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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조선백자]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1. 조선왕실과 백자2. 백자에 담긴 출생과 죽음3. 지방의 백자4. 문인문화의 유행5. 백자의 제작6. 무늬로 보는 상징과 의미7. 문양이 된 문자8.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조선후기에는 중국에서 생산된 도자기가 유럽까지 수출되었으며, 일본에서도 자체적으로 도자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경향이 반영되어 조선후기 백자에는 중국과 일본에서 유행한 장식기법이나 문양들이 반영된다. 도자기 표면을 도드라지게 장식하는 기법은 중국에서 만든 도자기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물론 유럽까지도 널리 인기를 끌었다. 또한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도안들이 길상문으로 조선백자에 받아 들여진다. 도자기 문양을 통해서도 당시 동아시의 문화교류와 흐름을 단편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백자양각 무국문 병, 조선 19세기

조선후기 백자 문양에 보이는 교류와 유행
조선후기 백자에는 중국과 일본 등에서 동시대적으로 발달한 문양들이 새로운 장식 소재로 활용되었다. 기면이 도드라지게 장식하는 양각기법으로 나뭇가에 여러 송이의 만개한 꽃을 표현한 매화문은 중국 명.청대 제작품에도 나타나며, 중국과 조선을 넘어 유럽에서도 애호되었다. 영지초화문이나 보상화당초문, 율문 등 중국 청대와 일본 에도시대에 유행한 도안들은 조선에서도 길상문의 일종으로 선호되며 여러 기종에 장식되었고, 다른 길상 문양들과도 섞이며 다채로운 구성을 보인다. 국내 유적에서는 분원 제작품과 함께 중국산과 일본산이 모두 출토되어, 당시의 선호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지역에서 보이는 문양의 유사성은 기법적 특징을 부각하거나 길상적 의미를 담아내는 가운데 도자기 문양의 광범위한 교류와 유행의 흐름을 드러내며, 조형적으로 한층 풍성해진 조선후기 백자의 발달상 역시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백자청화 칠보화훼문 사각 병, 조선 19세기

조선후기에 주로 제작된 정사각형 병으로, 바각면에는 ‘무신 경슈궁三’의 점각 명문이 있다. 경수궁은 정조의 두번째 후궁인 화빈 윤씨의 궁으로, 1780년 화빈 책봉과 함께 궁호가 내려졌다. ‘戊申’의 간지 및 병의 양식적 특징으로부터 제작 시기는 1848년으로 추정된다. 옆면에는 소나무 껍질과 비슷하다고 하여 ‘송피릉(松皮菱)’이라고 불리는 창을 넣었다. 2면씩 각기 다른 문양을 구성하여, 한 면에는 송피릉 내부에 칠보문, 외부에 매죽문을 넣었고, 다른 면에는 내부에 화훼문, 외부에는 물 위에 꽃이 떠가는 모양의 ‘화류수문(花流水紋)’을 시문했다. 송피릉과 화류수문은 일본의 에도시대에 걸쳐 유행한 문양들로, 조선후기 백자에 활용된 예는 드물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백자청화 화문 화형 잔대, 조선 19세기

윗면의 모양이 옆으로 긴 능화형(菱花形)을 이루는 잔받침이다. 안쪽 면에는 청화로 여러개의 작은 원을 그리고, 원 안에는 꽃을 중심으로 다양한 도안을 구성했다. 일명 ‘환문(丸紋)’으로도 불리는 여러 종류의 원형 도안은 일본에서 에도시대에 걸쳐 의복과 직물 문양으로 유행했다. 각종 공예품에도 장식되었고, 일본 뿐 아니라 명말 청초 중국 경덕진에서 일본의 기호에 맞춰 수출한 숀즈이(祥瑞)자기 등 중국산 백자에도 시문되었다. 이 잔대는 조선후기 백자에 이러한 문양이 차용된 예로 주목된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백자청화 연화빙렬문 접시, 백자청화 망목문 접시.잔대, 조선 19세기

빙렬무늬, 그물무늬
구획면 안쪽으로 ‘ㄱ’자 테두리를 두르고 간략한 화문을 넣은 문양 구성은 중국 명대 후기 경덕진과 남방의 민요에서 대량 생산, 수출되던 ‘크락자기’에 연원이 있다. 크락자기는 일본, 동남아, 유럽 등지로 수출된 이래 각지에서 모방, 변형되었고, 조선에서는 주로 19세기경의 제작품에서 동시대 변형 양식의 영향이 보인다. 하나의 밤송이에 3개의 밤알이 놓여 자손번창의 의미를 내포하는 율문은 17세기 중반경 일본의 이마리(離万里) 자기에서 보이며, 국내에도 18세기 후반에 유입되었다. 19세기 분원에서 제작된 발, 접시, 합 등 여러 기종에 시문되었으며, 일본산 백자 역시 국내 유적에서 지속적으로 출토되고 있다. 그물망이 펼쳐져 있는 듯한 문양은 ‘망목문(網目文)’으로도 불린다. 일본의 에도시대에 걸쳐 의복과 염직의 도안으로 애호되며 도자기를 비롯한 공예품의 배경 문양으로도 즐겨 활용되었다. 빙렬문(氷裂文) 또는 빙죽문(氷竹文)으로 불리는 문양은 얼음과도 같이 날카로운 대나무 폭죽이 터지는 모습으로, 귀신을 쫓고 평안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중국에서 각종 공예품의 장식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일본에서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에 걸쳐 많이 나타난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백자청화 율문 합,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율문 접시.발.잔,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화문 접시, 조선 19세기 서울 종로구 송현동 유적 출토, 백자청화 율문 접시, 일본 19세기~20세기 초, 서울 종로구 송현동 유적 출토, 백자청화 율문 접시, 일본 19세기~20세기초, 서울 종로구 청진동 유적 출토

조선후기 중국과 일본에서 유행한 문양.

백자청화 화문 발.잔, 백자청화 화문 접시, 백자청화 만자문 매화문 사각 연적, 백자청화 화문 발, 조선 19세기

백자청화 화문 발, 조선 19세기

청화백자 영지.초화무늬 접시, 발, 조선 19세기

영지.초화무늬
중국 청대 경덕진 민요에서 유행한 보상당초문과 영지초화문은 조선에서도 청화백자의 문양으로 시문되었다. 보상당초문은 오랜 기간 공예품과 건축물에 장식되었는데, 외곽선을 살려 도안화한 문양의 청화백자가 중국 청대 경덕진 민요에서 대량생산되며 조선에서도 분원의 19세기경 제작품에 나타났다. 염지초화문 역시 중국 청대 경덕진 및 남방의 민요에서 유행한 이래 조선과 일본에서도 모방되었고, 근대기 일본에서는 스텐실 기법으로 대량 시문되며 지속적으로 유행했다. 이들 문양이 시문된 분원 제작품에는 굽 안에 왕실내 사용처를 청화 명문으로 표시한 예도 있어 고급품으로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국내 여러 유적에서는 분원산 및 중국산과 일본산이 모두 출토되어 광범위한 유행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 2016년)

<출처>

  1. 안내문, 이화여대박물관.2016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