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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무장현 관아 (사적)

전북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무장읍성 내에 남아 있는 <무장현 관아(사적)>이다. 조선시대 관청건물로 조선초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읍성을 쌓을 때 같이 건립되었다. 무장읍성 내부에는 관리들이 정무를 보던 동헌인 ‘취백당’과 국왕을 상징하는 패를 모시고 사신들이 머물던 객사인 ‘송사지관’이 잘 보존되어 있다. 최근 비격진천뢰가 발굴된 ‘군기고’, 연못 옆 누각인 ‘읍취루’가 복원되어 있다. 무장읍성은 성벽과 관아 건물을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동시에 건립되어 조선 초기 읍성 계획과 관아 배치 형식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무장현 관아와 읍성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무장 포고문이 선포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고창 무장현 관아(사적)>
<객사에서 보이는 고창현 읍치>

무장객사는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 건물로, 중앙의 정청과 좌우의 익헌으로 이루어진 관아 건축이다. 정청은 맞배지붕, 익헌은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솟을지붕 형태를 이룬다. 상량문에 따르면 1649년에 중건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부터 면사무소로 사용되다가 1990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무장객사는 객사 건물과 석축 기단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드문 사례이며, 계단 난간과 기단석에는 호랑이·구름·연꽃 등의 조각이 남아 있다. 특히 일부 기단석은 사찰 석재를 재사용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무장객사>

정청에는 ‘송사지관(松沙之館)’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는 무송현과 장사현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무장의 옛 지명을 뜻한다.

<정청>
<정청 기단>
<좌익랑>
<좌익랑 내부>
<우익랑>
<우익랑 내부>
<옆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고창 무장객사
무장객사는 조선시대 무장현의 객사로 쓰이던 건물이다. 객사는 중앙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신 정청과, 그 좌우에 공무로 찾아온 관리들의 숙소인 익헌으로 구성된 관아 건물이다. 무장객사는 중앙의 정청이 좌우의 익헌보다 한 칸 앞으로 돌출되었다. 지붕 구조는 정청이 사람 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고, 좌우 익헌이 여덟 팔스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어 전체적으로 솟을지붕 모양이다. 정청을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 에 의하면 이 객사는 인조 27년1649에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객사 건물은 1936년 부터 1987년까지 면사무소로 사용하면서 일부 고쳤다가, 1990년에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객사 정청에는 ‘송사지관(松沙之館)’이라고 쓰인 현판이 있다. 조선 태종 17년1417에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長沙縣)을 합치면서 각각 앞글자를 따서 지명을 무장(茂長)이라 했다. ‘송사 松沙’는 각각 뒷글자를 따서 무장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무장객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객사와 기단이 원형대로 잘 남아 있는 유적이다. 객사 건물의 석축 기단을 오르내리는 계단의 양쪽 난간에는 호랑이, 구름 등을 새겼다. 기단 양옆의 모서리 돌에도 연꽃과 화병 그림을 새겼는데 이 모서리 돌은 무장객사를 지을 때 사찰의 기단석을 철거해 재사용한 것이다. 이는 성리학을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던 조선시대 정책을 보여준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무장동헌은 조선시대 무장현의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아의 중심 건물이다. 조선 1565년에 세워졌으며, 1914년까지 동헌으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사무실로, 광복 후에는 초등학교 교실로 활용되면서 건물 모습이 많이 변형되었으나, 1989년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이후 2014년에는 발굴조사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삼문과 담장도 복원하였다. 문헌에 따르면 동헌 경내에는 내아, 책방, 육양정 등 여러 부속 건물이 함께 있었다.

<무장동헌>

동헌의 당호인 ‘취백당(翠白堂)’은 소나무처럼 푸른 기상과 모래처럼 깨끗한 청백리 정신을 뜻하며, 수령이 올바른 정치를 펼치기를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헌>
<가운데 대청마루>
<온돌방>
<출입문과 행랑채>

무장동헌
동헌은 조선시대의 수령이 정무를 보던 관아의 중심 건물로 이곳은 1914년 고창군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무장현 동헌으로 사용되어 왔다. 무장동헌은 조선 명종 20년1565에 건립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 무장수비보병대 사무실로, 광복 후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되는 등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대변해 주는 건물이기도 하다. 현재의 모습은 담을 헐고 벽을 붙이는 등 많이 변형되었던 것을 1989년 고증을 거쳐 원형으로 복원한 것이다. 또한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2014년에 삼문과 담장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지도와 문헌자료에 의하면 동헌 경역 내에는 수령의 가족이 거처하던 내아와 책을 보관하던 책방, 휴게정자인 육양정 등 4동의 건물이 함께 있었던 걸로 보여진다. 동헌의 당호인 취백당의 취翠자는 소나무처럼 푸른 기상을, 백白자는 모래처럼 희고 결백한 정조를 상징한다. 이는 이곳에서 정무를 보는 현감들이 소나무처럼 푸르름을 간직하고 모래처럼 청백하게 정무를 펼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무장읍성 군기고는 조선시대 군사 무기를 보관하던 창고이다. 《무장현읍지》에는 1871년 화약 4,198근이 보관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동학농민군에 의해 불타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2018년 발굴조사에서 주춧돌과 비격진천뢰 11점, 철제 무기류, 석환 등이 발견되면서 원래 위치에 복원되었다. 주변에서는 화포를 설치한 포대시설도 확인되었다. 특히 발견된 비격진천뢰는 목표물에 도달한 뒤 폭발하는 조선시대의 시한폭탄형 화포 무기로, 병기 역사에서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군기고>

이 비격진천뢰는 고창 무장읍성의 군기고(추정)에서 출토된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의 시한폭탄, 비격진천뢰, 조선 19세기,>

군기고
군기고는 군사무기를 보관하던 창고로, 고종 8년(1871) <무장현읍지>에 ‘화약 4,198근이 보관되었다’ 라는 기록이 등장한다. 이후 ‘갑오 동도들이 탈취해서 없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동학 농민군에 의해 불타 없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2018년 발굴조사에서 군기고의 주춧돌과 비격진천뢰 11점, 철제무기류, 석환 등의 유물을 발견하면서 원래 자리에 복원하였다. 무장읍성의 군기고는 조선시대 전기의 군기고와 후기의 군기고로 나뉜다. 전기의 군기고는 활과 창 같은 목병기를 보관하는 작은 구들방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현재 복원된 군기고는 조선시대 후기의 것으로 두 동의 건물로 이뤄졌다. 두 건물 모두 측면 1칸의 구조이며, 약 9m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있는 맞배지붕으로 복원하였다. 군기고 주변에서 화포를 설치했던 포대시설과 비격진천뢰 11점이 발견되었다. 비격진천뢰는 조선시대 제작된 포탄 중 유일하게 목표물에 날아가서 폭발하는 최초의 작열 시한폭탄으로 병기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비격진천뢰는 <고종실록>에 고종 9년(1872)’ 무장현에 화포군 40명이 배치되었다’라는 기록이 처음 등장하며, 동학농민혁명 때 관군이 몰래 묻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연못 옆 언덕에 있는 누각인 읍취루이다. 관아 누각은 손님을 맞이하여 연회를 벌이거나, 군사 회의를 위한 장소이다. 2010년에는 발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다.

<연못과 읍취루>
<읍취루>

읍취루
읍취루는 업무 외에 아전과 외부 손님을 맞이하여 잠시 환담하며 화합하는 공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원래 명칭은 ‘신루(新樓)’ 였으나 성종 24년1493에 무장현감으로 있던 최검이 손보고 고친 후 ‘읍취루’로 이름을 고쳐 불렀다. <여지도서>에는 읍취루 대신 찰미루(察眉樓)가 등장하는데 현종 5년(1664)에 무장현감으로 있던 김하연이 객사와 남문 사이에 찰미루를 새로 지은 것으로 보아 이 무렵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2005년 발굴조사로 안침의 시에 나오는 방지 옆에서 읍취루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기단 석열과 적심석, 주춧돌을 발견하였다. 2010년에는 발굴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다.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송덕비>

<출처>

  1. 안내문, 고창군청, 2026년
  2. 안내문, 진주박물관, 2024년
  3. ‘사적 고창 무장현 관아와 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국가유산청, 2026년
  4.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05.10 확인)
  5. OpenAI, <ChatGPT (GPT-5)>의 답변, 2026년 5월 1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