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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낙빈서원, 박팽년 후손들이 사육신을 모셨던 서원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리에 있는 낙빈서원(洛濱書院)이다. 사육신 박팽년 후손들이 살고 있는 달성 묘골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낙동강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박팽년을 모신 사당이 있었으며, 현손인 박계창이 사육신이 나타난 꿈을 꾼 후 사육신 여섯분을 함께 모시고 강당을 건립하여 낙빈서원을 세웠으며,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낙빈서원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후 일제강점기에 강당만 복원되었다. 1970년대에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에 육신사가 세워져 지금은 재실로 사용되고 있다. 서당에서 출발한 교육기능 중심의 서원과는 달리 조상을 모시던 사당에서 출발한 조선후기 서원의 전형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육신을 모신 서원은 전국에 여러곳 있었는데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 창절사가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지 않고 남아 있다.

<달성 낙빈서원>

박팽년 후손이 살고 있는 삼가헌고택 뒷편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낙빈서원을 출입하는 작은 협문>

<낙빈서원 강당>

낙빈서원은 구한말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진 후 일제강점기에 강당건물만 복원되었다. 강당은 앞면 4칸의 크지 않은 규모로 가운데 대청마루를 두고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을 두었다. 지금은 재실로만 사용하고 있다.

<가운데 대청마루>

<온돌방>

<낙빈서원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풍경>

삼가헌고택을 비롯하여 농가 몇채가 있는 작은 마을이다.

<사육신을 모신 사당인 육신사>

박팽년 후손들이 모여사는 묘골마을에 있는 사당으로 1970년대에 세워졌다. 낙빈서원의 기능이 이곳으로 옮겨졌다고 할 수 있다.

낙빈서원,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이 곳에는 본래 충정공 박팽년의 위패를 봉안한 하빈사가있어 후손들이 향사를 지내왔다. 그런데 어느 해인가 공의 현손인 박계창이 사육신 여섯 분이 함께 사당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꾼 후 깨달은 바가 있어 다섯분의 신위를 더 설치해 함께 제향하게 되었다. 1691년(숙종17)에는 사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별묘와 강당을 건립하여 낙빈서원을 창건하였는데, 3년 후인 1694년(숙종 20)에 유생들의 소청으로 사액을 받았다. 이후 1866년(고종 3)에는 흥선대원군의 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었으나, 1924년 문중에서 원래 터보다 위쪽인 현 위치에 강당 건물만 중건하였는데, 그후로도 사당을 세우지 못해 서원이라기보다는 문중의 재사와 유사한 모습이 되었다. 1974년에는 ‘충효위인유적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묘골의 구 종가터 뒷산에 육신사가 건립되면서 그곳으로 사육신의 위패를 옮겨 봉안하고 매년 춘추절에 향사를 지내게 되었다. 현재의 서원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토기와집으로 1982년에 복원한 것이다.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달성군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18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