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동지방에는 춘추전국시대 전국칠웅(戰國七雄) 중 하나였던 제(齊, 기원전 1046~221년)나라가 있었다. 제나라는 주를 건국한 문왕이 공신이었던 강태공에서 분봉한 땅으로 산동지역의 동이(東夷)세력을 견제하는 역할도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제나라 15대 환공은 관중을 등용하여 제후들을 제압하고 춘추시대 첫번째 패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국력이 약해지기는 했지만 땅이 넓고 바다를 끼고 있어 생산력은 비교적 풍부한 편이어서, 전국시대까지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전국시대 말기에는 진나라 유민인 전(田)씨 세력이 제나라의 강력한 가문으로 등장했으며 기원전 336년에 전화(田和)가 왕위에 오르면서 전제(田齊)왕조가 세워졌다.
산동성박물관에는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영토였던 산동지방 유적지에서 출토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산동성 쯔보시(淄博, Zibo) 일대에 있는 제나라 도성이었던 임치고성(臨淄固城)과 임치 부근 귀족들의 무덤, 지난시(济南)와 창추시(章丘市) 등 산동성 일대에 많은 유적지들이 등에서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또한 전국시대 제나라가 쌓은 지난에서 칭다오에 이르는 긴 성곽인 제장성(長城)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제나라 유적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는 제사 등에 사용되었는 다양한 형태의 청동제기를 비롯하여 청동제 칼, 창 등 무기류, 일상생활에 사용되었던 그릇 등의 유물들이 출토.전시되고 있다. 출토된 제기들은오늘날까지 종묘제례에서 사용되는 것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송궤(颂簋), 서주시대의 대표적인 예기.
궤(簋,gui)는 곡물을 담아두는 제기이다. 정(鼎)과 함께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左傳> 등 여러 옛 문헌에 나타나는 궤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지금도 종묘제례와 문묘 제례에서 사용되는 제기로 기장을 담는데 사용한다. 종묘제례에서 사용하는 궤와 외형상 큰 차이가 없다.
청동시루(铜甗r), 서주(BC 1046~771), 산동성 지양현(濟阳) 출토
제(齊)와 노(魯)의 번성
서주(西周) 초기 주왕실은 강태공(姜太公))을 제나라 제후로 삼으면서 건국과정에 그의 공을 보상하면서 산동반도 동쪽 동이(東夷)세력을 제압하고자 했다. 주왕실은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 제후로 삼았다. 제와 노 외에도 70개가 넘는 제후국들이 산동반도에 세워졌다. 그러나 서주시대에는 상 왕조와 마찬가지로, 왕권은 청주(靑州)의 선을 넘지 않았다. 동주시대에는 우경(牛耕)과 철기와 같은 기술 혁신은 생산력을 크게 일으켰다. “천자에게서 모든 의례, 음악 및 군대 명령이 나온다 “는 상황에서 “제후에게서 모든 의례, 음악 및 군대 명령이 나온다”의 상황에 이르기까지 모둔 제후국들은 점차 주왕실의 영향력에서 벗어난다. 전국칠웅(戰國七雄)의 시대에서 주왕실은 정치적으로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는 경제적 번영, 문화적 다양성, 기술적 진보를 가져왔던 시기이다. 이 기간 노나라는 주의 예법과 문화를 충실히 계승하였으며 다른 제후국들은 자신의 땅에서 적극적으로 발전했다.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3년)Splendid Civilization of Qi and Lu(齐风鲁韵)
In the early Western Zhou period, the Zhou court appointed Lord Tai of Jiang to be lord of the Qi state to reward his merit as well as to contain the force of the “Eastern Yi-barbarians” from the eastern Shandong Peninsula. The royal house also awarded Lord Zhou with the Yan state of the Shang dynasty to found Lu state, and his son Bo Qin actually went to rule the land. Apart from Qi and Lu, over seventy states were founded in Shandong Peninsula. But throughout the Western Zhou Period, as in the Shang dynasty, the royal power did not cross the line of Qingzhou. During the Eastern Zhou period, technological innovations such as ox-drought ploughing and iron tools gave the production force a great spur. Local states gradually span out of the Zhou power orbit, from the situation of “all ritual, music, and military command coming from the Son of Heaven” to the situation of “all ritual, music, and military command coming from lords”. No sooner had “the seven powerful states of the Warring States period” played out on the political stage. The whole period, however, was economically prosperous, culturally diverse, and technologically progressive. While the Lu state dutifully guarded the Zhou ritual culture, the other states vigorously cultivated their own lands. (안내문, 산동성박물관, 2013년)
주왕조 건국후 제나라 제후로 봉분된 강태공.
주문왕을 도와서 상왕조를 무너뜨리고 주왕조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했다. 주왕조의 위협세력이었던 동이(東夷)세력을 제압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제장성(齐长城).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장성유적이다. 춘추시대 제환공때부터 쌓기 시작하여 전국시대에 완성되었다. 서쪽 지난시에서 동쪽 칭다오시까지 연결되는 전체길이 약 618 ㎞의 긴 장성이다. 중원과 제나라 수도였던 임치 부근 산동반도 일대를 분리하고 있다. 장성 남쪽에는 노나라와 전국시대 강대국이었던 초나라가 있었다.
제장성에 쌓았던 성돌
흙을 다져 쌓은 토축성 형태의 제장성 성벽
청대에 새로 쌓은 제장성. 산동성 라이우시(莱芜市) 금양관(锦阳关) 서쪽 성벽
제장성 기점(서쪽)인 지난시 장청구(长淸区) 부근과 제장성 종점(동쪽), 칭다오시 황도구(黄岛区) 부근
2. 청동검(铜剑), 전국시대(BC475~221).
중국의 청동검은 의식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의 청동검과는 달리 실제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 청동검(铜剑), 전국시대(BC475~221)
3. 청동과(铜戈), 전국시대
3. 청동과, 4. 청동모(铜矛), 전국시대
5. 청동 마차굴대(铜车軎(wei)), 동주(BC 1046~221)
1. 계유(启卣), 서주(BC 1046~771), 산동성 용구시(龙口) 출토.
술을 담아두는 용기인 유(卣)이다.
2. 숙비궤(叔妃簋), 서주(BC 1046~771), 산동성 페이쳉시(肥城) 출토.
“叔妃”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3. 공자토절호(公子土折壶), 춘추시대, 산동성 린취현(临朐) 출토
4. 청동호(铜壶), 전국시대, 산동성 쯔보시(淄博) 임치(临淄) 고성 출토
5. 국자정(國子鼎), 전국시대, 산동성 제나라 임치(临淄) 고성 출토
<출처>
1. 산동성박물관
2. 두산백과
3. 한국고고학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4.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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