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삼가헌 고택(三可軒 古宅)이다. 조선초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과 낮은 산을 경계로 하여 자리잡고 있는 고택이다. 조선후기 영조 때 (1769년) 삼가헌 박성수가 이곳에 사랑채를 짓고 자신의 호인 ‘삼가헌’을 현판으로 걸었다. 원래 초가로 지었으나 19세기 초 안채와 사랑채를 짓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별당인 하엽정은 원래 서당으로 지어졌는데 정원이 매우 아름답다. 낙동강이 가까이 있어 낙동강 경치를 즐기기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근처에 사육신을 모신 낙빈서원이 있다.
삼가헌 고택은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가 있는 마당이 있으며, 안채는 사랑채를 거쳐서 출입할 수 있다. 안채와 사랑채는 트인 ‘ㅁ’자형 구조를 하고 있으며, 사랑채는 앞면 5칸의 ‘ㄱ’자형으로 구조로 넓은 대청마루와 온돌방, 작은 사랑 등이 배치되어 있다. 방마다 작은 골방과 사랑방의 수납공간이 매우 다양하게 분배되어 있다. 2009년 화재로 안채가 불타버렸다고 하며, 현재의 안채 건물은 최근에 다시 복원한 것이다.
<달성 삼가헌 고택>
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 살고 있는 고택으로 현재의 건물을 19세기에 새로 지은 것이다. 앞쪽에 사랑채, 안쪽에 안채가 배치되어 전체적으로 튼 ‘ㅁ’자 구조를 하고 있다.
<삼가헌 고택 대문채>
도시 한옥의 특징이 약간 반영되어 있다. 외양간과 문간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당에서 본 대문채>
<사랑채>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인데, 왼쪽 2칸은 사랑마루로, 오른쪽 3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사랑마루 내부>
마루 뒷편에 안마당을 출입하는 문이 있다.
<오른쪽에 있는 온돌방>
<사랑채 앞쪽 모퉁이에 있는 작은 창고>
<고택 왼쪽편에 있는 별당건물인 하엽정>
원래 서당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건물 앞 연못의 정자와 주변에 심어준 수목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 낸다. 대표적인 전통 정원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하엽정 에서 보이는 삼가헌 고택>
<삼가헌 고택이 있는 마을>
이곳은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는 삼가헌 고택 외에는 주택이 별로 없으며, 사육신을 모시는 낙빈서원이 뒷편에 있다.
<삼가헌 고택 옆에 있는 최근에 새로 고쳐 지은 고택>
<마을 뒷편에 있는 낙빈서원>
박팽년을 비롯하여 사육신을 모시는 서원이었다. 사당 기능은 묘골마을에 있는 육신사로 옮기고 지금은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마을에서 약 200 m 정도 떨어진 낙동강>
달성 삼가헌,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0
달성 삼가헌은 1769년 충정공 박팽년의 11대손인 삼가헌 박성수가 현재의 정침터에 지은 살림집이다. 이 건물은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그의 아들인 박광석이 이를 헐고 1809년에 안채를, 18년 후에 새로 사랑채를 지었다. 1874년에는 박광석의 손자인 박규현이 파산서당으로 사용하던 건물에 누마루를 부설하여 별당채를 짓고 ‘하엽정’이라는 현판을 달았는데, 하엽정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하는 연당 역시 이 때 만들어진 것이다. 사랑채의 당호인 삼가헌의 유래는 건물 내부 벽에 걸린 ‘상가헌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삼가’란 천하와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으며,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뜻이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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