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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신안해저선] 배에 실렸던 화물 – 도기 항아리, 자단목, 동전

1.전시개요2.중국 송대 복고풍 문화3.일본 상류층의 중국 취향4.고려의 공예문화5.차.향.꽃 문화6.경원을 떠나 하카타로7.용천요 청자8.도자기9.도기 항아리, 자단목, 동전10.금속으로 만든 물품11.향신료, 기타12.선상생활

신안선에 실렸던 화물은 일본 상류층이 선호했던 도자기류들이 가장 많으며, 장류나 술 등을 운송했던 도기 항아리도 2,400여 점 실렸으며 배의 바닥에는 인도, 동남아가 주산지인 자단목이 실려 있었다. 자단목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아 건축재, 불상, 도장, 장신구 등의 조각용 많이 쓰인 재료이다. 자단목 위에는 무게가 총 28톤에 상항히 많은 동전들이 실려 있었으며 자단목과 함께 배의 무게 중심을 잡았던 것으로 보인다. 동전은 1세기 신(新)나라때 만든 것부터 원나라 동전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중국 동전들이 포함하고 있다. 동전들은 일본에서 화폐로 사용하거나 불상 등을 만들기 위해 수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도기 항아리, 도기 호,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도기 항아리, 도기 호,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도기 항아리, 도기 호,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도기 대야, 도기 분,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단지모양을 하고 있는 작은 크기의 도기 항아리들.>

<작은 크기의 도기 항아리들.>

도기 항아리,
신안선에서 발견된 도기 항아리는 약 2,400여점으로 유약을 입힌 것과 입히지 않은 것 두 종류가 있다. 시유한 도기의 유색은 갈색, 적갈색, 암갈색, 흑갈색, 흑적갈색 등이 있다. 시유가 된 대형 항아리는 어깨부분에 ‘정보(正寶)’, ‘보(寶)’, ‘준보(準寶)’ 등의 명문이 있는 것도 있다. 신안선에서 발견된 도기 항아리는 술이나 장류가 담겨져 수출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시유가 된 질이 좋은 도기 항아리의 경우 일본의 다도에서 물을 담는 항아리로 쓰이기도 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중국 동전>

신안해저선이 실렸던 총 28톤의 동전 중 약 1톤 정도 분량을 전시해 놓았다. 상당히 많은 동전이 실렸음을 알 수 있다.

<신안선에 실렸던 동전들.>

<신안선에 실렸던 다양한 종류의 동전.>

신나라 때 동전 ‘화천’부터 원나라의 ‘지대통보’ 등 다양한 종류의 동전들이 실렸다.

<신안선에 실렸던 동전의 종료와 형태>

<잇펜쇼닌에덴, 엔이(카마쿠라 후기 화승, 가마쿠라 1299년, 비단에 채색, 쇼조코사(淸光寺).>

동전을 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동전
신안해저선에 실린 상품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동전입니다. 동전은 선박의 중간이나 선미부에 집중적으로 실려 있었습니다. 무게는 총 28톤이며, 개수로는 8백만 개에 이릅니다. 대부분 중국 동전이지만 소량의 베트남 동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기적으로 가장 이른 것은 14년 신나라(8 ~ 23년)에서 발행된 ‘화천(貨泉)’이며, 가장 늦은 것은 1310년에 제작된 원의 ‘지대통보(至大通寶)’, ‘대원통보(大元通寶)’입니다. 이 많은 동전을 대체 어디에 사용하려 했을까요? 일본에서는 동전을 녹여 청동 대불이나 금속공예품을 만ㄷ르었다고도 하지만, 화폐로 유통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12 ~ 15세기 일본에는 북송의 동전을 위주로 한 많은 중국 동전이 시중에 유통되어 화폐경제 활성화에 기여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요, 서하, 금, 베트남에서도 중국 동전이 통화로 유통되었습니다.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 1091 ~ 1153년)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도 고려에서 중국 동전이 화폐로 쓰인 사례를 전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신안화물전 바닥에 실려 있었던 자단목>

 향목, 불상, 고급가구 등을 만든 고급 목재로 중국에서 수입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단목에는 중국 한자를 비롯하여 숫자, 아라비아 숫자 그리고 알파벳도 보이는데, 지중해 지역과 서남아시아에서 온 상인들이 자단목 거래에 참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자단목
신안해저선은 바닷속 갯벌에 묻히면서 650여 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배 바닥에 고르게 놓인 자단목 1,000여 점 위에는 동전이 쌓여 있었는데, 자단목은 동전과 함께 배의 무게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습니다. 자단목은 단향(檀香)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가 산지로 향목, 불상, 고급 가구, 공예품을 만들 때 사용되었습니다.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문화재 중에는 자단목으로 만든 가구 잔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신안해저선에서 발견된 자단목의 대부분은 베어낸 다음 나무 껍질만 벗겨낸 원목입니다. 큰 것은 길이 1.5 ~ 2 m, 지름 40 ~ 70 cm 정도 됩니다. 길이 10 cm 정도로 작게 다듬은 자단목도 있는데, 향을 만드는데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작은 자단목 조각들 일부는 도자기가 담긴 나무상자에서 발견되었는데, 도자기의 파손을 막는 완충재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향목,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향목,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자단목 소반 잔편,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자단목 소반 잔편,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자단목, 원 13세기 후반 ~ 14세기 전반,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가운데 부분에 글자가 보인다.>

자단목에 보이는 글자
전체 자단목의 1/3에 해당하는 350여 점의 표면에는 쓰거나 새긴 글자, 숫자, 기호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한자로는 ‘천육(天六)’, ‘王’, ‘口’, ‘八八’, ‘土’, ‘元’, ‘田’, ‘回’, ‘品’, ‘十’ 등이 확인됩니다. 또한 묵서로 쓴 ‘大吉’은 도자기를 담았던 나무상자에서도 확인되는 것으로, 동일한 화물주를 가리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외에 로마 숫자, 아라비아 숫자 그리고 알파벳도 보입니다. 지중해 지역과 서남아시아에서 온 상인들이 산지를 드나들며 남긴 흔적일 것입니다. 신안해저선의 자단목은 산지에서 가까우며 외국상인들이 많이 거주하던 푸젠성 취안저우에서 선적되었을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6년)

<출처>

  1.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