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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문경새재(명승), 영남과 서울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고갯길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에 있는 문경새재(명승)이다. 경북 문경시 문경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 사이에 있는 고개인 조령(해발 642 m)을 넘는 고갯길로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였다.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 ‘조령(鳥嶺)’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시대 이래 인근 하늘재 고개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고려 이후 문경새재길이 개통되면서 이 길이 주로 사용되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문경새재를 넘어오면서 군사적 중요성이 인식되어 조선후기에는 조령 관문이 세워졌다.

문경새재는 주흘산(1,106 m)와 조령산(1,020 m) 사이 계곡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있다. 조령 동쪽으로는 하늘재가, 서쪽에는 이화령(548 m)이 있다. 이곳에는 주흘관, 조곡관, 조령관 등 3개의 관문과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되었던 원(院)이 있던 건물터, 신.구 경상관찰사가 업무를 인수.인계하던 장소인 교귀정, 여행객들이 쉬었던 정자와 주막터, 옛길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러 비석들, 옛 선비들이 걸었던 과거길 등이 남아 있다.

<문경새재(명승)>

문경새재 고갯길이 시작되는 첫번째 관문 주흘문 앞 넓은 공터. 문경새재 고갯길임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문경새재 고갯길을 흐르는 초곡천>

주흘산 자락에서 발원하여 조령산을 사이에 두고 계곡을 형성하면서 흘러 내려온다.

<조령 제1관문인 주흘관>

이곳에 TV드라마 세트장이 있어 사극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이다. 한국 사람들 눈에 가장 익숙한 성곽의 모습이다.

<안쪽에서 본 성문. ‘영남제일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비석들>

성문을 들어서면 길 옆으로 볼 수 있는 비석들. 문경새재와 관련된 관리들의 공덕비 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영남지방과 한양을 연결하는 주요 유상교통로이다. 그 중 동쪽 죽령길을 영남좌로,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을 영남중로, 추풍령갈울 영남우로라 한다. 그 중 문경새재(조령)을 넘어서 음성, 이천, 광주를 거쳐서 서울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가까워 많이 이용되었다고 하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14일 정도 걸렸다고 한다. 영남대로 옛길은 여러곳에 남아 있는데 그 중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재와 고모산성 남쪽 벼랑에 있는 토끼비리가 잘 알려져 있다.

<문경새재 고갯길>

조령을 넘어가는 문경새개 고갯길은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정비가 넓고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상당 기간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로 사용된 듯 하다.(?)

<주흘관 안쪽에 있는 TV드라마 세트장>

‘태조왕건’을 비롯하여 KBS에서 방영되었던 주요 사극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어 눈에 익숙한 장소이다.

<길 옆에 볼 수 있는 기암괴석>

기름틀의 누름돌처럼 생겼다하여 지름틀바우라 한다.

<조령원터>

출장에 나선 관리들의 숙식과 편의를 위한 곳이다. 문경새재 고갯갤에는 3곳의 원터와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막들이 있었다. 조령원은 담장을 비교적 견고하게 쌓고 그 안에 건물을 두고 있다. 아마도 호랑이나 산적 등의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령원 내부>

조령원터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의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과거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던 길목에 위치하여 수 많은 길손들이 오고가는 중요한 통로였으며, 역과 원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 등 3곳의 원터가 전해지고 있다. 조령원터의 전체면적은 1,980 ㎡ (600평)이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돌담은 너비 2.8 ~ 3.0 m, 높이 2.9 m 내외이고, 동쪽 57.6 m, 서쪽 53 m, 남쪽 38.9 m, 북쪽 37.7 m의 대칭변 길이가 모두 다른 남북으로 길게 쌓여진 장방형이다. 서쪽 돌담 중간에 문지가 남아 있는데 돌담을 성벽의 육축모양으로 마무리하고 그 사이에 2매의 방형 석주를 문설주로 세웠다. 문경시에서는 조령원터 복원을 위해 1977년과 1997년 2차례의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건물의 터가 두개 층에 걸쳐 발견되었는데 발굴 보조서에 따르면 상단의 건물지에서 고려시대의 온돌유지와 부엌시설 일부가 드러났다. 또한 이를 비롯하여 와편, 토기편, 자기편, 어망추, 철제 화살촉, 마구류 등이 출토되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조령원터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고갯길>

<문경새재 옛 길>

<문경새재 길에 재현해 놓은 주막>

<조선시대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장소인 교귀정>

교귀정은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 하던 교인처로 1470년경에 건립되어 지속적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1896년 3월 의병전쟁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폐허로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6월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매년 경상감사 교인식 재현행사를 이곳에서 거행하고 있다. 건물의 양식은 팔작지붕에 이익공,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교귀정 아래 계곡>

이곳에서 TV사극 “태조왕건” 중 궁예의 최후를 보여주는 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기도굴 부근>

교귀정을 조금 지나면 길 옆에 구한말 최양업 신부(김대건에 이어 두번째 한국인 사제)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었다고 전해지는 기도굴이 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문경새재길>

<문경새제 옛 과거길(옛길)>

영남에서 한양을 다닐 수 있는 길은 조령과 축령 및 추풍령을 경유하는 세 갈래가 있는데 문경새재는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왕래하였으며, 문경의 옛 지명인 문희에서 드러나듯 “기쁜소식을 듣게 된다.”하여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도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길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길이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고갯길에 보이는 소원성취탑, 지나가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서 쌓은 탑이다.>

<이어지는 지는 길>

길 옆으로 옛 사람들이 세운 비석이 보인다. 조령 산불됴심 표석은 조선후기에 한글 사용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조령 산불됴심 표석>

표석의 설치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대체적으로 조선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추형 화강암 자연석에 음각된 순수 한글비석이다. 현재 문화재 위치는 처음 세워질 당시의 장소로 보여지며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 산불예방과 주흘산의 자연에 대한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세운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국내에 고어로 된 한글비석은 모두 4점이나 “조령 산불됴심 표석”을 제외하곤 모두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어 국내 유일의 순수한글 비석이라 할 수 있다.

<제2관문으로 이어지는 길>

<길옆에 있는 작은 폭포인 조곡폭포>

<멀리서 보이는 제2관문>

<조령 제2관문인 조곡관>

<계곡 상류방향. 초곡천 발원지와 주흘산으로 길이 이어진다.>

<안쪽에서 본 제2관문. ‘영남제이관’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조령 제3관문이 있는 고개로 이어지는 길>

<조령 고개에 있는 제3관문 조령관>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의 고개」, 「새로 만든 고개」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임진왜란 후 세 개의 관문(주흘관.조곡관.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신구 경상도관찰사가 관인을 주고 받았다는 교귀정, 나그네의 숙소 조령원터, 신길원현감 충렬비, 산불됴심비 등의 유적과 뺴어난 자연경관을 두루 갖추고 있다. 임진왜란과 신립장군, 새재성황신과 최명길, 문경새재아리랑과 같은 설화와 민요도 널리 전승되고 있다. 사적(제147호) 문경조령관문과 명승(제32호) 문경새재 옛길, 지방기념물(제18호) 주흘산 조령관문 일원 등의 문화재가 있고, 1981년부터는 도립공원으로 지정.관리되고 있다. 최근에는 옛길박물관, 생태공원, 오픈세트장이 들어서 다양한 역사.문화의 장이 되었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문경시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