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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신석기실] 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신석기시대 토기

한반도 신석기인들의 토기 사용은 2008년 제주도 고산리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에 만들어진 토기가 발견되어 그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토기는 형태와 무늬 등이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는 6,000년경부터 사용한 덧무늬토기와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사용한 빗살무늬토기가 있다.

덧무늬 토기는 주로 남해안과 동해안 등 해안가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겉면에 진흙띠를 붙여서 무늬를 만든 토기이다.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토기로 전국적으로 발굴지역이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어 한반도를 대표하는 신석기시대 토기라 할 수 있다. 가장 잘 알려진 빗살무늬토기로는 길쭉한 포탄 모양에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한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 무늬 토기가 있으며, 지역적으로 약간씩 다른 형태와 무늬를 가지는 지역성으로 보인다.

<신석기시대 토기>

고산리식토기, 2.제주 강정동(2008년 발굴),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로 바탕흙에 식물의 줄기 등 유기물질을 넣어 빚어 그 흔적이 무질서하게 남아 있다.

토기의 등장
토기는 1만년 전 인간이 진흙을 구우면 단단해진다는 화학적 변화를 깨닫고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 그 이상의 이미를 지닌다. 끓이고 데치고 삶는 등 다양한 조리방법이 가능해져 먹을 수 있는 재료가 많아 지고 보관, 운반도 이전보다 손쉬워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식생활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사람들은 한 곳에 비교적 오래 머물며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서울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이다. 화려하면서도 세밀한 기하학적 문양으로 장식한 포탄모양의 토기이다. 우리나라 선사시대를 대표하는 유물로 각종 책자나 등장하고 있다.

단지, 1.경북 김천 송죽리, 2.경남 진주 상촌리

빗살무늬토기의 등장과 확산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4,500년 무렵부터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형식의 토기로, 바닥이 뾰족한 포탄 모양이다. 토기 겉면은 점과 선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초기의 빗살무늬토기는 겉면을 아가리, 몸통, 바닥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무늬로 장식하는 규칙성을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3,500년 무렵 한반도 전 지역으로 빠르게 펴져 나갔다. 이전의 덧무늬토기와 달리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 전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어 우리나라 신석기 문화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1,2,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바리, 3,5.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바리,6,8, 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바리, 7. 함북 청진 유판(1933년 지표조사),

바리, 4,9,함북 경성 원수대 (1933년 지표조사)

바리, 10,11. 함북 경성 원수대 (1933년 지표조사)

동북지역
동북 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납작하고 아가리와 몸통에 무늬가 있다. 평행한 두 선을 나선형으로 돌려 구획하고 그 안을 점과 선으로 채워 넣은 번개무늬 토기는 이 지역 신석기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12, 13,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바리, 14. 전북 군산 비응도(1993~1994년 발굴), 16. 인천 삼목도(2003년 발굴)

바리, 17,18. 경기 안산 신길동(2006~2007년 발굴)

바리, 19.인천 운서동(2008년 발굴), 20. 충북 청원 쌍청리(1993년 발굴)

바리, 21.전북 진안 갈룡리(2000년 발굴), 22.전북 군산 가도(1993~1994년 발굴)

바리, 23,24,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바리, 26. 서울 암사동(1971~1975년 발굴), 25.평남 호남리(1979~1981년 발굴, 복제품)

중서부 지역,
중서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길쭉한 포탄 모양으로, 시기에 따라 무늬구성이 다르다. 처음에는 아가리.몸통.바닥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무늬로 장식하였으나, 점차 무늬가 생략된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27. 강원 고성 문암리(2002년 발굴), 28.강원 춘천 교동(1962년 발견)


바리, 29,33.강원 양양 오산리(1981~1983년 발굴),

바리, 30,31. 강원 고성 문암리(2002년 발굴),

바리, 32. 강원 양양 오산리(2006~2007년 발굴), 34.강원 양양 지경리(1995년 발굴)

중동부 지역
누른무늬토기는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에 사용한 토기로 아가리 주변에만 무늬새기개로 누르거나 벌려서 무늬를 넣은 것이다. 동북 지역에서 남해안 지역에 걸쳐 분포하며, 동남해안 지역은 둥근 바닥이, 강원도와 동북 지역은 납작 바닥이 많다. 덧무늬토기는 기원전 6,000~4,000년 무렵에 사용된 것으로 겉면에 진흙 띠를 엇붙여 무늬효과를 낸 것이다. 남해안의 여러 조개더미에서 빗살무늬토기층 아래에서 출토되고 있어 빗살무늬토기보다 이른 시기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덧무늬 토기는 강원도 고성, 양양 등 동해안과 전남 여수 등 남해안 지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봐서는 해안가에서 어로생활을 하던 신석기인들이 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실용과 예술, 토기
토기는 기본적으로 음식을 조리하고 담는 실생활도구였지만 신석기인의 예술작품이자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한반도 신석기시대 토기 겉면에는 점토 띠를 붙이거나 새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하학적 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둥근면을 따라 일정한 크기와 형태로 아름답게 배치한 모습은 신석기인의 뛰어난 미적감각과 공간 구성력을 보여준다. 또한 토기는 사람의 뼈를 추려 넣은 무덤으로도 사용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바리, 36.부산 영선동(1933년 지표조사), 38,부산 동삼동,

바리, 37.부산 가덕도(2010~2011년 발굴).

바리, 39.부산 동삼동(1999년 발굴), 41.울산 신암리(1974년 발굴),

 바리, 40,42.부산 동삼동,

 바리, 43.경남 김해 수가리(1978~1979년 발굴), 44.부산 동삼동(1970년 발굴),

45.전남 여수 송동(1989년 발굴)

바리, 47.부산 가덕도(2010~2011년 발굴), 48.경남 통영 연대도(1988~1991년 발굴)

바리, 49.부산 금곡동(1972~1973년 발굴), 50.울산 황성동(2009~2010년 발굴),

단지, 46.경남 김해 수가리(1978~1979년 발굴), 54.경남 통영 연대도(1988~1991년 발굴)

단지, 52,53.부산 가덕도(2010~2011년 발굴)

굽다리접시, 51.경남 사천 구평리(1967년 발굴)

남해안지역
남부지역의 빗살무늬토기는 바닥이 둘글며 새겨진 선이 굵다. 선의 시작과 끝에 홈이 깊게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점차 아가리에만 무늬가 남게 되며, 무늬 없이 입술을 겹으로 만든 겹아가리토기도 나타난다. <출처:중앙박물관>

남해내륙 지역

바리, 55.경북 김천 송죽리(1991~1993년 발굴), 56.경남 거창 입불리(1988년 발굴)

바리, 59,60.경북 김천 송죽리(1991~1993년 발굴),

바리, 57.경북 청도 오진리(1993년 발굴), 58.경남 진주 상촌리(1996~1998년 발굴)

빗살무늬토기의 지역성
빗살무늬토기는 그릇 생김새와 장식 무늬에 따라 크게 중서부지역.남부지역.동북지역.서북지역 등 네 개의 지역군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지역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늬의 종류와 장식 방법에 차이를 보인다. 빗살무늬토기는 기본적으로 지역성이 두드러지지만, 공통적으로 무늬가 점차 간략해지고 무늬의 면적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빗살무늬토기는 기원전 1,000년 무렵 청동기시대로 접어들면서 점차 새로운 형식의 민무늬토기로 대체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

토기는 인간이 흙과 불을 이용하여 만들어 낸 최초의 발명품이다. 토기 발명 이전에는 나무와 갈대, 가죽 등으로 그릇을 만들어 식량을 담거나 운반하는 데 이용하였다. 새로이 토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음식물의 가공법이 발달하였고, 음식물의 종류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토기는 기원전 6,000년 무렵의 덧무늬 토기로 알려져 왔다. 덧무늬토기는 겉면에 진흙 띠를 붙여 무늬를 만든 것으로, 주로 동해안과 남해안의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제주 고산리 유적에서 기원전 8,000년 무렵의 새로운 토기가 발굴됨에 따라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의 시작 연대가 앞당겨지게 되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