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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왕궁리유적 전시관] 고급물품을 제작하던 공방터

왕궁리 궁성 서북편에는 유리제품, 금제품, 동.청동제품같은 고급 물품을 생산하여 궁궐에 공급하기 위한 공방이 있었다. 발굴.조사결과 남북으로 긴 2동의 공방 관련 건물, 공방 관련 원료, 재료, 도구들을 버리는 폐기지가 확인되었으며, 금.유리제품 및 반제품, 금속.유리제작용 도가니, 슬래그, 송풍관, 원재료, 소토덩어리, 벽체편 등 다양한 종류의 공방 관련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공방터 앞쪽에는 좁은 수로를 통해 화장실 오수가 배출되는 구조를 하고 있는 대형화장실이 확인되었으며  뒤처리용 나무막대를 비롯하여 목제 칠기 뚜껑 등이 출토되었다.

유적지 입구에는 백제 무왕이 궁성을 조성했을 때부터 사찰로 변한 이후까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유적 전시관이 있다.  왕궁터 전체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의 모습 등을 재현해 놓고 있으며, 기와 등 건축 부재를 중심으로 유물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백제 왕궁터가 제대로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백제 궁성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되고 있다.

<왕궁리유적 공방터>

왕궁리유적 북서쪽 모퉁이에는 비교적 넓은 지역에 궁궐에서 필요한 고급 물품을 제작하기 위한 공방과 대형 화장실터가 확인되었다. 공방과 후원이 있는 영역은 지금도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다.

왕궁리유적의 서북편 지역 일대에서 유리제품, 금제품, 동.청동제품을 생산하여 궁에 공급하기 위한 대규모의 공방이 존재하였다. 동서석축배수로 북편의 내측에서 각종 유리.금속제작용 도가니, 유리.금속제품 편, 슬래그, 숫돌 등이 다랑 출토되어 공방의 존재가 입증되었다. 공방폐기지역의 현재 규모는 남북길이 14 m, 동서 7.4 m, 깊이는 약 30~40 cm로 땅을 파고 만들어져 있다. 내부에서는 금속 및 유리도니, 기와, 목탄, 소토덩어리, 금속 슬래그 등 공방잔해물이 소토 안에서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ㄷ었다. 왕궁리유적 공방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유물로는 광석에서 광물을 채취하거나 광물을 끓이는 용기인 도가니가 있다. 도가니는 크게 사용용도에 따라 유리제작용, 금속제작용 도가니로 나눌 수 있고, 다시 금속제작용 도가니는 금.동 혹은 청동도가니로 세분된다. (왕궁리유적 전시장, 2017년)

금제품,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금의 생산왕궁리유적의 서북편에는 금, 유리, 동 등 왕궁에서 필요한 귀중품의 생산과 관련된 제품과 원료, 도가니, 용재, 숫돌, 노의 벽체 편, 토관 등이 수습된 공방폐기장이 확인되어 그 주변에서 이들 제품을 생산하던 공방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왕궁리유적에서 수습된 금은 제품 생산 전단계인 재료 상태의 금막대, 금종이, 금덩어리와 이러한 재료를 이용한 금연꽃구슬, 영락, 연결고리, 금구슬, 금판, 금못, 제품 생산과정에서 남은 금판 편 등이 수습되어 금의 제련, 정련과 함께 세공이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금제품을 확대 관찰하면 표면에 연마흔적, 단조흔적, 주조흔적, 접합흔적 등이 남아 있어서 금제품의 제작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왕궁리유적 전시관, 2017년)

금각.꼬인금실,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금못, 금막대,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금제장식,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금실,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금동화형장식,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금도가니, , 백제, 익산 왕궁리 공방터 유적

도가니는 금.유리.동 등을 녹여 원료와 제품을 생산하는 용기로서 생산 재료에 따라 도가니의 크기와 형태에서 차이가 있다. 도가니의 바탕흙에는 점토에 작은 사립이 다량 혼입되었으며, 고온의 열에 의해 도가니의 표면에 유리막이 형성되었다. 금도가니는 높이 5 cm 미만의 소형으로 바닥이 뾰족한 원추형 또는 절구모양이며, 도가니 내벽에는 금 알갱이가 남아 있다. 유리도가니는 높이 15 cm 이상으로 포탄형의 몸체에 바닥은 뾰족하고 다른 도가니와는 달리 바닥이 편평하거나 들린 뚜껑이 확인된다. 동도가니는 높이 10 cm 내외로 포탄형의 몸체에 뾰족한 돌기가 부착되었으며, 구연부에 용액을 따를 수 있는 주구가 만들어져 있다. (왕궁리유적 전시관, 2017년)

유리제품, 익산 왕궁리 공방터유적

동도가니, 익산 왕궁리 공방터유적

유리도가니, 익산 왕궁리 공방터유적

거푸집, 익산 왕궁리 공방터유적

발굴당시 토관

토관, 익산 왕궁리 공방터유적

청자 연꽃무늬 단지편, 중국 남조, 익산 왕궁리 공방터유적

왕궁리유적의 정원(모형)

왕궁리유적 뒷편에 있는 정원과 후원영역

동서석축4 동측 말단부에서 석축의 높이를 활용하여 판석으로 외곽을 구획하고 내부를 기이한 형태의 강자갈돌로 화려하게 장식하고 소량의 물을 일시적으로 가둬 둔 소규모의 정원이다. 북쪽에서 물이 부분은 가운데가 우묵한 관정의 괴석을 놓고, 우측과 남측은 장대석을 세워 칸막이 시설을 설치하였다. 시설에 의한 정원의 중심공간의 규모는 3.2 m x 2,8 m로 추정된다. 우측에는 석축 앞에 둥근 장자갈돌과 판석을 깔고 위쪽으로 올라가 좌.우 양쪽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면을 조성하여 출입시설이 마들어졌다. (왕궁리유적 전시관, 2017년)

왕궁리유적 공방터  앞쪽에 위치한 대형 화장실유적.

좁은 수로를 통해 화장실 오수가 배출되는 구조를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화장실 유적이 확인되고 있다.

왕궁리유적의 대형화장실.
왕궁리유적 서북편의 석축배수로 남쪽에서 국내 최초로 발견되었다. 좁은 수로를 통하여 석축배수로로 연결되어 있어 화장실 내부의 오수가 일정하게 차게되면 수로로 배출되는 정화조와 유사한 과학적인 구조를 하고 있다. 고대 백제인들이 식생활, 질병상태,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왕궁리유적 전시관, 2017년)

연꽃무늬 수막새, 익산 왕궁리 화장실유적

도장찍은 기와, 익산 왕궁리 화장실유적

연꽃무늬 수막새, 익산 왕궁리 화장실유적

도장찍은 기와, 익산 왕궁리 화장실유적

토기뚜껑, 익산 왕궁리 화장실유적

<출처>

  1.  문화재청
  2.  두산백과
  3.  위키백과
  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5.  왕궁리 유적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