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에 위치한 운조루(雲鳥樓)이다. 호남지방을 대표하는 대저택으로 55칸 규모이다. 온화한 기후의 구례 지역 지리적 특징을 반영했다기보다는 ‘ㅁ’자형 안채를 두고 있는 안동지방 대저택의 영향을 받은 구조를 하고 있다. 사랑채, 안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안채, 왼쪽에 사랑채가 배치되어 있고, 앞쪽에 행랑채가 있다. 사랑채는 ‘T’자형을 하고 있는데 왼쪽 끝에 누마루를 두고 있다. 또한 안채쪽에 사랑채와 직각을 이룬 작은 사랑채가 있다. 안채는 ‘ㅁ’자형을 하고 있는데 상당히 규모가 큰 편이다.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방과 부엌, 광 등이 배치되어 있다. 한양이나 경북지방의 대저택을 모방해서 만들기는 했으나, 약간 개방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안채 오른쪽에는 불천위 조상을 모신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구례 운조루>
“운조루”는 집이름에 해당하는데, “구름 속에 새처럼 숨어 사는 집”이란 뜻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라는 칠언율시에서 머리글자만 따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왼쪽에 사랑채가, 오른쪽에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사랑채>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 누마루로 되어 있으며, 안채와 건물이 연결되어 있다.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건물이 올려져 있으며, 툇마루 앞에는 작은 화단을 꾸며놓고 있다.
<사랑채 툇마루와 발을 딛고 올라갈 수 있는 통나무로 만든 디딤>
<사랑채 누마루>
사랑채 서쪽에 위치한 누마루를 “운조루”라 부른다.
<사랑채 뒷편>
통로로 사용하거나 앉아 쉴 수 있는 툇마루가 있다. 오른쪽 작은 온돌방을 책방이라고 하는데 주인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라고 한다.
<뒷마당>
안채와 사랑채를 낮은 담장으로 구분해 놓고 있다.
<중문 앞쪽으로 튀어나온 형태를 하고 있는 작은 사랑채>
난간이 있는 누마루 형태를 하고 있다. 집안이 집안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안채로 들어가는 경사로를 만들어 가마가 중문까지 들어올 수 있게 하고 있다. 경사로 왼쪽편에 잘 보이지 않지만 낮은 굴뚝이 있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에 놓여진 ‘타인능해’>
타인능해
‘타인능해’란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나무독에 쌀을 채워놓고 마을에 가난한 사람이 끼니를 이을 수 없을 때 마개를 돌려 쌀을 빼다가 밥을 짓도록 허용한다는 뜻으로 쌀독의 마개에 “타인능해”라고 써 놓았음. 각종 민란, 동학, 여순사건, 한국전쟁 등 힘든 역사의 시간을 지내오면서도 운조루가 지금처럼 건재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이 타인능해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출처:문화재청>
<대문에서 본 안채>
<안채와 안마당>
넓은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양쪽에 방과 부엌 등이 배치된 날개채를 두고 있다.
<안채 중심 공간인 대청마루>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는 안방 벽면>
<왼쪽 날개채>
2층 다락이 있는 광과 부엌이 있다. 사랑채, 중문과 연결된다.
<뒷마당과 연결되는 부엌>
<오른쪽 날개채>
부엌과 작은 방, 다락 등이 배치되었으며 부엌을 통해 사당과 연결된다.
<안마당에 놓여진 장독대>
양반가 대저택이지만 장독이 실제로는 많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사당으로 들어가는 길>
<사당 협문과 마당>
<불천위 조상을 모시는 사당>
앞면 1칸 규모로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사랑채 앞 마당과 행랑채>
<안채 앞 행랑채>
<저택 출입문인 솟을대문>
<솟을대문 천장>
솟을대문에는 이 집을 지은 유이주가 잡았다고 전해지는 호랑이뼈가 걸려 있다.
<저택 앞 작은 개울>
지리산 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이 저택 앞을 지나고 있다. 지금도 개울에 작은 빨래터가 마련되어 있다.
<저택 앞 큰 연못>
이 집을 지은 유이주는 삼수부사와 낙안군수를 지낸 무관출신의 인물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금반지가 떨어진 자리(金環落地)’라 하여 명당자리로 여겨진 곳이다. 운조루가 위치한 곳은 섬진강과 지리산에서 발원한 크고 작은 하천들이 합류하면서 비교적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는 구례지역에서 하류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산 계곡 중 하나인 문수골계곡이 평야지대와 만나는 지점으로 물이 풍족해서 농사짓기에 적합한 곳이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터를 잡고 살았던 마을의 지리적인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다.
<지리산을 등지고 있는 구례 운조루 전경>
<마을 들판>
앞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있으며, 넓은 농지가 펼쳐졌다.
구례 운조루(雲鳥樓), 전남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
이 집은 조선 영조 52년(1776)에 당시 삼수부사를 지낸 유이주가 세운 것으로, 조선시대 양반가의 대표적인 구조의 집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 집터는 남한 3대 길지(지덕이 있는 좋은 집터)의 하나로 「금환락지(金環落地)」의 형세와 국면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집은 ㅡ자형 하인들의 방(행랑채)와 T자형 사랑채, ㄷ자형의 안채가 있고 대문 안의 행랑채가 서로 연이어져 있고, 안채의 뒷면에는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구조 양식은 기둥과 기둥 위에 건너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은 나무인 ‘도리’와 그 도리를 받치고 있는 모진 나무인 ‘장여’로만 된 구조(민도리집)로서, 지붕은 사랑채, 안채가 연이어져 있으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 두산백과
3.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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