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에 있는 목은 이색 유적지이다. 이곳은 고려말 정치가이자 대유학자였던 목은 이색(1328 ~ 1396년)이 태어난 곳으로 영양남씨 집성촌인 괴시마을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그가 태어난 집터가 있는 곳으로 그를 기리는 기념관, 태어난 옛집인 무가정을 복원한 건물, 유허비가 남아 있다.
이색은 이곳에서 태어나 원나라에 유학했으며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는 등 고려말 유학자이자 정치가로 신진사대부 세력을 이끌었다. 고려가 멸망한 후에도 고려에 충성을 다했으며, 조선중기 이후 주류세력이 되었던 사림의 학문적,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인물이다. 그가 원나라에서 보았던 중국 괴시마을과 이곳이 비슷하다고 하여 괴시(槐市)로 부르면서 마을이름도 괴시마을로 불리고 있다.
<목은 이색 유적지>
영덕군 영해면 괴시마을 뒷동산에 있는 목은 이색 유적지이다. 그가 태어났던 집터와 기념관 등이 있다.
<그가 태어났던 ‘무가정’이란 집이 있던 집터>
<생가터 뒷편에 복원해 놓은 생가>
앞면 3칸의 작은 정자 건물이다. 건물은 가운데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있고, 앞쪽에 툇마루가 있다.
<대청마루>
<생가터 뒷편에 있는 유허비>
<유허비에 새겨진 글자>
<생가터 뒷편 언덕에 있는 기념관>
<영덕 괴시마을>
목은 이색 선생 생가터 아래에 있는 전통마을로 영양남씨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양반들이 살았던 20~30여 호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다.
목은 이색 선생 유적지
서쪽으로는 드넓은 영해평야가 펼쳐있고, 그 뒷편으로는 낙동정맥의 크고 작은 산이 병풍처럼 솟아 있으며, 동으로는 일망무제의 창해가 펼쳐 있는 이곳은 고려 말 정치가, 대학자이며 대문호이었던 목은 이색 선생의 유허이다. 선생의 본관은 한산, 시호는 문정, 가정 이곡 선생과 함께 함창김씨를 부모로 하여 1328년 이곳에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무가정에서 탄생하였으며, 일찍이 20세에 부친 가정공이 머물던 원나라에 유학을 하였다. 귀국 후 26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숙몽부승을 시작으로 30세에 우간의대부, 40세에는 판개성부사 및 성균관의 대사성을 겸직하였고, 47세에는 왕명으로 영덕군 창수면 출신의 나옹선사의 비문을 찬하였다. 58세에 이르러서는 벽상삼중대광검교시중에 올랐으며, 62세에 판문하부사에 제수되었다. 64세에는 벽상공신삼중대광 한산부원군 영예문춘추관사에 올랐다. 65세떄에 이성계에 의해 고려가 망하였으나 고려조에 충성을 다하고자 하였으며, 마침내 69세대에 여강 청심루 아래 연자탄에서 세상을 떠났다. 목은선생께서는 이곳에서 태어나 일찍이 고향을 떠났으나, 종신토록 고향을 잊지 않았다. 특히 영덕과 관련하여서는 관대소부와 유사정기 외 20여 수에 이르는 시가 있어 당시 고향에 대한 선생의 생각과 당시의 풍습과 문화를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또한 6,000여 수에 이르는 방대한 시문을 남긴 대문호일 뿐만 아니라 성리학을 진작시킨 대학자이신 목은선생의 인연을 숭앙하고자 선생의 자취가 남은 이곳 유허에 유적지를 조성하였다. (안내문, 영덕군청, 2008년)
<출처>
- 안내문, 영덕군청, 2017년
- 영덕군 군지, 영덕군청, 2017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7년
- 한국민족문화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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