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 있는 황토현 전적(사적)와 이평면 하송리에 있는 만석보 옛터이다. 황토현 전적은 동학농민군이 1894년 관군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동학농민군은 고부관아를 점거한 후 백산으로 진출하였는데 전라감사가 보낸 관군과 이곳 황토현에서 대치하였는데 밤을 이용한 기습공격으로 관군을 크게 물리쳤다. 이 싸움은 동학농민운동은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당시 국내 및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적지에는 당시를 기념하는 사당과 기념관, 기념물 등이 세워져 있다.
<정읍 황토현전적(사적)>
구한말 동학농민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던 계기가 되었던 황토현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이곳은 고부읍치 북쪽 넓은 들판을 내려보고 있는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당시를 기념하는 기념관과 사당 등이 전적지임을 알려주고 있다.
<황토현 전적지에 있는 사당>
<동학농민운동 기념관>
황토현 전적지, 사적, 전북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황토현 전적은 동학농민군이 관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 곳이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군은 1894년 고부 관아를 습격하여 조병갑을 응징했다. 그러나 사태 진정시키러 온 정부관리는 모든 잘못을 농민군에게 돌리며 그들을 탄압했다. 이에 수만 명의 농민군은 고부 북쪽의 백산에 집결하여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구한다는 기치 아래 번봉준을 대장으로 추대했다. 농민군은 1894년 5월 11일 새벽 이곳에 진을 치고 있던 관군을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오늘날 이곳은 동학 농민군이 남긴 정신과 함께 나라 사랑과 민주주의의 참뜻을 전하고 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8년)
만석보는 호남평야를 흐르는 동진강을 막아 물을 가두어 두었던 보가 있던 곳이다. 당시 고부군수 조병갑은 농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보를 쌓고 물세를 거두어 들였다. 당시 고부군수의 학정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만석보를 때려 부수고 조병갑을 응징하면서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다.
<만석보 옛터임을 알려주는 표지석>
<만석보 주변 평야>
만석보는 호남평야를 흐르는 동진강과 정읍천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상류쪽에 정읍천을 막은 보가 있었는데 조병갑이 수세를 걷기 위해 이곳에 농민들을 동원하여 만석보를 쌓았다고 한다.
<상류쪽 정읍천을 막은 보가 있던 자리>
<만석보 조감도>
<동진강 제방>
<제방 바깥쪽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호남평야>
<만석보 옛터임을 알려주는 기념비>
만석보터, 전북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이 터는 농사에 사용하기 위해 냇물에 둑을 쌓아 물을 가두어두던 보가 있던 곳이다. 원래 정읍천 상류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민보가 있었다. 그런데 조선 고종 30년(1893)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농민을 강제로 동원하여 만석보를 다시 쌓고 물세(水稅)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1894년 조병갑의 각종 폭정과 과중한 세금부담에 허덕이던 농민들이 마침내 일어나 이 만석보를 때려 부숨으로써 동학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첫 횃불이 타올랐던 이곳에 1973년 사적비를 건립하여 그 역사적 의의를 기념하고 있다.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만석보에서 서쪽으로 4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전봉준 고택(사적)>
<출처>
- 안내문, 정읍시청, 2010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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