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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 간략화된 양식의 고려후기 비석

국립 부여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보물)이다. 이 비석은 원래 부여군 임천면 가신리 보광사 절터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이다. 고려말 공민왕 때 세워진 것으로 바침돌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고 비몸만 남아 있다. 비몸 가장자리에는 덩굴무늬를 띠 모양으로 새겼다. 비몸에는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이 새겨져 있다. 비몸 앞면은 비가 처음 세워질 때 새겨진 것이고, 뒷면은 영조대에 추가하여 적은 놓은 것이다. 화려하고 섬세하게 만들어졌던 고려중기 이전의 탑비와는 달리 간략화된 고려후기 석비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명국사 충감(1274~1338년)은 고려후기에 활동했던 승려이다. 선원사에서 출가하였으며, 원나라에서 공부하였다. 문자를 탐구하는 것보다는 도를 닦는 수행을 중시하였다. 선원사 주지를 지냈으며, 말년에는 보광사에서 머무르면서 절을 크게 중건하였다.

<부여 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보광선사비(보물)>

원래 부여군 임천면 성주산에 있던 보광사 절터에 남아 있던 것이다.


<비몸>

비석은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고 글자가 새겨진 비몸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때 절이 불타버리면서 몸돌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비석의 제목이 적힌 머리부분>

모서리를 사선로 살라내었으며, 덩굴모양의 띠를 새겨 둘렀다.

<비석에 새겨진 글자>

보광사를 크게 중창한 원명국사 충감의 행적을 새겨 놓았다.


<뒷면>

조선후기 영조 때 추가로 새겨진 글자가 있다.

<비석 뒷면에 새겨진 글자>

보광사지 대보광선사비, 보물, 부여 임천면 가신리 보광사터
고려시대에 보광사를 크게 일으킨 원명국사의 공적을 새긴 비이다. 충남 부여군 성주산의 보광사터에 있던 것을 1963년 박물관으로 옮겼으며 비몸돌만 남아 있다. 비문의 앞면은 건립당시인 고려 공민왕 7년(1358)에, 뒷면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새겼다. 비문에 의하면 원명국사는 19세에 등과하여 선원사에서 뜻을 펴오다가 공민왕 원년(1351)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죽으면서 제자들에게 비나 탑을 세우지 않도록 당부하여 6년이 지나서야 비가 세워졌다. 이 비는 <보광사중창비>라고도 하며, 고려 후기의 간략화된 석비 양식과 불교사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부여박물관, 2012년)

<출처>

  1. 부여박물관
  2. 문화재청
  3. 두산백과
  4. 위키백과
  5.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