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 Hitstory Traveling

Since 2008, Korea & World by younghwan

[광주박물관특별전, 전라천년]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지리산 일대와 전남 남해안 등 호남지방에는 유서깊은 사찰이 많이 남아 있다. 지방호족세력을 바탕을 불교개혁을 이끌었던 통일신라 선종 구산선문 사찰 중 남원 실상사(실상산문), 곡성 태안사(동리산문), 장흥 보림사(가지산문)이 호남지방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려중기 무인집권기에 기존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운동이 일어났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순천 송광사에서 수선결사 운동을 이끌었으며, 원묘국사 요세가 강진 백련사에서 백련결사 운동을 이끌었다. 수선결사 이후 우리나라의 불교는 송광사를 중심으로 한 조계종이 주류세력을 형성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의 초상, 1780년, 비단에 채색, 순천 송광사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통일신라에 이어 고려에서도 불교는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이념이자 지배층의 신앙으로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2세기 후반 고려의 지배층이 귀족에서 무인으로 바뀌면서 불교의 위상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의 전통이 살아있는 전라도 땅에서 지눌과 요세는 기존 불교에 대한 비판과 개혁을 위한 불교결사운동을 일으켜 부처의 가르침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보조국사 신발, 고려, 종려나무 껍질, 순천 송광사

권수정혜결사문, 보조국사 지눌, 1608년, 순천 송광사

계초심학인문, 1608년, 순천 송광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1488년, 불교천태중앙박물관, 보물 1222-2호,

보조국사 지눌이 당나라 종밀 『법집별행록』을 요약하고 자신의 의견을 덧붙인 것이다. 제자인 혜심이 간행한 초판본은 전하지 않고, 성종 17년(1486) 광주 무등산 규봉암에서 간행한 이 판본이 가장 이른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수선사형지기, 1221~1226년, 순천 송광사, 보물 572호,

13세기 전반 수선사의 실태를 조사 기록한 것이다. 수선사의 가람 배치 등 사찰의 규모를 자세히 적고, 보조국사 지눌의 비명과 수선사중창기를 함께 실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보조국사 지눌과 수선사
본래 개경에서 수행하던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1190년 팔공산에서 법회를 열고, 자신의 새로운 생각을 『정혜결사문』에 담아 널리 퍼뜨렸습니다. 이에 따르는 무리가 늘어나자 순천 송광산 길상사(지금의 송광사)로 옮겨와 수선사를 열었는데, 이때 나주를 비롯한 전라도 각지의 사람들이 시주하여 도움을 준 것이 수선사중창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눌의 새로운 생각은 그의 제작인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이 더욱 발전시켜, 이후 고려의 새로운 지배층인 무인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동문선(만덕산백련사원묘국사비명), 조선후기,

만덕사지, 조선후기 19세기,

19세기 강진으로 유배온 정약용이 『동문선』에 실린 고려시대 백련사 결사운동에 관한 고려 국사들의 기록을 인용하여 편찬한 대둔사(만덕사)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원묘국사 요세와 백련사
원묘국사 요세(1163~1245)는 본래 지눌의 수선사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지눌의 수행 방식에 동의하지 못하여 스스로 강진 만덕산에서 백련사 결사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지눌은 선종과 교종의 일치를 지향하며 정혜쌍수의 실천적 수행을 강조하였는데, 요세는 법화사상에 관심을 가지고 참회를 중시하였습니다. 요세는 대중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였고, 백련사도 전라도 지방 향리층의 지지를 받아 성장하였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진각국사비편, 고려,

진각국사비편, 고려,

1250년 강진 월남사에 세워졌던 지눌의 제자 진각국사 혜심의 비편이다. 1235년 이규보가 지은 비문 내용은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동국이상국집(진각국사혜심비명), 이규보, 조선

조선 전기 전라도의 불교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억압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조선전기의 불교는 여전히 왕실과 민중의 정서적 의지처로 종교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전라도 송광사에서는 대규모 불서 간행 사업이 이어져 불교 사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의 맥도 끊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0

인천안목, 1529년, 순천 송광사

인천안목 목판, 1529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1호

송광사에서는 1529~1531년 사이에 4종류의 목판을 제작하여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판본은 그 가운데 가장 이른 것이다. 『인천안목』은 중국 송나라의 선종 승려 지소가 저술한 것으로, ‘인간과 천상의 일체가 중생의 안목이 된다’는 의미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종경촬요, 1529년, 순천 송광사

종경촬요 목판, 1529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2호

『종경촬요』는 대승불교의 여러 경론과 중국, 인도 성현과 선사의 저서 등을 모은 책인 『종경록』의 요약본이다. 13세기 이전에 이미 고려에 들어와 있었으나 당시의 판본은 남아있지 않고, 송광사 은적암에서 다시 찍은 이 판본이 현재 전하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계초심학인문(언해), 조선, 순천 송광사

계초심학인문(언해) 목판, 1577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0호

보조국사 지눌이 불교수행의 초보자들이 경계해야 하는 내용을 담아 서술한 책으로, 조선시대에 이르러 언해본(한글본) 등 다양한 판본이 유행하였다. 송광사에서 간행한 언해본은 전라도 지방 언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조선 전기 국어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천지명양수륙잡문, 조선, 순천 송광사

천지명양수륙잡문 목판, 1531년, 순천 송광사, 보물 1914호

『천지명양수륙잡문』은 여러 불교의식과 관련된 내용을 수록한 책이다. 목판은 1531년 5월 송광사에서 간행한 것이지만 이 책은 조선후기에 다시 찍은 것이다. 이 목판을 제작한 이들은 『종경촬요』와 『천지명양수륙잡문』의 제작에도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전라도에서 새 세상을 꿈꾼 사람들
천년 전라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라도에는 왕조의 수도가 자리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이 땅에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적이며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보조국사 지눌과 원묘국사 요세가 타락한 정치계와 결탁한 기존 불교의 개혁을 외치며 순천과 강진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예기』에 등장하는 ‘대동’사상에 주목하여 새로운 신분 질서의 정립을 꿈꾸는 전주의 유학자도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정읍의 녹두장군은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출처>

  1. 안내문, 광주박물관, 2018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1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