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 경내에 있는 원응국사비(보물)이다. 고려중기 승려 원응국사 학일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 탑비이다. 받침돌과 머릿돌은 남아 있지 않고 비몸만 3조각으로 잘라져 있던 것을 복원해 놓고 있다.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윤언이가 짓고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승려 탄연이 쓴 것이라 한다.
원응국사 학일(1051 ~ 1144년)은 송나라에 유학하였으며, 의천이 천태종을 개창할 때 선종을 지켰다고 한다. 법주사, 구산사 주지 등을 역임했으며 운문사에 머물다 1144년 93세로 입적하였다. 그의 사후 인종은 그를 국사로 책봉하고 비를 세우게 하였다.
<청도 운문사 경내에 있는 원응국사비>.
받침돌과 머릿돌은 없고 비문이 새겨진 비몸 만 3조각으로 부서져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해 놓고 있다.
<비석 앞면.>
윗부분에 “원응국사비명”이란 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앞면에는 그이 행적이 적혀 있다.
<앞면 아랫부분. >
<뒷면, 제자들이 이름이 새겨져 있다.>
<운문사 출입문인 안쪽 3기의 비석, 가운데 비석이 원응국사비이다.>
원응국사비, 보물
고려 중기의 승려인 원응국사 학일의 운문사 중창과 그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이다. 고려 인종 22년(1144) 학일왕사가 93세로 입적하자 인종은 국사로 책봉하고 원응이라는 시호를 내려 비를 세우게 하였다. 이 비는 높이 2.3 m, 폭 0.9 m로 비석머리와 받침돌은 없어졌고 현재는 3편으로 절단되어 있는 비편을 연결하여 하나의 비신으로 구성하였다. 해서체로 쓰여진 비의 앞면에는 그의 행적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문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비분의 작성자는 윤언이이며 글씨는 고려중기의 명필, 탄연스님이 썼다.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출처>
- 안내문, 청도 운문사, 2020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0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