월寅月, 인일寅日, 인시寅時 등 12간지 중 호랑이를 뜻하는 ‘인寅’ 자가 겹쳐지는 때에 맞춰 제작한 의례용 칼이다. ‘인寅’자가 겹쳐지는 개수에 따라 삼인검, 사인검으로 불렀다. 사인검 몸체에는 주술적 의미를 담은 산스크리트어와 함께 28수 별자리를 새겨 넣었다. 삼인검에는 북두칠성을 새겼다. 북두칠성은 통치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통치자의 권위를 나타낸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서경》에 “재선기옥형 이제칠정(在璿璣玉衡 以齊七政)”이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장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여 우주의 질서와 지상의 질서를 일치시켰음을 상징하고 있다. 선기(璿璣)는 아름다운 옥을, 회전하는 기구를 의미한다. 옥형(玉衡)’은 저울대 혹은 가로지르는 막대와 별을 조준해서 보는 관을 뜻한다. 혼천의 형태를 잘 설명하고 있다. 칠정(七政)은 해와 달, 다섯 행성을 의미하다.

명나라 호광이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서경》을 해설한 책이다. 《서경》은 중국 고대 제왕의 통치 기록으로, 정치 천문 · 지리 · 민생과 관련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중 순 임금이 “선기옥형(혼천의)을 살펴 해·달 · 오행성의 운행을 파악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유교 정치이념에서 하늘을 살피는 일을 통치자의 주요 임무로 보는 근거가 되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세종 대에 간의대를 중심으로 한 첨단 기기 정비를 통해 관측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양 기준의 역법서인 《칠정산》을 편찬하여 조선 천문학의 독립을 이루었다. 구체적인 내용들이 실록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세종(재위 1418~1450년) 재위 기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세종대는 독창적인 천문 의기를 제작하고 역법을 정비하는 등 천문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시기이다. 《세종실록》에는 일성정시의, 자격루 등의 제작 연원 및 규격을 비롯해 천문과 관련된 상세한 기록이 담겨 있다. 조선 초기 나라의 기틀을 다지는 가운데 천문학이 정비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조선 역대 국왕의 업적 가운데 후대 왕에게 교훈이 될 만 한 내용을 골라 편찬한 『국조보감」중 영조 대 내용을 담은 책이다. 영조는 세종 대에 만든 혼천의와 이를 보관하는 흠경각이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후, 현종과 숙종대에 옛 제도를 복구한 일을 언급하면서, 혼천의를 수리하고 경희궁 흥정당의 동쪽에 규정각(找政圈)을 지어 보관하도록 명하였다. 선대왕의 뜻을 이어 국왕이 힘써야 할 일로 천체를 관측하는 일이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후대 왕이 경계해야 할 8개 항목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영조는 ‘하늘을 공경하라(敬天)’와 ‘백성을 사랑하라(愛民)’를 강조했다. ‘경천’의 내용은 국왕의 통치가 하늘의 뜻에 의한 것이며, 그 뜻은 곧 ‘애민’에 있음을 가리킨 것이다. 천문은 하늘의 뜻을 살피는 방편으로 여겨 중요시되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조선 국왕의 통치와 천문
고대부터 국왕은 하늘의 뜻을 받아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는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조선이 통치 이념으로 삼은 유교에서도 하늘을 살펴 백성들에게 절기를 바르게 알려주는 관상수시(觀象授時)를 국왕의 임무 가운데 으뜸으로 삼았습니다. 하늘의 뜻, 곧 천명은 국왕의 초월적 권위를 뒷받침했습니다. 동시에 하늘에서 일어나는 여러 현상은 국왕의 통치가 올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하늘이 보내는 신호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일식과 월식, 각종 기상 이변은 국왕의 덕이 부족해 나라에 우환이 발생할 징조로 여겼으며, 국왕은 의례를 통해 하늘에 정성을 다하고 스스로를 경계하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하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에 따르고자 한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 곧 백성을 살피는 것과 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선은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과 백성을 섬기는 ‘애민(愛民)’을 국가 통치 이념의 큰 기둥으로 삼았고, 천문은 국왕이 몸소 이를 실천하는 하나의 방편이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은 조선 세종 시대 천문학 정비 사업의 이론적 토대를 집대성한 천문학 백과사전이다. 세종 때(1445년)에 이순지가 편찬한 책으로, 당시 조선이 도달한 높은 수준의 천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록물이다. 주요 내용으로는 역법(曆法), 혼천의같은 천문기기에 대한설명, 해시계와 물시계의 원리, 별자리 배치같은 천문학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포함되어 있다.

세종이 천문학자 이순지 등에게 명해 편찬한 천문서로 전체 3책이다. 천문, 역법, 의상(儀象, 천문 기구), 구루(漏, 해시계와 물시계)로 목차를 나누고 여러 책에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 가운데 중요 사항만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천문류초(天文類抄)》는 이순지(李純之)가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별자리 종합 해설서이다. 《제가역상집(諸家曆象集)》이 천문학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이라면, 《천문류초(天文類抄)》는 별자리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세종 대 이순지가 편찬한 천문 해설서이다. 상·하권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상권은 별자리의 분류와 각 별자리에 대한 내용을 담았고 하권은 해와 달, 오행성과 혜성, 구름 등 천문과 기상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삼국시대 이후 조선까지 정치, 경제, 문화 등 국가 통치에 중요한 제도와 문물을 16개 분야로 나누어 정리한 책이다. 1770년(영조 46)에 편찬한 《동국문헌비고》, 이를 보완해 1782년(정조 6)에 편찬한 《증정 동국문헌비고》를 수정 보완하여 1908년에 편찬하였다. 《동국문헌비고》에서부터 천문, 역법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한 <상위고(象緯考)>를 목차의 첫 번째로 배치하여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경희궁 흥정당(興政堂) 동쪽에 있던 규정각의 현판으로 영조 글씨를 새겨 만들었다. 규정각은 1732년 영조의 명에 따라 혼천의를 보관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창덕궁 희정당(黑政堂) 남쪽 행랑에 있던 제정각(齊政閣)에도 혼천의를 보관하였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조선 후기의 규정각(圭正閣)은 세종 시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인조~현종 대에 이르러 국가 천문 관측 시스템을 재건하는 핵심적인 장소로 다시금 부각되었다. 영조는 자신의 통치가 세종대왕의 성치(聖治)를 잇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규정각을 중시했다. 영조는 1770년 세종 시대의 전통을 회복하기 위해 혼천의를 새로 제작하여 이곳 규정각에 설치하도록 했다.

1732년(영조8) 경희궁에 규정각을 마련할 때 영조가 지은 글을 새긴 현판이다. 혼천의를 보관하기 위해 규정각을 짓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 천문이 지니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조선시대 천문 및 역법을 담당한 관청인 관상감 인장과, 관상감 책임자인 관상감 영사의 인장이다. 영사는 관상감 직급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로 조정 최고 관직자인 영의정이 겸직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천문과 역법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던 관상감에 대한 기록으로 관상감 관원 성주덕이 편찬했다. 서운관은 관상감의 옛 이름이다. 관상감의 조직과 연혁, 업무 규칙부터 천문과 관련된 역대 주요 사건까지 관련 내용을 상세히 정리했다. 펼친 부분은 관상감 직원들의 일상 근무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관상감에서 밤하늘의 특이 현상을 관측해 기록한 일지로 1759년 3월의 기록을 수록하고 있다. 관상감에서는 천체 현상을 33종으로 분류하고 관측 규정을 두었다. 특히 객성(客星), 혜성처럼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재이(災異)’라고 하여 발생 날짜와 시각, 위치와 모양, 색과 밝기, 형태 변화 등을 기록해 보고하도록 했다. 관측 대상과 당시 상황, 참여한 인원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1759년 3월 핼리혜성 관측 기록
1759년에 나타난 핼리혜성 관측 기록이다. 기록은 25일간 이어지며 관측 시각과 위치, 혜성 꼬리의 크기, 움직임의 변화 등을 기록하고 모양을 그려 놓았다. 핼리혜성은 약76년 주기로 지구에 다가온다. 가장 최근 관측된 것은 1986년 2월이며 2061년에 다시 나타날 예정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3월 11일밤 5경 3점 파루 후에 혜성이 허수虛宿 별자리 영역의 이유성離瑜星 위에 나타났다. 북극으로부터 각거리는 116도로 혜성의 형태나 색깔은 어제와 같았다. 꼬리 길이는 1척 5촌(약 30cm)이 넘었다. 3월 13일 밤 5경 3점 파루 후에 혜성이 허수虚宿 별자리 영역의 이유성離瑜로 위에 \나타났다. 북극으로부러 각거리는 117도로, 크기와 색은 전과 비교해서 약간 희미하며, 꼬리 길이는 1척(약 20cm) 정도 되었다.”
대통력(大統曆)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중기까지 사용되었던 역법이다. 중국 명나라의 역법을 들여온 것으로, 조선이 독자적인 역법인 ‘칠정산’을 만들기 전까지 국가의 표준 달력 역할을 했다. 대통력은 기본적으로 원나라의 뛰어난 역법이었던 ‘수시력’의 체계를 따르고 있다. 1년을 365.2425일로 계산했으며, 계산 과정을 단순화하여 실용성을 높였다.

류성룡이 사용했던 대통력이다. 대통력은 1370년부터 1654년 시헌력이 도입되기 전까지 사용하던 역서다. 월, 일, 절기 등을 표기한 인쇄본 위에 손수 적은 다양한 기록이 남아있다. 날씨나 그 날 한 일, 만난 사람 등을 기록해 류성룡의 일상을 따라가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선조 비 의인왕후의 사망, 임진왜란 때 포로로 일본에 갔던 강항의 귀국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임시로 묶어둔 표지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전사와 관련된 상황을 묘사한 글이 적혀 있다.(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칠정산(七政算)은 조선 세종 26년(1444년)에 완성된 역법서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한양을 기준으로 천체 운동을 계산한 역법이다. 칠정산 내편은 중국 원나라의 수시력(授時曆)을 바탕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게 수정·보완한 것이다. 중국 북경과 조선 한양의 위도 차이로 발생하는 일출, 일몰 시간 및 밤낮 길이의 차이를 정확히 계산해 내었다. 우리땅에 맞는 우리시간을 갖게된 천문 주권과 세계적 수준의 과학 기술을 보여주는 중요한 성과였다.

이순지와 김담이 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역법서이다. 중국 역법서인 수시력과 대통력을 연구해 완전히 이해하고, 천문 관측을 통해 한양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역법으로 만들었다. 한양을 기준으로 절기별 해가 뜨고 지는 시각과 밤낮의 길이를 수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칠정산 외편 (外編)은 아라비아에서 전래된 회회력(回回曆)을 연구하여 해설하고 편찬한 것이다. 일식과 월식의 시간을 예측하는 데 있어 내편보다 훨씬 정밀했으며, 서양식 60진법과 삼각함수 개념이 도입되었다.

중국에서 도입한 이슬람 역법인 회회력 回回曆을 연구하고 오류를 수정해 편찬한 역법서이다. 높은 정확성을 보인 일 · 월식 및 오행성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데 활용되었다. 《칠정산내편》과 《칠정산외편》의 발간으로 조선의 실정에 맞는 시각법과 천체 운행 계산법이 정립되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시헌력(時憲曆)은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 말기까지 사용된 태양태음력으로, 명나라 말기 서양 선교사들이 전한 천문학 지식을 바탕으로 만든 정밀한 역법이다. 단순한 날짜 계산을 넘어 해와 달의 움직임을 반영했으며, 태양의 궤도를 15도씩 나누어 절기를 실제 태양의 위치에 따라 정확히 정했다. 이 역법은 태양과 지구 사이 거리 변화로 인한 이동 속도 차이를 반영해 겨울에는 절기 간격이 짧고 여름에는 길어지는 특징을 보인다. 1896년 양력 도입 이후에도 민간에서는 계속 사용되어 오늘날 설날과 추석 등 전통 명절에 그 영향이 남아 있다.

시헌력법에 따라 만든 역서이다. 시헌력법은 중국 청나라 때 서양 역법을 적용해 만든 것으로, 1645년부터 사용하였다. 조선에는 1654년(효종 5)에 도입하여 1896년 (고종 33) 태양력으로 개력할 때까지 사용하였다. 달마다 날짜와 절기,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각 등을 수록하였고, 날마다 이사·혼인·제사 등에 좋은 날인지 나쁜 날인지 등을 적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시헌력을 적용하여 기유년 날마다 해와 달,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의 위치를 계산하고 표로 정리한 책이다. 기유년은 1789년(정조 13)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만세력(萬歲曆)은 특정 연도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날짜, 절기, 간지(천간·지지) 등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 장기 달력이다. 민간이나 역술가들이 과거와 미래의 날짜를 한눈에 확인하기 위해 별도로 만들어 사용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도 발행한 공식 만세력이 있었으며, 사주명리학, 택일, 역사연구 등에 사용되었다.

편찬 시점에서 앞으로 100년간을 다룬 역서이다. 달별로 절기, 날짜 수 등을 미리 계산해 적었다. 1782년(정조 6) 처음 천세력이 제작되었고, 이후 대략 10년에 한 번씩 개정해 편찬하였다. 1904년(광무 8)에 고종황제에 의해 만세력으로 이름을 고쳤다. 만세라는 단어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번영과 황제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조선시대 왕실에서 사용한 역서이다. 구성은 일반적 역서와 동일하나 날짜별로 ‘좋은 일과 안 좋은 일’을 적을 때 왕실에 해당하는 내용을 ‘上상’ 으로 표기해 따로 적은 것이 특징이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역법(暦法)과 역서(曆書)
하늘의 여러 현상, 특히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것은 연, 월, 일, 절기 등 시간의 질서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해 날짜를 정하는 수학적 이론이 역법, 역법을 적용해 해마다 만드는 달력이 역서입니다. 역법을 연구하고 역서를 편찬하는 것은 백성에게 하늘의 뜻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농경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는 때에 맞춰 농사를 짓는 것이 중요하였으므로, 국왕은 천체의 움직임을 통해 절기를 파악하고 백성에게 이를 알려 농업에 힘쓰도록 힘을 기울였습니다. 관상감에서는 매년 역서를 편찬해 국왕에게 올리고, 관료들과 각 관청에 나누어 주었습니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중국에서 정한 역법을 따랐지만, 《칠정산七政算》의 편찬 등 자체적으로 역을 계산하고 역서를 편찬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였습니다. 또한 한양을 중심으로 한 천체 관측 값에 따른 시각의 차이를 보정해 실제 생활에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조선 왕실의 천문 사업
조선은 건국 초부터 천문학 정비를 위해 힘을 쏟았습니다. 조선을 세운 태조는 돌에 새긴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을 만들어 조선의 건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이었음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또한 서운관(書雲觀, 후에 觀象監)을 설치해 천문 현상을 관측하고 역법 및 시간 측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삼았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기반이 다져진 세종대에는 천문학에서도 눈에 띄는 성취가 이루어졌습니다. 다양한 천문 의기(天文儀器)가 제작되었고 천문 연구를 바탕으로 여러 서적을 간행했습니다. 당시 통용되던 중국과 이슬람의 역법을 한양을 기준으로 수정해 조선에서 적용할 수 있는 역법의 기초를 만들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일본, 중국과의 전쟁 후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천문학 정비에 많은 힘을 기울였습니다. 전란으로 소실된 천문 의기들을 다시 만들고, 서양의 천문학과 시헌력(時憲暦)을 수용하면서 천문학 지식은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출처>
-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 안내문, 고궁박물관, 2014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4.07 확인)
-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4월 7일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