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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고모산성, 계립령 고갯길을 지키기 위해 신라가 쌓은 산성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에 있는 고모산성이다. 삼국시대 영남지방과 한강유역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고갯길 계립령로를 지키는 관문성 성격의 산성을 5세기경 신라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쪽 오정산(810 m)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고 남쪽 어룡산(617 m)이 길을 막고 있어, 그 사이를 흐르는 영강 주변만이 남북으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다. 영남대로 조령 관문(문경새재)에서 12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영남대로를 통제하기 위해 조령 관문을 설치할 때 이곳에도 고모산성 아래 교통로에 관문성인 석현성을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모산(165 m) 정상부 둘레를 성벽으로 쌓고 있는 전체 1.3 km에 이르며 상당히 큰 규모의 산성이다. 성벽의 높이는 외벽 10 ~ 20 m 정도이며 경사진 지형을 적절히 활용하여 쌓았다. 경사가 완만한 곳에는 돌로 석축을 쌓고, 경사가 심한 곳에는 바깥쪽에만 석축을 쌓았다. 허물어진 성벽을 살펴보면 작은 돌을 촘촘하게 쌓아 올린 신라의 축성방법을 보이고 있다. 성문터는 네곳이 확인되었는데 그 중 남문과 서문이 옛모습을 일부 복원해 놓고 있다. 성문은  사다리를 이용해서 출입하는 현가식성문으로 신라가 쌓은 산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최근 지역 관광명소로 성곽시설들이 복원되고 있는데, 남문터주변을 보은 삼년산성 축성방법을 참조하여 신라 산성 형태로 복원하였다.

<문경 고모산성.>

삼국시대 신라가 한강유역과 연결되는 계립령로를 통제하기 위해 세운 일종의 관문성이다.

<석현성 앞에서 올려다 보이는 고모산성>

<옛모습을 복원해 놓은 남측 성벽.>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성벽의 발굴.조사 결과 신라가 쌓은 산성이 확인되어 보은 삼년산성과 비슷한 축성방식으로 복원해 놓았다

<영남대로 옛길과 연결되는 남동쪽에 위치한 남문>

발굴조사 결과 문루가 없는 현문식 성문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어 그 모습을 복원해 놓고 있다.

고모산성 남문
이곳은 고모산성의 남문(산성에 출입하가 위하여 설치한 남쪽에 위치한 성문)이다. 2004년 (재)중원문화재연구원에서 실시한 발굴 조사 결과 남문터와 성내 용벽시설, 투석용 몽돌무지(싸움을 할 때 던지기 위한 주먹크기의 냇자갈돌 무지), 성외 보축성벽(체성벽을 보호하기 위해 성벽 바닥부분에 덧대여 쌓은 또 다른 벽체) 등이 확인되었다. 남문의 규모는 길이 16 m, 너비 5 ~ 5,8 m이며 주향은 남동향이다. 남문의 구조는 성벽을 쌓아 올려 성벽의 높이가 증단부 이상 높아진 다음 성문을 축조하기 위해 개구부를 내고 성벽과 직교하는 통로부 측벽을 축조한 현문 형태의 성문이다. 산성 바깥에서 성문을 바라볼 때 입면 凹자 모양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문에는 문루가 있으나, 발굴조사 결과 고모산성은 축성기법에서 삼국시대 축조기법을 보이고 있으며, 문터에서 건물과 관련된 유구 및 유물이 발견되지 않으므로, 상단부에 문루 시설은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문경시청, 2013년)

<남문 옆 성벽>

외벽은 10 ~ 20 m 정도 높이로 바깥쪽 경사면과 함께 공략하기 어려운 상당히 견고한 모습이다.

<위에서 본 모습>

성벽 안쪽에도 돌을 촘촘히 쌓아 올렸다. 성벽위 폭은 2 ~3 m 정도로 그 위에 목책을 설치해 놓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치성형태 성벽>

남문 옆 정상부 성벽에 있는 돌출된 치성 형태의 성벽은 남문을 엄호하기 위한 방어시설이다.

<안쪽에서 본 남문 주위 복원해 놓은 성벽>

<동문 부근 복원되지 않은 성벽>

마치 돌무지를 쌓아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복원되지 않은 동쪽 성벽>

일정한 크기의 돌로 촘촘히 성벽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고모산성 북쪽 고모산 정상부(231m)>

그리 높지 않은 작은 산이지만 북쪽으로 문경새재 고갯길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고모산성 북쪽 정상 부근 성벽>

<고문산성 북쪽에서 서문으로 내려는 가는 길>

<서쪽 성벽 안쪽 모습>

<서쪽 성벽 바깥쪽 모습>

상당 부분 허물어져 있지만 그 모습만으로도 이곳이 성벽임을 알 수 있다.

<서문>

<바깥쪽에서 본 서문>

사다리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현가식 성문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래 있던 성벽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신라의 축성방식이 잘 나타나 있다.

<서문 안쪽에 있는 연못>

안쪽에 식수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해 놓은 작은 연못이 있다. 식수로 사용할 물을 보관하는 연못이면서 비가 올 때 빗물 속도를 낮추어 성벽을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연못 앞쪽 성벽에 있는 배수구. 신라 산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서문에서 남문까지 남쪽 성벽을 신라 축성방식으로 복원해 놓고 있다.

<남문으로 이어지는 성벽>

<성벽 아래 영강>

성벽 아래쪽으로 고모산성과 토끼비리를 휘감으면서 흐르는 영강이 내려다 보인다.

<남쪽 정상부 성벽>

<남쪽 성벽 정상부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

영강 동쪽 절벽을 따라 형성된 토끼비리 옛길과 그 아래로 흐르는 영강이 보인다.  3번국도가 토끼비리 절벽을 관통하고 있으며, 그 아래쪽에 3번국도 옛길, 옛 철도가 지나고 있다. 절벽 너머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남쪽은 어룡산이 막고 있고, 동쪽으로는 해발 810 m의 오정산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산들이 백두대간과 연결되어 있어 조령(문경새재)과 계립령을 넘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날 수 밖에 없다.

<고모산상 아래를 흐르는 영강과 사쪽 문경시 가은읍 일대>

<고모산성 아래 영남대로를 막고 있는 석현성>

고모산성에서 토끼비리 옛길 절벽까지 약 400여 m를 막고 있는 조선시대 관문성이다.

<고모산성 아래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고분>

고모산성,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고모산성은 삼국시대 초기인 2세기경 신라에서 계립령로(문경-충주 미륵사지)를 개설하던 시기에 북으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주주흘산 이남이 한 눈에 보이며 남쪽으로는 불정지역 외의 다른 곳으로 길을 만들 수 없어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길목에 위치하며 임진왜란, 동학농민운동, 한말 운강 이강년 선생의 의병항쟁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많이 이용되었다고 한다. 할미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의 둘레는 1,270 m로 장방형을 이루며 성의 높이는 낮은 곳이 1 m, 높은 곳이 11 m로 폭이 2~3 m이며 동쪽에 암문 1개가 남아 있고 남쪽 1 km 위치에 옛길인 토끼비리가 있다. 고모산성을 중심으로 주변에 마고산성, 고부산성, 희양산성 등 많은 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안내문, 문경시청)

<출처>

  1. 안내문, 문경시청, 2013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19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1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