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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로 가는 길] 고대 유적지 울라와 마다인 살레

알-울라(Al Ola)는 사우디아라비아 부서부에 있는 도시로 메디니(Median)에서 북쪽으로 약 300 km 떨어져 있다. 이 도시는 고대 향료 교역로의 주요 거점이있던 데단(Dedan)이 있었던 지역이다.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알-울라는 기원전 6세기에 지어졌는데 사막의 오아시스로 비옥한 토양과 물이 풍부한 지역이다. 이곳에는 고대 리흐얀(Lyeyan)왕국이 있었으며 아라비아 사막을 경유하는 대상들을 대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등 경제적으로 크게 번성하였다. 도시에는 진흙벽돌과 돌로된 집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 지역에서는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거대 조각상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사원의 건축부재 등에서 당시 발달된 문화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울라(Al-‘Ula)
아라비아 북서부의 울라는 향 교역로의 주요 거점이었던 고대 도시 데단이 위치해 있던 지역입니다. 오랫동안 리흐얀왕조의 지배를 받았던 이 지역은 북서 아라비아를 경유하는 대상들의 물품을 보관하고 세금을 부과하면서 경제적으로 번성했습니다. 리흐얀 인들은 고유 문자를 사용했고 웅장한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데단의 고대 유적 중 하나인 쿠라이바는 다양한 바위 무덤이 조성되어 죽은 자들을 기렸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이 지역은 기원전 1세기 말 큰 지진으로 쇠락하기 시작하여 나바테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고대 중동지역의 문명들이 교류하는 교역로에서 핵심역할을 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남아 있는 알-울라 유적지.  (사진출처:위키피디아, 2019년)>

<울라 지역에서 출토된 거대 조각상. 기원전 5~2세기>

이 지역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이집트나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발까로 가는길, 히자즈 근처의 데단은 폐허로 남았지만 아름다운 도시였다.
– 야꾸트 알하마위, 『세계사전』, 13세기


<조각상, 울라, 기원전 5 ~ 2세기, 사암>

한 덩어리의 사암을 깎아 만든 이 조각상은 형태와 자세에서 리흐얀 조각상들의 전형적 양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리흐얀 왕조의 조각가들은 장소와 수요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조각상을 제작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조각상의 머리,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사암으로 된 거대한 남성 머리 조각으로 두건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역청으로 칠한 표면은 여러 군데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조각상의 머리,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사암으로 된 남성 조각상의 머리 부분으로 표면에 역청을 겹겹이 칠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석상의 왼쪽 팔에 원형 구슬로 된 줄무늬 보석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짧은 튜닉을 입고 있으며 허리를 감싼 두 끈이 양측에 매듭 져 있습니다. 팔과 다리, 복부의 근육을 명확히 표현한 데서 조각가의 뛰어난 해부학적 지식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이 거대한 조각상은 허리에 두 겹의 띠를 두른 튜닉을 입었습니다. 복부와 팔 그리고 근육의 해부학적 묘사가 뛰어납니다. 상반신 부분이 검게 보인 것은 석유와 같은 역청으로 칠을 했었기 때문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남성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이 조각상은 리흐얀 사원에서 발견된 일반적인 조각상과 형식적으로 유사합니다. 납작한 등을 벽에 기댄 채 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몸의 일부분에 빨간 안료가 남아 있습니다. 이 조각상이 출토된 사원 주위에서 나온 명문으로 미루어 볼 때, 이 석상은 리흐얀 시대의 통치자를 표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데안 어 명문, 울라, 기원전 6~3세기, 적사암>


<조각상,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머리 조각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6~2세기, 적사암>

<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사자조각, 울라, 기원전 6~4세기, 사암>

고대 중근동에서 사자는 왕의 힘과 위대함을 상징했습니다. 특히, 사자는 주로 사원과 궁전에서 입구를 지키는 모습으로 많이 나타납니다. 울라 지역에서도 무덤 입구에 사자를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새끼 사자에게 젖을 먹이는 암사자의 모습은 맹수로서의 사자와 다른 새로운 면모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리흐얀 어 명문, 울라, 기원전 5~2세기, 사암>

리흐얀 왕조 시대에는 고유한 문자를 사용했습니다. 이 명문은 한 장인이 두가바트에게 작은 조각상을 바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장인이 두-가바트 신이 만족하기를 기원하며 이 작은 조각상을 바쳤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제단(또는 향로) 조각, 울라, 기원전 4~3세기, 사암>

두 줄 사이로 염소 행렬의 모습이 저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 조각은 제단의 아랫 부분이나 향로의 일부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울라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사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Al-Hijr라 불리는 마다인살레(Mada’in Saleh)는 알-울라 부근에 위치한 고대 유적지로 요르단의 페트라(Petra)로 기원전 1세기 나바테아 왕국의 영역이었다. 이곳은 지중해와 페트라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으로 페트라의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사암무덤들이 남아 있다. 나바테아왕국은 106년 로마제국에 병합되면서 이 지역 또한 로마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전시된 유물로는 로마시대 유물을 연상시키는 글자가 새겨진 건죽부재 등이 있다.

마다인 살레(Mada’in Saleh)
울라 인근의 마다인 살레(또는 히즈르)는 기원전 1세기부터 나바테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당시 헤그라로 불렸던 이 도시는 물과 식량자원이 풍부했고 지중해와 페트라로 이어지는 교역의 중심지였습니다. 이곳에 정착한 나바테아 인들은 페트라의 웅장한 건축물을 연상케하는 거대한 사암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모두 94개에 이르는 이 무덤들의 크기와 세부 장식은 다양합니다. 무덤 주인의 이름이 입구에 새겨져 있으며 때로는 조각가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나바테아 왕국은 그들만의 언어와 수준 높은 건축 기술을 보유했지만 106년 로마 제국에 병합되었고, 이후 마디안 살레는 아라비아 주의 일부로서 로마 제국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페트라 유적을 연상시키는 마다인 살레의 거대 무덤(사진출처: 위키피디아, 2019년)>

<나바테아 어 명문, 타이마, 기원전 1세기, 사암>

<라틴어 명문, 마다인 살레, 175~177년, 사암>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치세에 만들어진 이 사암 판에는 헤그라(마다인 살레)에 있었던 한 건물의 재건축을 기념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명문에는 로마 군대의 도움으로 공사가 진행되었지만 헤그라 시에서 자금을 조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이 라틴 어 명문은 로마의 한 지방으로 전락한 헤그라와 중앙 정부 사이의 정치, 경제적 관계를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향로, 타이마,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 사암>

향로 윗 부분에 나바테아 어로 된 비문이 적혀 있습니다. 비문에는 “볼란의 아들, 압둘 카타브의 무덤”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향로, 타이마, 기원전 1세기 ~ 기원후 1세기, 사암>

<나바테아 양식 기둥머리, 마다인 살레, 1세기경, 사암>

라틴어 명문과 함께 발견된 이 기둥머리는 아랫 부분에 기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크기로 보아 문이나 대문 장식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물고기 무늬 토기, 마다인 살레, 6세기 추정, 토기>

물고기 장식이 있는 토기는 6~7세기 요르단 북부에서 주로 발굴되는 것으로 이슬람 시대 이전, 원거리 무역으로 번성했던 마다인 살레 문명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아라비아의 길’, 2017년)

<옷조각, 마다인 살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직물과 가죽>


<항아리, 마다인 살레, 기원전 3세기 ~ 기원후 3세기, 토기>


<항아리, 마다인 살레, 2~4세기, 토기>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7년
  2. 위키피디아,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