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번째 전시실은 플랑드르 출신의 초상화가 안토니 판 다이크(Anthony van Dyck)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632년 런던 이주 후 찰스 1세의 수석 궁정 화가로 활약하며 그린 영국 귀족들과 왕실 인물들의 초상화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영국 특유의 ‘클래식하고 우아한 초상화 전통’을 완성해 낸 판 다이크의 압도적인 붓터치와 귀족적 미학을 볼 수 있다. 안토니 판 다이크는 이탈리아에서 제노바 귀족과 로마의 성직자들을 위한 작품을 제작했고,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 뒤에도 큰 인기를 누렸다. 그의 초상화 양식은 이후 유럽, 특히 영국 초상화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안토니 판 다이크(Anthony van Dyck)의 <카타네오 델라 볼타 임페리알레 부인의 초상(Portrait of Marchesa Giovanna Cattaneo Della Volta Imperiale, 1625~1627)>이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머물던 시기(1621–1627년)에 제작한 대귀족 부인의 전신 초상화이다. 어두운 의상과 대비되는 맑은 피부 톤이 인물의 우아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

카타네오 가문 컬렉션에 속했던 이 그림의 모델은 한때 근처에 걸려 있는 검은 의상을 입은 남자의 초상화 속 인물의 아내로 여겨졌다. 그러나 연구 결과, 그녀는 제노바의 귀족 가문인 카타네오 가문의 또 다른 인물인 이사벨라였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판 다이크는 루벤스를 통해 제노바의 후원자들을 소개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 밖에도 안트베르펜에서 상인이었던 아버지의 인맥을 통해 후원자들과 교류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판 다이크의 <알레산드로, 빈첸초, 프란체스코 마리아 줄스티니아니 롱고의 초상(Portrait of Alessandro, Vincenzo and Francesco Maria Giustiniani Longo (?), 1626~1627)>이다. 소년들은 웅장한 저택 계단 위에 서서 관람객을 정면으로 당당하게 바라보고 있다. 당시 제노바 귀족층의 고급스러운 복식 형태로, 주름진 칼라(Ruff Collar)와 화려한 직물, 금실 장식 등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탈리아 제노바 시절 구축한 우아하고 감각적인 대형 초상화 스타일이다.

판 다이크는 화려한 옷을 입은 형제들 각자의 개성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막내아이가 손에 쥐고 있는 새는 고대 묘비에 새겨진 다음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인생은 소년의 손에 쥐어진 작은 새와 같아서, 시작하자마자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형제 중 한 명의 죽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 계단 위에 있는 검은색 갈까마귀들은 애완용 새인 동시에 죽은 이를 기리는 추모의 상징이기도 하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판 다이크의 <조반니 바티스타 카타네오 델라 볼타의 초상(Portrait of G.B. Cattaneo Della Volta (?), 1621~1625)>이다. 가슴까지만 표현된 상반신 초상화로, 인물의 지적인 풍모와 내면적 당당함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관람객을 정면으로 담담하면서도 확신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 부유한 제노바 상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지적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모델이 오른손에 들고 있는 편지에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씨의 흔적이 있다. 이를 통해 그가 제노바 출신의 조반니 바티스타 카타네오 델라 볼타(Giovanni Battista Cattaneo Della Volta, 1578–1640)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1907년까지 제노바의 귀족 가문인 카타네오 가문이 소장했다. 이 가문의 선조들은 판 다이크에게 가문의 초상화 연작을 의뢰했으며, 근처에 걸려 있는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의 초상화 역시 그 작품들 가운데 하나였을 가능성이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판 다이크의 <리날도와 아르미다(Rinaldo and Armida, 1634–1635)>이다. 판화 제작을 위한 도안이나, 대형 작품을 구상하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제작된 것으로보인다. 티치아노(Titian)의 풍부하고 따뜻한 색채 기법에 깊은 영향을 받은 반 다이크 특유의 세련된 표현력을 확인할 수 있다. 토르쿠아토 타소의 서사시 <해방된 예루살렘(Gerusalemme liberata)>에 나오는 십자군 전쟁 배경의 유명한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회색조로 그려진 이 스케치는 판 다이크가 그린 다른 그림을 축소하여 모사한 작품이다. 아마도 판화를 제작하기 위한 밑그림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누워 있는 연인은 토르콰토 타소가 1581년에 발표한 서사시 《예루살렘의 해방》에 등장하는 십자군 영웅 리날도이다. 그는 아름다운 마녀 아르미다를 올려다보고 있다. 투구를 쓴 두 명의 동료는 리날도를 찾기 위해 파견되었으며, 덤불 뒤에 몸을 숨긴 채 이들을 지켜보고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존 스튜어트 경과 그의 형제 버나드 스튜어트 경 (Lord John Stuart and his Brother Lord Bernard Stuart, 1638)>은 청년 귀족들의 세련되고 오만한 듯한 우아함을 정점에 올려놓은 판 다이크 초상화의 대표작이다. 형의 따뜻한 황금/갈색 톤과 동생의 차가운 푸른빛/은색 톤이 대비를 이루며 화면 전체에 뛰어난 리듬감을 부여하고 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당시 유행에 맞게 옷을 차려입은 두 젊은이는 제3대 레녹스 공작의 두 막내아들이자 찰스 1세의 사촌이다. 버나드(1622–1645)는 단 위에 서 있으며, 형인 존(1621–1644)은 역동적인 자세와 관람자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화면을 압도한다. 두 형제는 모두 영국 내전(1642–1651) 당시 왕당파를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엘리자베스 띰블비 부인과 그녀의 자매(Lady Elizabeth Thimbelby and her Sister, 1635)>이다. 감각적인 붓터치로 실크 드레스의 광택, 주름, 보석의 반짝임 등 의복의 질감을 뛰어나게 표현했다. 두 인물이 대화를 나누거나 시선을 나누는 듯한 자연스럽고 역동적인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영국 귀족 사회에 도입한 우아함과 시적 매력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이중 초상화는 엘리자베스(1612~1665년 이후)와 존 팀블비 경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황금빛 드레스를 입은 신부 엘리자베스는 사랑의 신 큐피드에게서 장미를 받고 있다. 그녀의 여동생 도로시(약 1611~1691년)는 훗날 앤도버 자작 부인이 되었으며, 수줍은 듯 베일을 살짝 들어 올리고 있다. 반 다이크는 두 여성이 당시 유행하던 의상을 입은 모습을 우아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로 묘사했다. 이들의 옷차림은 세련된 우아함을 보여 주면서도, 마치 옷을 거의 걸치지 않은 듯한 대담한 인상을 준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공방에서 제작한 <라인의 루퍼트 왕자 (Prince Rupert, Count Palatine, 1637)>이다. 젊은 날의 루퍼트 왕자가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위엄 있게 서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우아한 필치, 실크 및 직물의 화려한 질감 묘사, 부드러운 명암 대조가 돋보인다. 반 다이크는 영국 왕실과 귀족들의 초상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대규모 공방을 운영했다.

루퍼트 왕자(1619~1682)는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의 아들이자 찰스 1세의 조카였다. 뛰어난 군사 지도자로 활약한 그는 이 초상화에서 전투복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예술과 과학의 후원자이기도 했으며, 훗날 화가이자 혁신적인 판화가로 활동하게 된다. 이 초상화의 해당 버전은 반 다이크의 작업실에서 조수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두 사람과 함께 있는 조지 게이지의 초상 (Portrait of George Gage with Two Attendants, 1621~1622)>이다. 게이지는 우아하고 세련된 차림으로 앉아 있으며, 그의 오른쪽에 서 있는 미술품 상인이 조각상을 가리키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각상을 받쳐 들고 있는 흑인 인물은 손가락으로 조각상을 가리키며 관람객을 상거래나 예술적 담론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연극적 효과를 내고 있다.

이 초상화는 반 다이크가 로마에 머물 당시, 왼쪽에 있는 친구 조지 게이지(약 1582~1638)의 집에 기거하면서 그린 작품이다. 영국의 가톨릭 사제이자 외교관이며 미술품 감정가였던 게이지는 미술품 상인과 조각상 거래를 협상하고 있다. 하인은 그 조각상을 들어 올려 두 사람이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그림은 한때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 경(1723~1792)이 소장하기도 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여인과 아이의 초상 (Portrait of Woman and Child), 1620~1621)>이다. 어머니와 아이 사이의 친밀하고 친숙한 순간을 담고 있다. 스승 루벤스의 역동적인 필치와 풍부한 색채 표현 방식이 짙게 남아 있으면서도, 인물의 내면과 시선을 우아하고 섬세하게 포착해내는 반 다이크 특유의 감각이 잘 드러나 있다.

젊은 시절의 반 다이크가 안트베르펜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초상화는 어머니와 아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생생하게 묘사한 점이 돋보인다. 아이가 남자아이라는 사실은 그가 쓴 모자를 통해 알 수 있다. 아이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에 시선을 빼앗긴 듯하다. 이 그림은 원래 여성의 남편을 묘사한 초상화와 한 쌍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그림에는 조금 더 나이가 든 아이가 함께 그려졌을 수도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자애(Charity, 1627~1628)>이다. ‘믿음, 소망, 사랑(자애)’ 중 ‘자애(Charity)’를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으로 의인화한 작품이다. 기독교적 주제를 실제 인물들의 따뜻한 교감처럼 직관적이고 생동감 있게 구현했다. 풍부하고 번쩍이는 옷주름 표현, 풍부하고 화려한 색채는 티치아노(Titian)의 영향을 보여준다. 반 다이크 사후 동판화로 제작·보급되면서 당대 유럽 대중과 예술가들 사이에서 매우 큰 인기와 명성을 얻었다.

반 다이크는 일곱 가지 미덕 가운데 하나인 자선(Charity)을 어머니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서 돌아온 직후 앤트워프에서 그린 것이다. 풍부하고 화려한 색채는 티치아노(활동 시기 약 1506년, 사망 1576년)의 작품에 대한 반 다이크의 감탄을 반영한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둔 자선의 자세는 귀도 레니(1575~1642)와 같은 동시대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이 그림은 당시 큰 인기를 끌었으며, 여러 차례 모사되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밀라노 대성당 입구를 막아서는 성 암브로시우스와 테오도시우스 황제(St Ambrose barring Theodosius from Milan Cathedral, 1619~1620)>이다. 주교의 정결한 사제복과 황제의 화려한 금빛 갑옷/붉은 천의 대비, 그리고 인물들의 얼굴에 떨어진 명암 대비가 사건의 비장함을 더해준다. 황제의 얼굴에서 수염을 없애고 어린 인상으로 바꾸거나 배경 건축물을 단순화하는 등 자신만의 감성적이고 정교한 필치로 재해석했다.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가 성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는 황제가 테살로니카 주민들을 학살한 데 대한 징벌이다. 반 다이크는 이 장면을 묘사하면서 루벤스가 같은 주제로 그린 그림(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을 바탕으로 삼았지만, 후원자의 초상화를 추가하는 등 여러 세부 요소를 변경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물인 니콜라스 로콕스(1560~1640)는 앤트워프의 유력한 수집가이자 시의회 의원이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프랑수아 랑글루아의 초상(Portrait of François Langlois, 1630s)>이다. 절친한 친구를 모델로 그리면서 완전히 편안하고 솔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선명한 붉은 의상을 입고 민속 악기인 뮤제트를 손에 쥔 채, 방금 연주를 시작하려는 듯 신나고 열정적인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본다. 반 다이크의 작품군 중 격식과 우아함 대신, 개인의 인격과 친밀함, 부각한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이다.

프랑수아 랑글루아(1588~1647)는 프랑스의 판화가이자 미술품 거래상, 출판업자로 반 다이크의 친구였다. 그는 당시 값비싸고 유행하던 백파이프의 일종인 뮈제트(musette)를 연주하려 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반 다이크가 그린 초상화 가운데 모델이 미소를 지으며 이를 드러낸 유일한 그림이다. 반 다이크는 이 초상화를 두 점 그렸으며, 아마도 이 작품은 자신이 소장하기 위해 남겨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의 <스칼리아 수도원장의 초상(Portrait of the Abbot Scaglia, 1634)>이다. 스칼리아 수도원장이 기둥 돌받침에 팔을 기댄 채 관람자를 정면으로 곧게 바라보고 있는 전신상이다. 몸의 비율이 살짝 길게 표현되어 인물의 우아함과 기품을 극대화했다. 화려한 귀족 의상 대신 검은색과 흰색의 대비가 명확한 성직자 복장을 입고 있다. 예리함과 통찰력이 느껴지는 눈빛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련한 외교관의 면모와 높은 지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반 다이크는 체사레 알레산드로 스칼리아 수도원장(1592~1641)의 이 초상화를 브뤼셀에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관으로 활동했던 스칼리아는 이후 프란치스코회 재속 수도자가 되었다. 이 작품은 스칼리아가 은퇴 후 머물렀던 앤트워프의 수도원에 기증한 반 다이크의 그림 일곱 점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비용을 부담해 마련한 제단 옆이자 자신의 무덤 가까이에 걸린 이 초상화는 장례식에서 고인을 대신하는 초상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 <성모자와 스칼리아 수도원장(The Abbot Scaglia adoring the Virgin and Child, 1634~1635)>이다. 오른쪽에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스칼리아 수도원장이, 왼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앉아 있다. 종교화가 주는 엄숙함과 격식에서 벗어나, 신성한 존재와 인간이 마치 한 공간에서 온화하게 대화를 나누는 듯한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이 느껴진다.

체사레 알레산드로 스칼리아(1592~1641)는 이탈리아의 여러 수도원에서 수도원장을 지냈지만, 경력의 대부분을 사보이 공작의 대사로 활동하며 보냈다. 이 경건화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스칼리아는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으며, 아기 예수는 그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성모 마리아는 정면을 바라보며 관람자와 시선을 맞추고 있다. 이상화되지 않은 성모의 얼굴 모습으로 미루어 볼 때,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한 초상화일 가능성이 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반 다이크 <코르넬리스 판 데르 헤스트의 초상(Portrait of Cornelis van der Geest, 1620)>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반신 구도에서 관람자를 향해 살짝 시선을 돌린 판 데르 헤스트의 눈동자에는 빛의 반사가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촘촘한 하얀 주름 칼라와 검은 옷감, 그리고 어두운 배경이 강력한 명암 대비를 이루어 관람자의 시선을 인물의 얼굴과 눈빛으로 강렬하게 집중시킨다. 반 다이크가 인간 내면의 심리와 기품을 포착하는 데 최고의 재능을 가졌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코르넬리스 판 데르 헤스트(1555~1638)는 앤트워프의 부유한 상인이자 예술 후원자였다. 젊은 반 다이크는 다양한 붓질을 활용해 초상화 속 저명한 인물의 피부와 머리카락 질감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흰색을 살짝 덧칠한 부분은 눈과 입술의 촉촉함을 나타낸다. 이례적으로 인물을 바짝 당겨 그린 현재의 구도는 후대에 조정된 것이지만, 오히려 초상화가 주는 직접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더해 준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안토니 판 다이크 1599–1641
루벤스의 가장 뛰어난 수제자였던 안토니 판 다이크(Anthony van Dyck)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스승의 화풍을 따라 성경과 신화 속 주제를 능숙하게 그리는 화가였으나, 곧 그의 초상화가 지닌 우아함과 생동감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내셔널 갤러리 컬렉션에는 귀족과 상인 계급, 영향력 있는 후원자, 동료 및 친구들을 그린 그의 전 생애에 걸친 초상화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621년에서 1627년 사이 판 다이크는 이탈리아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제노바의 귀족들과 로마의 주교 및 추기경들로부터 중요한 작품 제작을 의뢰받았습니다.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는 초상화가로서 마찬가지로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루벤스와 마찬가지로 판 다이크 역시 폭주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대형 화실을 운영했으며, 초상화에서 비중이 덜한 부분은 종종 화실 보조 화가들에게 맡기곤 했습니다. 1632년 판 다이크는 런던으로 이주하여 찰스 1세(1600–1649)의 궁정 화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초상화는 영국 전역의 시골 저택(Country House) 컬렉션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판 다이크의 우아한 초상화 양식은 유럽 전역, 특히 영국의 초상화 회화에 지속적이고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원문출처: 내셔널갤러리 현장 안내문, 한국어 번역: ChatGPT, 2026년)
<출처>
- 현장안내문, The National Gallery, 2026년
- The National Gallery, London 공식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gallery.org.uk/), 2026.10.20. 검색
- ‘National Gallery’, wikipedia, 2027년
- 구글 Gemini 3 Flash 응답 내용 (2026.10.20 확인)
- OpenAI, <ChatGPT (GPT-5.3)>의 답변, 2026년 10월 20일 작성
- Anthropic. (2026). Claude Sonnet 5.5 [대규모 언어 모델]. https://claude.ai, 10월20일 확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