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사적)이다. 삼국시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고령의 서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군은 구릉의 능선부를 따라 수십기의 대형무덤이, 아래쪽에는 중.소형 무덤이 분포되어 있다. 무덤은 외형상 원형봉토분이며, 내부구조는 돌널무덤,동덧널무덤,돌방무덤으로 되어 있다. 수백기의 무덤이 모여 있어 가야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그중 봉분이 큰 것은 72기가 있다. 여러명이 같이 묻혀있는 무덤들이 발견되어 당시 순장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여러 형태의 토기를 비롯하여 금동관.갑옷, 투구, 칼, 꾸미개 등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고령은 북쪽에서 흘러 내려오는 회천과 서쪽에서 흘러오는 안림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낙동강이 가까이 있어 낙동강 내륙수운의 중심이 되었던 지역이다. 고령토가 유명하며 철이 많이 생산되어 대가야가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되었다. 고분이 있는 구릉의 북쪽 능선 산 정상부에는 주산성이, 또 구릉 동쪽 기슭에는 대가야 왕궁지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있다. 능선을 따라서 크고 작은 무덤들이 자리하고 있어 독특한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대야가 중심지였던 고령 서쪽에 있는 구릉 능선을 따라 크고 작은 무덤들이 있다. 주위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과 함께 큰 봉분들이 웅장하면서도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위성사진>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표적인 대가야 유물이다. 회장판갑옷과 앞이 각진 투구, 어깨가리개가 함께 있는 5세기경에 갑옷이다.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출토되었다. 투구는 철판 50여개를 2단으로 배치하고 못을 박아 만들었다. 둥근 형태의 챙에는 삼각형 구멍이 뚫려 있다.
<판금갑옷, 중앙박물관>
<재갈, 고령 지산동 73호묘, 대가야박물관>
대가야 고분군 아래쪽 박물관 옆에 있는 지산동 30호분은 비교적 큰 규모의 무덤으로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30호 무덤>
<석실 및 석곽 평.단면도>
<금동관, 5세기, 고령 지산동 30-2호묘, 국립대구박물관>
지산동 30호분
지산동 30호분은 주산 남동쪽 능선 자락의 끝에 단독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총고분으로 5세기 중엽 대가야 지배층의 분묘이다. 크기는 동서 18 m, 남북 15 m이며 남아 있는 봉토의 높이는 1.5 m였다. 1994 ~ 95년에 영남문화재단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는데, 그 결과 으뜸돌방 및 딸린 덧널이 T자모양, 순장덧널 3기가 ‘ㄷ’자 모양으로 동.남.북쪽에 배치되었다. 특히 가야지역 고분에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으뜸돌방의 바닥 아래에 하부덧널이 확인되었다. 남동쪽 경사면에 등고선 방향으로 구가 둘러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토기는 제의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들은 바리모양 그릇받침과 목긴 항아리, 손잡이 달린 항아리,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류와 덩이쇠, 말갖춤새, 무구, 금동관 등 다양하다. 한편 하부덧널 덮개돌에 새겨진 바위그림은 선사시대까지 신앙의 대상이었던 바위그림이 더 이상 신상대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음을 추정케한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남쪽편 능선에 있는 고분들>
<32호 무덤>
32호 무덤 출토 금동관은 불상 광배모양의 솟은 장식 양쪽으로 작은 연봉오리모양의 장식이 하나씩 있다. 관테의 안쪽에 천이나 가죽을 덧대어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보물)>
<갑옷, 어깨가리개, 투구, 5세기, 고령 지산동 32호묘, 국립대구박물관>
북쪽 능선을 따라 33~72호 무덤들이 있다. 아래쪽에는 작은 무덤들이, 위쪽에는 큰 무덤들이 자리잡고 있다.
<북쪽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고분들>
<능선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무덤들>
<능선 중간쯤에 있는 중형 무덤들>
<위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중간에는 봉분 형태가 남아 있지 않은 작은 무덤들이 있는 공간들을 볼 수 있다.>
<무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공간들에도 작은 무덤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능선 중간쯤에 위치한 44호 무덤은 지름 27 m, 높이 6 m의 큰 무덤으로 내부의 32기의 작은 순장덧널이 확인되어 당시의 순장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44호 무덤>
<으뜸방- 화려한 금관을 쓴 왕, 방의 길이 9.4m, 너비 1.75m>
으뜸방- 화려한 금관을 쓴 왕, 방의 길이 9.4m, 너비 1.75m>
화려한 금관을 쓰고 큰칼을 찬 왕이 잠들었습니다. 왕이 가진 보물은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머리맡과 발치에는 가까이서 왕을 모시던 신하가 같이 잠들었습니다. 왕의 주위에는 부장품을 가득 넣은 방 2개와 순장된 사람들이 잠든 방 32개가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1. 투구>
< 2. 청동그릇, 3. 토제등잔,>
<4. 쇠투겁창>
<5.숫돌, 6. 구슬,>
<7. 큰칼>
<8. 제사토기>
<9. 널못>
<10. 꺾쇠>
<11. 쇠화살촉>
<12. 제사토기>
<13. 말띠드리개>
< 14. 말띠꾸미개>
<15. 말안장 장식>
25호 방, 왕의 말을 부린 사람, 방의 길이 2.48m, 너비 0.6m
바닥이 편평하고 둥근 손잡이가 붙은 뚜껑을 덮은 단지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요? 꿀단지는 아니었을까요? 머리맡에 따로 공간을 만들어 소중하게 두었습니다. 여기에는 말을 탈 때 쓰는 발걸이와 재갈도 함께 있습니다. 말을 부려서 왕을 모셔야 하니까요.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마부, 고령 지산동 44호묘 25호 순장곽, 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1. 제사토기>
<2.발걸이>
<3. 말 띠고리, 4. 말방울>
<5. 재갈>
11호 방, 허리에 칼을 찬 남자, 방의 길이 1.8m, 너비 0.41m
왕에 가까운 방에 누운 이 남자, 허리에 칼을 차고 있는 호위무사입니다. 나이가 40대로 지긋학, 화려한 금귀걸이를 하고 있으니 신하 중에서도 꽤 높은 호위대장이었나 봅니다. 머리 쪽에 놓인 굽다리접시에는 닭고기가 들었습니다. 평소에 닭을 무척 좋아하기도 했겠지만, 고기를 먹어줘야 칼을 제대로 썼겠지요.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무사, 고령 지산동 44호묘 11호 순장곽, 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1. 제사토기>
<2. 금귀걸이>
<3. 손칼, 5. 쇠화살촉>
<4. 큰칼>
대가야의 사회구조
대가야의 사회구조는 왕과 왕족 및 귀족들로 이루어진 최상위 계층, 호민층에 해당하는 중간계층, 생산을 직접 담당하는 일반민으로 이루어진 평민층, 최하위 신분인 노비 계층이 있었다. 또 전쟁을 주로 담당하는 무사 계층, 토기제작이나 금공품 제작에 종사하는 특수집단도 있었다. 지산동 44호분에 순장된 자들은 상류층, 무사층, 시종층으로 구분되고 있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대가야의 순장
순장을 주인공을 위해 사람이나 동물을 죽여 함께 매장하는 장의 행위이다. 이 순장은 “죽은 뒤에도 살아 있을 때처럼 영혼의 삶이 지속된다”는 계세사상에서 행해졌다. 지산동 44호분에는 32개의 순장곽 가운데 18기의 순장곽에서 22명의 순장자가 발굴되었다. 이러한 대규모의 순장은 대가야국의 왕권의 성장과 사후 세계에 대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지산동 44호분
지산동 44호분은 구릉의 꼭대기에 열을 지어 늘어선 5기의 대형분 중에서 남쪽으로 100 m 정도 떨어진 경사면에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1977년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되었으며 봉분 지름이 27 m, 높이 6 m의 규모이다. 내부구조는 으뜸돌방과 남.서돌방 3기와 이를 둘러싸듯이 방사상과 원주모양으로 배치되어 돌방과 같이 만들어진 32기의 작은 순장덧널이 들어있었다. 유물은 대부분 도굴되었지만 남은 것으로 금귀걸이.청동그릇.은장식품.야광조개로 만든 국자 등이 있어 원래는 아주 다양하고 많은 껴묻거리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특히 일본 오끼나와가 원산지인 야광조개로 만든 국자는 대가야의 원거리 대외 교역활동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이다. 이러한 무덤의 입지, 분포와 구조,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이 고분은 가야 고분 중 최고 지배층의 무덤인 왕릉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능선 윗쪽에 위치한 47호분은 직경 49 m로 지산동 고분군 중 가장 큰 규모이다. 대가야 왕릉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금장 환두대도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47호 무덤>
<환두대도>
<7, 고령 지산동 47호묘, 국립중앙박물관>
지산동 47호분
지산동 구분군 가운데 가장 큰 고분으로 1939년에 발굴되었다. 봉분의 직경이 49 m, 석실 크기가 9.8 m x 1.8 m로 금림왕릉으로 구전되며 출토 유물로는 금동제 호록, 황어뼈, 금장 환두대도, 이형금동제품, 철촉 30점 등이 있고 대가야 15대 이뇌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전형적인 순장형태를 보이고 있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능선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대형 고분들 중 앞쪽에 있는 45호 무덤이 있다. 장신구류, 무기류 및 각종 마구류가 출토되었다.
<45호 무덤>
<말안장 꾸미개, 6세기,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김해박물관>
<금동관, 6세기,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세잎장식 큰칼, 2.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금귀걸이, 6세기,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금제장식, 6세기,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목걸이, 5~6세기, 4. 고령 지산동 73호묘, 대가야박물관, 5, 고령 지산동 45호묘, 국립경주박물관>
<발걸이, 김해박물관 소장>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말띠드리개, 김해박물관 소장>
<화살통꾸미개, 띠고리, 김해박물관 소장>
<미늘쇠, 김해박물관>
대가야의 마구
대가야의 왕이나 귀족을은 말을 타고 기마전을 하기도 하였다. 말과 마구도 주인의 신분에 맞게 장식을 하였는데 말의 안장과 재갈, 띠 등은 금동이나 은으로 장식을 하였고 말방울과 발걸이도 갖추었다. 지산동 45호분에서는 말에 입히는 갑옷으로 보이는 네모꼴의 철판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전투 시에 사람과 말이 중무장한 것을 보여준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45호 무덤 앞에서 내려다 보이는 고령군 중심부가 내려다 보인다. 낙동강 지천이 회천이 흐르고 있으며 들판은 비교적 넓어 농업 생산력이 풍부한 것으로 보인다.
<고령군 중심부>
<능선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고분>
대가야(大伽倻)는 경상북도 고령지역에 있던 6가야중 하나로 520년간 존재하다고 한다. 금관가야가 고구려-신라연합군에게 공격을 받은 후 힘이 약해지자 가야연맹체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었으며, 백제와 함께 신라를 침입하기도 했다. 대가야는 철의 주산지였던 고령지역에서 철생산과 교역을 바탕으로 경제력을 얻었던 것으로 보이며, 대가야의 주요 유적지로는 지배층의 무덤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 합천 옥전동 고분군 등이 있다.
<덩이쇠, 5세기, 고령 지산동 75호묘, 대가야박물관>
<화살통 꾸미개, 5세기, 고령 지산동고분, 국립중앙박물관>
<문양을 새긴 흙방울, 5세기, 고령 지산동 5-1호묘, 대동문화재연구원>
이 방울에는 거북, 관을 쓴 남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금합 등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있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추상적으로 그려진 그림이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 김해박물관>
<긴목항아리, 중앙박물관>
<고둥이 담긴 굽다리접시, 중앙박물관>
<물고기 뼈가 담긴 굽다리접시, 중앙박물관>
<뚜껑접시, 중앙박물관>
<굽다리항아리, 뚜껑바리, 중앙박물관>
<여러잔토기, 김해박물관, 쟁반같은 큰 그릇에 작은 토기들을 넣은 독특한 형태의 그릇이다.>
<항아리.손잡이잔, 김해박물관>
<금귀걸이, 중앙박물관>
<금귀걸이, 중앙박물관>
<환두대도, 김해박물관>
<고리자루 큰칼, 4~6세기, 1. 봉황장식, 고령 지산동 73호묘, 대가야박물관>
<관꾸미개, 5세기, 4. 고령 지산동 73호묘 서순장관, 대가야박물관>
<쇠도끼, 김해박물관>
<쇠낫, 낫모양철기, 끌모양철기, 김해박물관>
<목걸이, 김해박물관>
고령 지산동 고분군, 사적 79호, 경북 고령군 고령읍 지산리
이 고분은 고령읍 주산(해발 311 m)의 남동쪽 능선을 따라 대형분, 중형분, 소형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축조 연대는 대가야 시대로 추정된다. 남쪽의 제일 큰 무덤이 금림 왕릉이라 전하고 있으며, 이외의 대형 고분들도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7년부터 경북대와 계명대 박물관에서 고분을 발굴하면서, 고분의 성격이 일부 밝혀져 대가야에 대한 역사 연구가 활발해졌다. 특히 제44호 고분에는 중앙에 주석실이 있고, 남쪽과 서쪽에 부석실이 있으며, 그 둘레에 32개의 순장을 위한 작은 석곽이 발견되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순장제도를 실증적으로 밝혀주고, 또한 이 고분이 우리나라 최초의 순장묘 임을 확인시켜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금동관, 금동관장식품, 금귀고리 등의 화려한 장신구와 함께 철제 무기류, 마구류, 토기류 등이 있다. 현재 호암미술관에 소장된 금관이 이 고분군에서 출토된 것인데, 경주지역 이외에서 출토된 금관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출처>
- 안내문, 고령군청, 2009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20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안내문, 김해박물관,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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