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오아시스에 핀 문명

아라비아반도는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인접한 지리적 환경과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중요 해상교통로라는 점 때문에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비교적 이른 시기인 기원전 4천년부터 문명화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바레인섬으로 추정되는 딜문을 중심으로 타루트섬, 담맘 등 동부 해안 지역에서 당시 교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문명의 흔적들이 확인되고 있다. 전시에서는 이 지역에서 출토된 석상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형태의 토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동시대 다른 지역에 비해 세련되고 기술적 수준도 높았음을 알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고고학
아랍의 시인들은 아라비아를 여행한 첫 탐험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시 속에는 폐허가 된 고대 유적의 모습이 생생히 담겨 있습니다. 유럽의 탐험가들도 아라비아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독일의 카르스텐 니부어와 영국의 찰스 다우티 같은 일부 탐험가들은 아라비아의 역사와 고고학에 대한 귀중한 자료를 남겼습니다. 20세기 초, 해리 존 필비(압둘라 필비)는 최초로 남서부 아라비아 지역에 대한 조사를 기록하였습니다. 1960년대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 전역에 대한 대규모 발굴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조사는 꾸준히 진행되었지만 여전히 아라비아 고고학에 대한 이해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이 전시는 최근 10년 동안의 발굴을 포함하여 지난 수십년 동안의 발굴 성과가 담긴 사아디아라비아 고고학의 현재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람 모양의 석상, 카르얏 알카파, 아일 인근, 기원전 4천년기, >

사암,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석상들은 고대문명이 발생했던 시기에 만들어졌던 것으로 단순하지만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석상들이 아라비아반도의 고대문명을 대표하는 유물로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전시회장 입구에 전시되고 있었다.

이 석상은 비록 상반신만 표현되어 있으나, 신체의 특징은 매우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둥근 얼굴에는 귀가 달려 있으며, 비대칭적인 눈과 조그만 입술은 인물의 감정까지 느껴지게 합니다. 몸통은 직사각형의 특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팔고 손으로 몸을 감싸 안아 자연스럽게 신체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람 모양의 석상, 몰라.마다인 살레 인근, 기원전 4천년기, 사암>

이 석상은 몸체의 특징보다 다양한 장신구들이 더욱 강조되었습니다. 표정없는 사다리꼴 형태의 머리 어깨에는 한줄의 선으로 목걸이가 표현되었고, 팔이 없는 몸통에는 뾰족한 무기를 매단 띠와 허리띠가 뒷면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단검이 표현된 사람모양의 석상은 청동기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유럽과 중동 전역에서 두루 나타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람모양의 석상,>

오아시스에 핀 문명: 딜문, 타루트 섬 그리고 게라
아라비아의 동쪽, 아라비아 만 연안의 타루트 섬은 대추야자 나무가 무성한 오아시스로 신석기시대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4천년기말 부터 3천년기 초까지 고대 ‘딜문’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타루트 섬뿐만 아니라, 다란, 도사리야, 아브까이끄 등 동부 연안지역의 다양한 출토품들은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 인더스 문명과의 활발했던 교역을 보여줍니다. 고대 도시 ‘게라’로 추증되는 타즈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딜문(Dilmun)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의 기록에서 ‘바다 건너 천국’으로 묘사되었던 ‘딜문’의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아라비아 동쪽 해안 지역에서 딜문의 존재를 밝혀주는 고고학적 발굴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오늘날 바레인 섬이 그 중심지였습니다. 딜문 문명은 메소포타미아와 인더스 문명 사이의 해상 교역로 위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기원전 1700년 무렵에 매우 번성했습니다. 금이나 은, 진주, 대추야자와 같은 지역 생산품을 수출하고 목재나 구리를 수입하여 재수출 하기도 하여 부를 축적해 천국으로 여겨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멜루하, 마간, 딜문 사람들이여, 어서 나 엔키를 보라.
딜문의 배에 나무를 실어라. 마간의 배에 짐을 하늘 높이 실어가.
멜루하의 마길룸 배에 금과 은을 실어 날라가.
– 기원전 3천년기 엔키 신 관련 비석중 “엔키와 세상의 질서”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남성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중엽, 석회석>

1966년 타루트 섬에 소재한 무덤을 발굴하던 도중 출토된 석상입니다. 이 남성상처럼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자세와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는 모습은 기원전 3천년기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조각상이나 인장에 새겨진 그림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석상은 메소포타미아 지역과 교역이 증가하던 기원전 3천년기 중엽에 타루트 섬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그릇, 아인 앗사이, 기원전 5천년기, 토기>

거친 점토로 만든 이 그릇은 아라비아 만 연안 지역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그릇 안쪽에 붙어 있는 따개비들은 기원전 5천년기 중반에 아라비아 만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깨진 부분은 역청으로 메꿔 놓았는데, 이 시기 역청은 우바이드 채색 토기와 더불어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수입품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돌날, 도사리야, 기원전 5천년기, 흑요석>

도사리아 지역에서 출토된 흑요석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수입한 것 입니다. 기원전 6천년 후반에서 5천년 사이에 아라비아 반도는 터키지역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교역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우바이드 토기, 유바이드 5기(기원전 5,300 ~ 4,700년경), 토기에 채색>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에서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토기들이 대량으로 출토되었습니다. 우바이(ubaid) 토기라 불리는 이 토기는 기원전 7천년기 중엽에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어 3천년 넘게 생산되었습니다. 잘 정제된 녹황색 점토로 만들어졌고, 진한 갈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는 이 토기는 당시 아라비아 지역에서 만든 것보다 정교하고 섬세합니다. 우바이드 문화는 기원전 5,300 ~4,700년 무렵에 아라비아 북동쪽으로 확장했습니다. 이 움직임은 이후 수천년 동안 지속된 아라비아와 메소포타미아의 교역 관계의 시작을 알립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항아리, 이브키이크, 기원전 3000 ~ 2250년, 토기에 채색>

양식화된 염소가 그려져 있는 이 토기는 이란 남동부 지역에서 수입한 것입니다. 비슷한 형태의 토기들이 발루 치스탄의 밤푸르(Bampur), 테페야흐아(Tepe Yahya)에서도 확인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채색항아리,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 토기>

이 커다란 용기는 장례의식 때 사용되는 술과 같은 액체류를 저장했습니다. 이러한 토기들은 오만지역이나 남부 메소포타미아인 우르와 라르사(Larsa)에서도 발견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붉은간토기,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 토기>


<붉은간토기,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 토기>

무덤에서 주로 발견되는 이 토기는 표면에 산화철을 바르고 문질러서 광택을 냈습니다. 이러한 붉은 간 토기류는 메소포타미아와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에서 기원전 2천년기 중엽까지 사용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항아리, 타루트.루파야, 기원전 3천년 전반, 토기>

기름이나 곡식을 운반할 때 사용하던 저장용기로 메소포타미아 초기 왕조시대의 특징적인 항아리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항아리, 아브까이크.샤브카 함맘, 기원전 3천년기 전반, 토기>


<항아리, 아브까이크.샤브카 함맘, 기원전 3천년기 전반, 토기>


<항아리, 아브까이크.샤브카 함맘, 기원전 3천년기 전반, 토기>

이 항아리들은 이라크의 우르와 카파예(Khafaje) 무덤에서 나온 그릇과 유사합니다. 이들 또한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과 메소포타미아와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1.채색 항아리, 다란, 기원전 2100년경, 토기에 채색>

<2.채색 병, 다란, 기원전 2200 ~ 1800년, 토기에 채색>

<3.채색 사발, 다란, 기원전 3천년기, 토기에 채색>

<4.채색사발, 다란, 기원전 2200~1800년, 토기에 채색>

검은 세로선과 짧은 평행선으로 장식된 붉은 색 계통의 토기들은 다란에서 발견되는 지역 생산품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뱀무늬 그릇, 타루트 추정, 기원전 3천년기, 녹니석>

녹니석으로 만든 그릇은 고대 중근동 전지역에서 사용되었습니다. 타루트 섬에서 발굴된 녹니석 그릇은 대부분 타루트에서 제작되었으나, 일부는 페르시아 남동부에서 들어온 것입니다. 이란 남부 지역에서 생산된 녹니석 그릇들은 아라비아에서 매우 귀한 사치품이었습니다. 서로 몸이 꼬여 있는 뱀의 모습은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 문양 중 하나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병, 다란, 기원전 1600 ~ 1250년경, 녹니석>

<1.병 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백운모 편암, 2.그릇,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중엽, 녹니석>

<3.야자나무 무늬 그릇, 타루트 추정,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4. 병, 타루트, 기원전 2650 ~ 2250년경, 녹니석>

< 4. 병, 타루트, 기원전 2650 ~ 2250년경, 녹니석>

<1. 병,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2. 건축물이 새겨진 병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오두막 같은 건물 형태뿐만 아니라 윗가지 엮기방식으로 만든 울타리 형태도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3.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전반, 녹니석>

사슴, 사자 꼬리, 독수리 머리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사자 머리리를 한 독수리인 안주(Anzu)를 표현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4. 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남성상, 메소포타미아 추정, 기원전 3천년기, 청금성>

이 작은 조각상은 오늘날 아프카니스탄에서 생산되는 값비싼 청금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외투를 덮고 있는 남성의 눈과 긴머리, 수염은 메소포타미아 지역 조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뱀 두 마리를 잡고 싸우는 사람의 모습은 이란 남동부나 메소포타이아의 그릇에서도 나타납니다. 이 문양은 중근동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상인 야수의 제왕 모티프에서 변형된 것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그릇조각,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설화 석고>

<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설화 석고>

설화 석고로 만든 그릇들은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액체류를 저장하는 데 적합하지는 않았지만 기원전 2천년에서 1천년대까지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 많이 사용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잔, 타루트, 기원전 4~3천년기 추정, 석회석>

이 잔은 오만 해안가에서 발견되는 매우 희귀한 재료인 화석화된 산호 석회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비슷한 그릇들이 이란의 테페 야흐야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인도 보리수나무잎 무늬 항아리, 타루트, 기원전 2200 ~ 1800년, 토기>

잎이 넓은 보리수나무잎 무늬는 인더스 계곡의 하라파 지역에서 만든 토기의 특징적 요소로 타루트 섬에서 인더스 문명이 영향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그릇,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녹니석>

동심원으로 장식된 이 그릇은 오만 반도에서 수입된 것입니다. 이러한 그릇들은 기원전 3천년기 후반에 메소포타미아, 이란, 인더스 계곡, 아라비아 만 연안에서 널리 쓰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접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녹니석>

<사발,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동석>

<종모양 그릇, 타루트, 기원전 2550 ~ 2350년경, 녹니석>

 <잔,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동석>

<병, 타루트, 기원전 6세기, 토기, 유약바른 접시, 타루트, 기원전 1천년기, 채색도기>

<1. 인장, 타루트, 기원전 2200 ~ 2000년경, 녹니석. 2. 인장, 타루트, 기원전 3천년기 후반, 테라코타 또는 스텔라이트, 3. 스카라브, 다란, 기원전 2천년기 후반 추정, 석회석, 4. 딜문인장, 다란, 기원전 2000 ~ 1800년경, 스텔라이트>

이 인장(1번)은 아라비아 만 연안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것입니다. 시기는 기원전 22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북동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었습니다. 젖은 진흙이나 왁스에 인장을 찍어서 행정문서나 서신을 봉인하는 용도로 사용 하거나, 벨트나 목걸이의 장신구로도 이용하였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그리스어 명문이 있는 석비, 타루트.루피아, 기원전 3~2세기, 석회석>

이 석비에는”하빌리 나무마트, 안녕히”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동부 아라비아에 발견된 몇 안되는 그리스어 명문 중 하나로 이와 비슷한 묘비가 바레인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석상, 타루트, 기원전 2 ~ 1세기, 석회석>

사람 모양이 이 석상들은 무덤에 위치를 표시하고, 죽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네페쉬석상(Nehpesh stele)으로 불리는 이 석상들은 바레인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네페쉬는 ‘숨(영혼)’을 뜻하는 아람 어에서 파생된 다어로 헬레니즘문화의 영향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하사 지역 방언이 새겨진 석비, 타즈, 기원전 2~1세기,>

‘아라비아의 길’은 고대 아라비아의 다양한 언어로 된 명문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문자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기원후 6세기까지 고대 아라비아의 문화적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묘비, 타즈, 기원전 3~1세기,>

이 묘비는 기원전 3~1세기 아라비아 북동쪽에서 사용하던 하사어(Hasaean)으로 쓰여졌습니다. 죽은 이는 가디야트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특이하게도 모계 혈통의 조상들만 묘비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게라(Gerraha)
기원전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3세가 메소포타미아를 차지한 이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은 아라비아 반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아라비아 북동부 지역에서 고대 그리스인들의 거주지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당시의 보석, 동적, 조각 등 교역품에서 그리스 문화의 흔적이 나타납니다. 고대 문헌으로 만 알려진 아라비아 북동부의 게라는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 페르시아, 그리스를 비롯하여 인도와 중국과도 교역하며 매우 번성했던 도시였습니다. 현재 그 위치는 타즈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그리스에서 온 금 세공품이 가득한 왕족 무덤이 이곳에서 발굴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사바인과 게라인들보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없다.
이들안 마치 아시아와 유럽에서 가져온 세상 모든 것을 가진 창고와 같다.
– 포티우스, 『비블리오테카(Bibliotheca)』, 7권, 9세기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