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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 삼강주막과 나루터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삼강주막이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삼강나루를 건너는 사람들이 잠시 쉬거나 보부상 등이 묵어갈 수 있는 전통 주막이다. 건물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작는 초가집으로 부엌, 마루, 온돌방을 두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나루터에 있던 전형적인 주막 건물로 사람들이 생활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삼강나루는 예천군 풍얌면 삼강리와 문경시 영순면 달지리 사이 낙동강을 건너는 나루이다. 내성천, 금천,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하여 삼강나루라 부른다. 영남지방에서 문경새재를 거쳐 중부지방으로 연결되는 주요 교통로에 위치하고 있어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오가던 중요 나루터였다. 인근에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예천 회룡포가 있다.

<예천 삼강나루터>

옛 삼강주막을 중심으로 체험공간으로 바뀌었다. 주막과 고목이 이곳의 오랜 내력을 보여주고 있다.

<삼강주막>

19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 전형적인 주막 건물로 앞면 2칸, 옆면 2칸이로 뒷편에 온돌방을 앞쪽에 부엌과 마루가 있다.

<손님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인 1칸 규모의 작은 대청마루>

TV사극에서 볼 수 있는 주막 건물에 비해 그 규모가 작다. 순천 낙안읍성에도 주막건물이 남아 있는데 형태는 비슷하다.

<한쪽편에 있는 부엌>

손님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주막의 기능에 맞게 건물에 비해 부엌이 큰 편이다.

<온돌방에는 문을 2개 두고 있다.>

예천 삼강주막,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길
삼각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 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안내문, 예천군청, 2019년)

<체험공간>

낙동강을 오가던 삼강나루터는 교통로에 있던 옛주막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공간으로 바뀌었다.

<삼강나루터>

1980년까지 이곳에는 낙동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있었다고 한다.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

이곳에 다리가 개설되면서 나루터는 그 기능을 잃었다.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

<삼강나루터를 휘감아 도는 낙동강>

그 너머로 예천 회룡포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비룡산(240 m)이 있다.

<나루터 입구에 재현해 놓은 황포돛배>

<삼강주막 앞에 전시 해 놓은 들돌>

들돌의 유래
들돌은 일반적으로 농촌의 청년이 장성하여 농부로서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많은 물류의 이동에 따라 인력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품값을 책정하는 도구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진다. (안내문, 예천군청, 2019년)

삼강 나루터 유래
삼강 나루터는 무경 주흘산맥과 안동 학가산맥, 대구 팔공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며,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는 수륙교통의 요충지이다.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으로, 나루터 주변은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 배를 통한 농산물의 집산지였고, 대구와 서울을 연결하는 군사도로였기에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루었던 곳이었다. 더구나 이곳에는 강을 이어주는 나룻배 두척이 오갔었는데 큰 배는 소와 각종물류를 수송하는 수단으로, 작은 배는 15명의 사람을 태우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였으나, 인근 교량 설치로 인하여 1980년경 나룻배 운행이 중단되었다. 2013년 청소년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할 목적으로 나룻배를 재현했다. (안내문, 예천군청, 2019년)

<출처>

  1. 안내문, 예천군청, 2019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