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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 신라실] 신라와 실크로드, 무기와 말갖춤

중앙박물관에는 신라의 금속공예 기술과 문화수준을 보여주는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신라는 5~6세기 내물왕대 이후 왕성이었던 월성 주변에 많은 돌무지덧널무덤들을 조성했는데 많은 껴묻거리들이 출토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많은 금관이 출토된 신라고분에서는 금속으로 만든 그릇들과 무기류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실크로드를 통해서 서역에서 들여왔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제품들이 출토되고 있어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활발했던 교류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신라와 실크로드

한무제 시대 중국이 서역과 교역로인 실크로드를 개척한 이래로 동.서양은 많은 교류를 가져왔다. 한반도 또한 중국과 교류, 북방 유목민족과의 교류 등을 통해 서역과 교류관계를 가져왔는데 동물문양 장신구, 각배 등 다양한 유물들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신라는 서기 5~6세기에 조성된 많은 돌무지덧널 무덤에서 서역과의 교류관계을 보여주는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 중 유리그릇이나 유리잔 등은 서아시아지역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유물들은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졌다고 한다. 당시의 바닷길로는 인도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는 여러차례 교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삼국시대의 바닷길 교류는 크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서역에서 만들어진 이런 유물들은 신라가 서역과 직접 교류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불교의 전파와 함께 당시 실크로드를 통한 교류가 활발했던 중국을 통해 들어왔다는 견해도 있다. 고구려는 국방.외교상 서역과 직접 교류할 필요도 있었고, 교류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어서 서역국가와 직접 교류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신라는 중국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교류했다는 의견의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서역물품들은 신라뿐만 아니라 삼한 이래로 백제, 가야에서 그 사례를 많이 찾아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며, 신라만의 특징은 아닌 듯 하다.


유리병, 국보,

 경주 황남대총에 출토된 문화재이다. 지중해 연안인 로마로부터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수입된 제품으로 설명이 되어 있지만, 페르시아에서 만들어졌다는 견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유리병은 손잡이에 금실을 감아 수리한 흔적으로 보아 매우 귀한 물품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유리잔, 유리, 금관총 출토, 유리잔, 보물,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유리잔으로 아가리부분이 넓게 바깥쪽으로 벌여졌고, 몸통부분은 밥 그릇 모양으로 밑아 약간 넓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는 형태로 서역에서 전해진 유물로 보고 있다.

유리잔,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유리잔,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유리잔,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금령총,

진남색의 유리알갱이를 위 아래로 녹여 붙여 반점무늬를 만들었다. 유리의 옅은 녹색과 짙은 코발트색의 조화가 오늘날의 미적 감각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다.

팔찌, 금.옥, 보물,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표면에 파란색의 터어키석과 회색, 흑색의 보석을 박아 넣고 금 알갱이를 붙여 꾸민 팔찌이다. 형태나 장식 기법으로 보아 서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의 팔찌 중 유일한 형태의 것이다. <출처:중앙박물관>

표면에 녹색의 터어키석과 회색.흑색의 보석을 박아 넣고 금 알갱이를 붙여 장식하였다. 형태나 기법으로 보아 서아시아에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팔찌는 외형에서도 기존에 많이 출토되는 신라의 금팔찌와는 상당히 다른 형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장신구 문양과 많이 비슷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은잔, 보물,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거북등무늬 안에 새.노루.범.말.사람 등의 여러가지 무늬가 새겨져 있다. 특히 사람은 큰 눈, 높은 코를 가진 서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신, 금동,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식리총,

신발의 바닥만 남은 것으로, 거북등무늬 안에는 짐승얼굴과 새무늬가 있고, 그 둘레에는 가릉빈가(새 몸에 사람 얼굴).새.기린.날개달린 물고기 등이 새겨져 있다. 11개의 연꽃무늬에는 작은 못(스파이크)를 붙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와 실크로드
신라는 중국 등 주변 국가뿐만 아니라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돌무지덧널무덤은 시베리아의 알타이 지역에 분포하는 무덤과 그 구조가 비슷하다. 또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관과 허리띠는 북방 유목 민족 문화와 연결되고 있다. 유리그릇, 장식보검, 뿔모양 잔, 상감 유리구슬 등은 지붕해 주변과 서아시아 지방에서 출토되는 것과 형태나 제작 기법이 비슷하다. 이 유물은 비단길 또는 바닷길로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의 금속그릇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신라의 금속그릇이다.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금속 그릇들은 경주 황남대총에서 출토된 것들을 위주로 전시되어 있으며, 대부분 실생활에 사용되었던 것을 모방하여 만든 부장품이나 청동제 제기인 것으로 보인다. 사발이나 합은 지금 사용하는 것들과 형태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않고, 신라나 가야에서 많이 사용한 굽다리접시가 특징적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청동으로 만든 제기처럼 보이는 초두를 비롯한 그릇들은 중국과 교류가 있었던 고조선 이래로 다양한 지역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초기의 청동그릇들은 중국에서 수입된 것으로 추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라의 청동그릇은 아마도 신라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 그릇에는 다양한 내용의 글자를 새겨넣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발, 금,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굽다리접시, 금, 보물,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실생활에 사용된 것이라기 보다는 무덤 부장품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실생활에서 사용하던 토기로 만든 굽다리접시를 모방해서 만든 것이다.

합, 은, 보물,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굽다리접시, 은,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사발, 은,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국자, 청동,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식리총.

경주 식리총에서 출토된 것으로 표면에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실생활에 사용하는 국자라기 보다는 제사에 사용하던 제기로 보인다.

그릇, 청동,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호우총, 새장식 합, 청동,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식리총

초두, 청동, 금관총 출토

자루솥, 청동,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식리총,

액체를 데우는 그릇이다. 손잡이는 용, 발은 말발굽모양으로 표현되어 있다. 대부분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며, 뚜껑이 있는 것도 있다. 북방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다. 청동으로 만든 초두는 제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이며 여러곳에서 출토되고 있는 유물이다.

1.네귀달린 항아리, 청동, 2.청동완, 4.완, 금.은

고구려에서 온 그릇
금관총 유물 중 도특한 형태를 하고 있는 용기 중 하나가 바로 손잡이가 네 개 달린 청동 항아리이다. 이 항아리는 형태나 특징으로 보아 고구려 항아리임이 분명하다. 금관총의 주인공이 사망한 시점에 고구려에서 신라로 보내 온 물품이었을 것이다. 금관총의 주인공은 고구려와 어떤 관계에 있던 인물어었고, 고구려에서는 이 항아리에 무엇을 담아 보냈을까? <출처:중앙박물관>

금속그릇
신라에서는 흙으로 구워 만든 토기와 금.은.청동 또는 철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였다. 금속 그릇은 권위나 신분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 쓰다가 무덤에 함께 묻었다. 사발이나 굽다리접시 같은 작은 그릇은 금.금동.은으로 만들고, 합.초두(鐎斗:액체를 데우는 그릇).항아리 등은 주로 청동으로 만들었다. 그릇의 밑바닥이나 뚜껑에는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나 연호(年號)와 같은 글자를 새기기도 하였다. 특히 초두와 세발솥은 고구려와 중국과 교류를 보여준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의 무기

신라의 무기는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가야의 무기류와 차이가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군과 함께 왜.가야 동맹과 큰 전쟁을 치른 5~6세기 이후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말갖춤은 ‘말탄사람토기’에서 잘 살펴볼 수 있으며, 각종 고분에서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고리자루칼 등이 껴묻거리로 출토되고 있다.

고리자루칼, 금.은.철,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북 지역(경주 호우총, 경주 구정동 무덤, 경산 임당동)

고리자루 큰 칼, 금동, 금관총 출토

투겁창.물미, 철,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북 의성 탑리 무덤

신라의 화살과 화살집

화살촉, 철,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북 경주

화살집,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호우총, 복원,

화살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국의 고서인 『주례』에 귀신을 몰아내는 방상시(方相氏) 모습의 가면으로 알려졌으나 화살집 장식으로 새롭게 알려졌다. <출처:중앙박물관>

신라의 무기
신라의 무기는 투겁창, 칼, 화살촉 등의 공격용과 갑옷, 투구 등 방어용이 있다. 이 가운데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무기로서의 용도뿐 아니라 권위를 상징하기도 하였다. 특히 세 고리(三環), 세 잎(三葉), 용,봉황 등으로 장식한 고리자루칼은 신라의 지배 아래에 들어온 지방 유력자에게 하사되기도 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말탄사람토기에서 볼 수 있는 신라의 말갖춤.

말안장꾸미개, 금동,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식리총,

말 안장의 뒷 가리개에 붙인 금속판으로 좌우에 봉황과 용이 배치되어 있다. 용의 비들이나 발 등이 세밀하게 잘 표현되어 있다. <출처:중앙박물관>

말안장꾸미개에서 볼 수 있는 섬세한 장식

말띠드리개, 금동,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북 경

말방울, 청동,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북 경주.

말방울, 청동,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북 경주.

말띠꾸미개, 금동, 삼국시대(신라) 5~6세기, 경상도지역

재갈, 금동, 삼국시대(신라) 5세기, 경주 황남대총

발걸이, 청동, 삼국시대(신라), 경주 황남대총

7.말띠드리개, 금동, 8.말띠꾸매개, 조개,

일본 열도산 고둥으로 만든 말띠꾸미개
금관총 유물 중 현 일본 규슈 지방 남부와 더 남쪽 바다에 서식하는 ‘이모가이’라는 아열대 고둥 껍데기를 가공해 만든 말띠꾸미개가 있다. 원뿔처럼 생긴 ‘이모가이’의 구멍 주변은 편병하고 소용돌이처럼 둥글게 말려 있는데, 이부분을 다듬어서 말띠꾸미개에 끼워 넣어 장식하는 데 사용하였다. 금관총 이외에도 황남대총 북분과 천모총 등 신라무덤에서 자주 출토되는 ‘이모가이’는 문헌기록에 나오지 않는 신라와 일본열도 왜의 교류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출처:중앙박물관>

 9.청동방울, 청동, 구형장식, 금동, 10.말띠꾸미개,금동.유리,

11.말방울, 청동, 12.바둑돌모양 돌, 돌

말갖춤
말갖춤은 말을 안정적으로 타고 내리거나 말을 장식하는데 사용되는 것으로 안장, 발걸이, 재갈, 말방울,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등이 있다. 신라의 왕릉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금이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말갖춤에는 뛰어난 공예기술이 잘 나타나 있다. 또 말갖춤은 신분을 상징하고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출처: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