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방에는 한국 도자기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유적들이 여러곳 있다. 남해안에 위치한 강진군에는 용운리 가마 등 고려시대 청자를 생산하였으며, 고려말 왜구가 남해안을 휩쓸자 도자기에 생산지가 내륙으로 이동하였으며 광주 충효동은 고려말, 조선초기 분청사기의 중요한 생산지가 되었다. 당시 생산된 도자기들은 조운선을 통해 중앙으로 공급되었는데 해안지역에 침몰한 선박에서 당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광주박물관에서는 가마터와 침몰선 등에서 출토된 청자와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박물관에서 입수한 다량의 도자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국화넝쿨무늬 매병, 고려 12세기
고려시대 청자
고려(918~1392)의 청자는 고려인의 사상과 빼어나 안목이 반영되어 창조적이면서 독자적인 미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유려한 곡선의 조화가 이루어낸 세련된 매무새, 검고 희게 수놓은 상감무늬, 비 갠 후의 맑은 하늘빛을 담아낸 비취색 유약 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감을 자아낸다. 고려 인종 1년(1123)에 송나라 사신으로 온 서긍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에는 “도기의 색은 푸른데 고려인은 비색이라 부른다”라고 청자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송의 태평노인은 『수중금』에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의 품목에 넣었다. 고려청자는 용과 기린같은 상상의 동물 형상에서부터 표주박과 참외 등 자연에서 따온 소재를 고려 특유의 단아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장식된 연꽃 넝쿨무늬 등은 불교를 숭상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하였다. 또한 연못가 동자무늬, 물가풍경무늬, 구름 속 학 등은 고려인의 서정적인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고려는 물론 중국에까지 우아한 멋을 떨치던 고려청자는 강진을 중심으로 생산되었고, 지금도 그 맥이 이어지고 있어 전남지역은 고려청자의 본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청자 앵무새 무늬접시, 청자 모란 줄기 무늬 병, 강진군 칠량면 삼흥리 출토,
청자 연꽃무늬 잔, 강진국 대구면 용운리 출토, 「尙」이 새겨진 청자 합, 강진군 칠량면 삼흥리 출토
청자 향로, 청자 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출토,
청자 포도무늬 병,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출토
강진 청자가마
고려의 청자가마가 가장 많이 발견된 강진의 청자 가마터는 사적 제68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굴 조사된 대표적 가마인 용운리 가마는 10세기 후반에서 12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음.양각청자를 비롯한 상감청자 등 고려 최고의 청자를 만들었다. 삼흥리 가마에서는 청자와 함께 도기도 생산하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청자 버드나무무늬 정병, 고려 12세기,
청자 국화무늬 잔과 받침, 고려 12세기
청자 모란무늬 주자, 고려 13세기
청자 버드나무 학 동자무늬 매병, 고려 13세기
청자 포도동자무늬 주전자와 받침, 고려 12세기,
청자 넝쿨무늬 유병, 고려 12세기, 청자 국화넝쿨무늬 유병, 고려 13세기,
청자 국화무늬 뚜껑있는 그릇, 고려 13세기
청자 동물모양 인장, 고려 12세기
청자 국화넝쿨무늬 그릇, 고려 12세기
청자 연꽃무늬 대접, 고려 12세기
청자 꽃모양 접시, 고려 12세기
청자 물가풍경과 연꽃무늬 대접, 고려 14세기, 무안 도리포 해저
청자 파도무늬접시, 고려 14세기, 무안 도리포 해저
청자 물가풍경과 물고기무늬 접시, 고려 14세기, 무안 도리포 해저
청자 연꽃잎무늬 병, 고려 11세기, 완도 어두리 해저
청자 연꽃넝쿨무늬 장구, 고려 10세기, 완도 어두리 해저
바다에서 건진 청자
고려시대에는 내륙엣 거두어들인 세금을 해안 부근의 창고에 보관하였다가 다시 배를 싣고 연안 항로를 따라 수도인 개경까지 운반하였다. 이러한 배를 조운선이라 부르는데, 당시 조운선들은 풍랑에 휩쓸리거나 해적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최근 완도 어두리와 무안 도리포, 군산의 비안도, 태안 대섬 등의 앞바다에서 수많은 고려청자를 실은 채로 침몰한 조운선이 발견되었다. 완도 어두리에서 발견된 침몰선 안에서는 도자기 3만여 점을 비롯하여 선상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재질의 제품이 발굴되었다. 도자기는 녹청색 혹은 녹갈색을 띠는 조질청자로 대접, 접시가 대부분이고 이 가운데 철화안료를 사용한 병과 장구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부안 도리포에서는 대접과 접시가 주로 발견되었는데, 간지가 있는 다른 청자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고려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분청사기 연꽃무늬 매병, 조선 15세기
조선시대 분청사기
‘분청사기’란 옛 기록에는 없는 용어이다. 분청사기라는 용어는 미술사학자인 고유섭(1905~1944)선생이 회청색 바탕흙에 흰흙을 바르고, 그 위에 투명한 유약을 씌어 구워낸 조선 초기의 도자기를 ‘분장회청사기’라 짓고 이를 줄인 말이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분청사기는 고려말 상감청자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으나 세종 연간(1418~1450)을 전후하여 그 질이나 형태, 무늬의 종류, 무늬를 넣는 기법 등이 크게 발전하여 절정을 이룬다. 특히 그릇에 흰 눈꽃이 핀 듯한 문양를 찍어 넣은 인화기법에서 세련된 멋과 셈세한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분청사기도 제작되었다. 특히 광주 충효동 가마터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넓고 시원한 붓질과 장인의 손맛대로 선을 새기거나 면을 깎아 만든 해학적인 표현으로 조선인의 감성을 느끼게 한다. 분청사기는 1466년과 1469년 사이 왕실과 중앙관청에 백자를 공급하기 위해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면서부터 주요 소비층이 점차 지방 관아 및 민간으로 바뀌면서 질도 떨어지게 된다. 결국 백자의 수요 증가로 인하여 15세기 말부터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16세기 후반에는 소멸하게 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분청사기 ‘내섬’이 새겨진 대접,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잔,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뚜껑있는 그릇,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물고기무늬 편병,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나무무늬 항아리,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연적,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세잎무늬 병, 분청사기 풀무늬 병,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덤벙무늬 대접, 조선 15세기.
덤벙무늬는 분장문이라고도 하는데, 초벌한 사기를 백토물에 담글 때 나는 ‘덤벙’소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백토물의 흔적이 색다른 장식효과를 낸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0
분청사기 모란무늬 자라병, 조선 15세기
분청사기 제기, 분청사기 꽃무늬 장군, 광주시 북구 충효동 출토
「광」이 새겨진 분청사기, 「광별」이 새겨진 분청사기, 「광정사」가 새겨진 분청사기, 광주시 북구 충효동 출토
분청사기 인화무늬 대접, 광주시 북구 충효동 출토
광주 충효동가마
광주 무등산에 있는 충효동 가마는 경사를 이용한 오름가마로 사적 제 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분청사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백자가 제작되었다. 인화분청사기는 주로 중앙 관청에 공납하는 것들이다. 충효동 가마에서는 그릇 뿐만 아니라 벼루.제기.묘지 등도 생산하였다. 한편 모란.불고기.게 등을 활달한 필치에 해학적으로 표현한 분청사기 박지무늬는 충효동 가마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백자 구름용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조선시대 백자
백자는 분청사기와 더불어 조선시대 전 기간에 걸쳐 꾸준히 제작되었다. 아무런 문양장식 없이 절제미가 돋보이는 순백색 백자는 유교 이념 구현을 이상향으로 하는 신 왕조와 사대부층의 사상을 담아내기에 가장 알맞은 그릇이었다. 이러한 백자는 전국에서 제작되었는데 경기도 광주의 ‘분원’에서 제작된 백자는 왕실과 중앙 관청에 납품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무늬에 자토를 넣어 검게 장식한 상감백자가 일시적으로 제작되었지만 순백자가 주류를 이루었다. 푸른색 문양이 화려한 청화백자는 초기에는 중국적인 화풍으로 표현되었으나, 곧 한국의 정취와 격조를 보여주는 회화적인 문양으로 발전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백자의 색과 질이 현저하게 떨어져 대부분 회백색을 띠었다. 그림이 그려진 백자에는 값비싼 청화안료를 대신하여 값이 싸고 구하기 쉬운 철화안료가 주로 사용되었다. 18세기 전반부터는 백자의 색이 순백색으로 다시 밝아지며,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청화백자의 제작도 새롭게 증가한다. 조선 후기에는 청화, 동화, 철화, 음각, 양각, 투각 등 여러가지 장식기법을 다양하게 활용하였으며, 제기와 문방구류 등이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백자 항아리, 조선 18세기
백자 연꽃넝쿨무늬 그릇, 조선 15세기
백자 병, 조선 15~16세기
백자 발, 조선 15세기
백자 뚜껑있는 항아리, 조선 16세기
백자 ‘천’이 새겨진 접시, 조선 16세기
백자 뚜껑있는 그릇, 조선 15세기, 경기도 광주 관요
태항아리와 태지, 조선 1624~1625년, 광주 중흥동 발굴
백자 묘지명 접시, 조선 1708년경,
백자 명기, 조선 17세기
백자 풀무늬병, 백자 풀무늬 항아리, 조선 17세기
백자 연꽃무늬 항아리, 조선 19세기
백자 꽃나비무늬 병, 조선 19세기
백자 산수무늬 삼층합, 조선 19세기
백자 구름 학무늬 접시, 조선 19세기
물가풍경무늬 항아리, 조선 19세기
‘수’무늬 사발, 조선 19세기
백자 대나무모양 병, 조선 19세기
백자 매화무늬 연적, 조선 19세기
백자 사자모양 연적, 조선 19세기
넝쿨무늬 연적, 산수무늬 연적, 부채모양 산수무늬 연적, 조선 19세기
백자 복숭아모양 연적, 조선 19세기
백자 용무늬 필통, 백자 매화무늬 필통, 조선 19세기
<출처>
-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