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성주사지 절터에 남아 있는 석등이다. 8각형 평면의 3단의 받침돌과 화개석, 지붕돌로 구성된 높이 2.2 m의 전형적인 통일신라 석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에는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가운데받침돌은 8각형 기둥 모야을 하고 있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고 있다. 조각수법이 비교적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전체적인 비례에서 주는 조형미는 양호한 편이다.
불을 밝히는 등(燈)은 인류의 문명생활과 함께 다양한 형태와 재료로 만들어졌다. 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을 밝혀 조명을 하는 등기(燈器)와 부처에 불빛을 올리는 공양구의 성격을 같이 가지고 있다. 목조건물을 모방해서 만든 승탑과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는데 석탑이나 승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 이후 많은 사찰에서 석등을 세웠는데 경주보다는 지방의 화엄십찰이나 선종계통 사찰에서 크고 웅장한 석등이 많이 남아 있다.
<성주사지 석등>
<불을 밝히는 화사석>
조각수법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아래받침돌>
성주사(聖住寺)는 보령 성주산 남쪽 기슭에 있었던 사찰로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중 성주산파의 중심사찰이었다. 충남 보령시에서 공주, 부여와 연결되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산중에 자리잡고 있지만 그 규모가 상당히 큰 평지사찰로 금당 뒷편에 3기의 삼층석탑, 앞편에는 오층석탑이 배치된 특이한 가람배치를 하고 있다. 동삼층석탑은 다른 곳에서 옮겨 왔기 떄문에 금당 뒷편에 2개의 탑이 세워 별도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탑을 중요시 했던 기존 불교와는 달리 수행을 중시여기는 선종계열 불교의 특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치원 글을 지은 낭혜화상탑비(국보)가 절터에 남아 있다.
<성주사지 오층석탑과 석등>
보령 성주사지 석등, 통일신라, 높이 2.2 m
탑 앞에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던 것을 1971년 석탑 4기를 해체 수리할 때 현재의 5층 석탑 앞에 복원한 것이다. 팔각을 기본으로 하였고, 복원할 때 부근의 판석 4개를 모아 지대석으로 이용하였다. 지대석 아랫돌은 정삭각형으로 각 면에 2개씩의 안상 조각이 있고, 그 위에 여덟 잎의 연꽃이 새겨져 있는 받침이 놓여 있다. 옥개석은 아랫면에 일단의 옥개받침이 있고 처마가 약간 위로 반전하였다. 조각 솜씨가 거칠고, 창에 문의 고정 흔적이 없으며, 등을 놓는 내부가 비실용적인 점 등으로 미루어 4기의 석탑보다 시대가 뒤떨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안내문, 문화재청, 2010년)
<출처>
- 문화재청
- 두산백과
- 위키백과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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