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종로2가 탑골공원에 남아 있는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이다. 조선왕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이래 오랜 세월 도성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던 석탑으로 지금은 유리보호각 속에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높이 12m 정도 석탑으로 하얀색의 외관떄문에 백탑이라고도 불렸다. 기단부는 3단으로 되어 있으며 亞자 형태를 하고 있다. 기단에는 여러가지 용, 사자, 연꽃무늬를 비롯하여 다양한 장식을 조각해 놓고 있다. 탑신은 10층으로 되어 있는데 3층까지는 亞자 형태를 하고 있다. 원나라의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석탑으로 기존 석탑과는 달리 목조건축물을 사실적으로 모방하고 았다. 경천사지 십층석탑(국보)과 더불어 고려말, 조선초를 대표하는 석탑이다.
이곳에 원각사를 세운 사람은 단종을 폐위시키고 무력으로 왕좌에 오른 수양대군, 즉 세조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많은 살생을 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피를 많이 본 민족인 토번족인 티벳인,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라마교를 많이 숭상하고 이런류의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고, 세조 또한 조카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을 살생한 까닭에 조선초 불교와 많은 관계를 맺고 여러 곳에 흔적을 남겨놓고 있다.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국보)>
세조가 원각사를 세운 이래 하얀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석탑은 도심 한가운 우뚝 솟아 있었던 중요한 이정표였을 것으로 보인다.
<탑을 받치는 기단부>
3단으로 되어 있으며 ‘亞’모양으로 세겹으로 되어 있다. 기단의 각층마다 옆면에는 용, 사자, 연꽃무늬 등 다양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다.
<가운데 기단부에 새겨놓은 부조상>
삼장법사(三藏法師)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탑신 1~3층>
탑신은 10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3층까지는 기단부와 마차가지로 아(亞)자 형태로 되어 있다. 지붕, 기단, 공포 등 목탑의 형태를 아주 세밀하게 모방하고 있으며, 벽면에는 다양한 불상을 새겨놓고 있다.
<탑신 몸돌에 새겨진 부조상>
가운데 삼존여래상을 중심으로 보살, 제자 등의 참여한 법회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기둥 바깥쪽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은 것으로 보인다.
<탑신 상층부>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뒤에서 본 모습>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국보, 1467년(세조 13), 서울 종로구 종로2가
이 탑은 세조(世祖)가 세운 원각사(圓覺寺) 터에 남아 있는 높이 12m의 십층석탑이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11)에 조계종의본산이었던 흥복사(興福寺) 터를 확장하여 세운 사찰인데, 이 탑은 2년 뒤인 1467년(세조 13)에 완성했다. 세조는 사리분신(舍利分身)하는 경이로운 일을 겪은 뒤 원각사를 짓기로 결정하였는데, 공사 도중에도 사리분신하고 서기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지금 견해로는 십층 석탑이지만 사료에는 13층의 탑(窣堵婆, 솔도파)을 세워 분신사리와 새로 번역한 《원각경(圓覺經)》을 모셔 두었다고 한다. 亞자 모양의 기단은 세 겹인데, 아래에는 용과 연꽃 같은 무늬를 새겼고, 중간에는 삼장법사(三藏法師)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일행이 불법(佛法)을 구해오는 과정을 그려 새겼다. 위에는 부처님의 전생 설화와 일생을 조각하였다. 법회 장면을 새긴탑의 몸체에는 현판, 용을 휘감은 기둥, 목조구조, 지붕을 두었는데, 마치 하나의 건물 같다. 탑을 만든 재료는 흔치 않은 대리석이며, 독특한 형태와 조각 솜씨는 조선시대 석탑의 백미로 꼽힌다.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제작한 경천사 십층석탑(국보 86호)와 여러 면에서 매우 비슷하다. <출처: 문화재청>
<출처>
1. 중앙박물관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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