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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보물, 2023-1)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보물, 2023-1)>이다. 조선이 건국한 1392년부터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이후 일제에 강제로 병합된 1910년까지 왕비・왕세자・왕세자빈 등을 책봉하거나 국왕・왕비・상왕・왕대비・대왕대비 등에게 존호(尊號), 시호(諡號), 묘호(廟號), 휘호(徽號) 등을 올릴 때 그 호칭을 새겨 수여하는 의례용 인장과 의례용 책문을 말한다. 왕비, 왕세자 등을 책봉하거나 덕을 기리는 이름을 올릴 때 지위와 이름을 어보에 새겼다. 어책은 어보와 함께 올리는 책으로, 공덕을 칭송하는 글이나 국왕의 훈유(訓諭)를 담았다. 어보와 어책은 받는 사람의 지위와 의례의 격에 따라 재질이 달랐다. 국왕과 왕비의 어보와 어책은 사후에 종묘 신실에 봉안되어 조선 왕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나타냈다.

<고궁박물관 소장 금보 155과, 옥보 167과>
<고궁박물관 소장 금보 155과, 옥보 167과>

어보(御寶)왕과 왕비, 세자와 세자빈 등 존호를 올릴때 제작되어 사용하던 도장이다. 어보는 도장, 도장을 담는 함인 보통, 보통을 담는 보록, 이를 싸는 보자기와 끈 등으로 구성된다. 도장은 원래 거북모양으로 장식했었는데, 황제국을 선포한 대한제국에서는 용으로 바뀌었다. 왕과 왕비는 금으로 만든 금보 (金寶), 왕세자나 세자빈은 은으로 만든 은보 (銀寶)를 제작했으며 필요시 옥으로 만든 옥보 (玉寶)도 제작되었다.

<태조에게 시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금보, 조선, 1683년, 보물>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태조에게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칭호인 시호를 추가로 올리며 만든 금보다. 기존의 시호 ‘강헌康獻 지인계운至仁啓運 성문신무聖文神武’에 태조가 왕이 되기 이전의 업적인 위화도 회군을 칭송하는 의미의 ‘정의광덕正義光德 네 글자를 더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금보는 ‘천명(天命)을 받은 통치자’라는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한다. 조선시대는 생전에는 주로 옥보를 사용했으며 사후에 존호를 올릴때 금보를 제작해서 종묘에 모셨다.

<세종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 世宗上諡號金寶, 조선, 1450년, 보물>

세종이 승하하자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칭호인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다. 시호는 ‘영문예무英文睿武 인성명효 仁聖明孝 ‘,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칭호인 묘호는 ‘세종世宗’이라 하고 금보에는 시호만 새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성종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 成宗上諡號金寶, 조선, 1495년, 보물>

성종이 승하하자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칭호인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다.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올리는 칭호인 묘호 ‘성종成宗’과 시호인 ‘인문헌무仁文憲武 흠성공효欽聖恭孝’를 금보에 함께 새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숙종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금보, 肅宗追上尊號金寶, 조선, 1753년, 보물>

숙종에게 덕을 칭송하는 이름인 존호를 추가로 올리며 만든 금보다. 1713년 올린 ‘현의광른顯義光倫 예성영렬 睿聖英烈’, 1720년 올린 ‘장문헌무章文憲武 경명원효敬明元孝’와 함께 새로운 존호 ‘유모영운裕謨永運 홍인준덕洪仁峻德’을 새겼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영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 英祖上諡號金寶, 조선, 1776년, 보물>

영조(재위 1724~1776)가 승하하자 생전의 공덕을 기리는 칭호인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다. 시호는 ‘익문선무翼文宣武 희경현효熙敬顯孝’, 묘호廟號는 ‘영종英宗’이라 하고 금보에는 시호만 새겼다. ‘영조英祖’는 1890년(고종 27) 다시 올린 묘호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13) 인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
<15) 정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의 내함, 16) 정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금보>
<정순왕후가 왕비 책봉 때 받은 금보 조선 1759년, 보물>
<정조비 효의왕후 왕비책봉 금보, 보물, 조선 1778년>
<고종황제 어새, 대한제국, 보물>

어보의 바닥면에 새겨진 글씨를 인문(印文)이라고 한다. 이 글씨들은 단순히 이름을 적은 것이 아니라, 그 인물의 신분, 업적, 그리고 사후의 영광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주로 전서체(篆書體)를 사용한다. 꼬불꼬불하고 기하학적인 모양의 서체로, 인장 예술의 정수로 꼽히며 위조 방지와 권위 상징에 제격이다.

<13) 순조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금보>

어보에 새기는 이름
어보에는 지위와 함께 존호尊號, 시호諡號, 묘호廟號 등 다양한 이름을 새겼다. 존호는 왕의 공덕功德을 찬양하기 위해 올리는 이름이다. 시호는 왕이 승하하면 생전의 업적을 평가해 올리는 이름으로, 신하들이 지어 올리는 것과 중국으로부터 받는 호칭 두 가지가 있다. 묘호는 삼년상을 마치고 신주神主를 종묘에 모실 때 올리는 이름이다. 국왕은 신하들에게 존호를 받아 자신의 권위를 확인하고, 선대왕에게 존호를 올려 왕실의 정통성을 강화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옥보(玉寶)는 말 그대로 옥(玉)으로 만든 어보를 의미한다. 주로 ‘현직 왕과 왕비’ 혹은 ‘상왕과 대비’ 등 어른들을 위해 제작되었다. 조선 전·중기의 국왕들은 외교적 격식 때문에 생전에 금보 대신 옥보를 주로 사용했습니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금보를 다시 제작하였다.

<8) 고종에게 존호를 올리며 만든 옥보>
<옥보, 영조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옥보와 내함>
<8) 문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옥인>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왕세자빈 책봉 때 받은 옥인, 조선 1671년, 보물>
<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옥인, 조선 1812년>
<정순왕후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옥보, 조선 1804년, 보물>
<문조 추상존호 옥보, 보물, 조선 1902년>

왕세자나 왕세자빈을 책봉할 때 주로 은으로 만든 인장(銀印)을 수여했다. 왕을 상징하는 재질은 금이나 옥이었던 반면, 차기 왕위 계승자인 세자에게는 은을 사용하여 격의 차이를 두었다. 왕세손의 책봉 시에도 은인을 사용했으며, 간혹 신분에 따라 사후에 공덕을 기리며 올리는 어보를 은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12) 진종에게 세자승통 시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은인>

옥책(玉冊)은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보(도장)와 짝을 이루는 ‘옥으로 만든 공식 문서이다. 왕이나 왕비에게 존호, 시호, 휘호를 올릴 때 그 배경과 칭송하는 글을 옥판에 새겨 엮은 것이다.

<16) 영조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옥책>
<16) 정조에게 시호를 올리며 만든 옥책>
<정순왕후가 왕비 책봉 때 받은 옥책, 조선 1759년, 보물>
<정순왕후에게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옥책, 조선 1804년, 보물>

1804년 2월에 정순왕후에게 ‘광헌(光獻)’이란 존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옥보와 옥책이다. 정순왕후가 수렴첨정을 거두고 순조가 친정을 시작한 것과 정순왕후의 나이가 육순에 이른 것을 기념해 만들었다.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5년)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 옥책, 대한제국 1902년, 보물>

죽책(竹冊)은 대나무 쪽을 엮어서 만든 문서이다. 왕실에서 왕세자, 왕세자빈, 왕세손 등을 임명(책봉)하거나 비빈에게 존호를 올릴 때, 그 취지와 칭송하는 내용을 새겨 넣은 것이다. 대나무의 ‘변하지 않는 절개’와 ‘강인함’을 상징하며, 왕실의 기록을 영구히 보존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12) 진종에게 세자승통 시호를 더하여 올리며 만든 은인과 죽책>
<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죽책, 조선 1812년>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왕세자빈 책봉 때 받은죽책, 조선 1671년, 보물>

교명(敎命)은 조선 시대 국왕이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 등을 책봉할 때 내리는 공식적인 훈유 문서를 말한다. 단순히 “누구를 임명한다”는 임명장을 넘어, 그 지위에 맞는 도덕적 지침과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효명세자가 왕세자 책봉 때 받은 교명, 조선 1812년>
<정순왕후가 왕비 책봉 때 받은 교명, 조선 1759년, 보물>
<인경왕후(仁敬王后)가 왕세자빈 책봉 때 받은 교, 조선 1671년, 보물>
<경종 왕세자책봉 교명, 보물, 조선 1690년, 2020~2012년 보존처리>
<현종비 명성왕후 왕제사빈책봉 교명, 보물, 조선 1651년, 보존처리 진행중>

<출처>

  1. 안내문, 고궁박물관, 2026년
  2. ‘보물 조선왕조 어보・어책・교명(2023-1) ’,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년
  3.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5.04 확인)
  4.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5월 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