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 비림(碑林)은 고대 중국의 비석을 모아 전시한 곳으로 송나라 때(1087년) 처음 조성되었다. 당나라 말 혼란기에 중요한 비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문묘에 집중시켰으며 북송 때(1087년) 유교 주요 경전을 새긴 개성석경비(开成石经碑)을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각 왕조에서는 수집된 귀한 비석들을 이곳으로 옮겼으며 청나라 때 비석들들이 늘어서 있다고 하여 비림(碑林)이라 불려지게 되었다. 비림에 있는 비석들을 시대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의 모범이 되었던 중요한 비석들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동시에 고대 문헌들을 살펴볼 수 있는 도서관 성격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국자감내에 당 현종이 효경에 주석을 달고 글과 글씨를 쓴 석대효경과 문종 때 유교 경전을 돌에 새긴 개성석경을 두면서 비림의 역사는 시작되었으며 북송 이후로는 공자를 모시는 문묘를 그 역할을 이어왔다. 비림의 현재 모습은 북송 때 문묘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베이징 국자감이나 취푸(曲阜) 문묘에 비해 그 위상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비림의 역사에 걸맞게 국자감의 벽옹(辟雍)이나 문묘의 행단을 역할을 석대효경이 있는 정자가 하고 있다. 개경석경을 비롯하여 다양한 서법을 살펴볼 수 있는 비석들이 보관했던 건물들을 중심으로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시안 비림박물관 출입문.
비림은 출입문으로 목패방과 대리석으로 만든 패방을 두고 있으며, 두 패방 사이에 반지(泮池, Pan Pools)라 불리는 작은 연못을 두고 있다. 목패방은 다포계 공포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어 한옥을 연상시킨다. 반지는 반원형의 작은 연못으로 가운데 출입문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있다. 황제가 학문을 논했던 태학의 벽옹 연못과 비슷한데 당나라 국자감이 있었곳임을 강조하고 있는 듯 하다.
비림 입구 목패방.
목패방을 들어서면 비림으로 반지 사이의 좁은 길이 연결되어 있다.
반원 형태를 하고 있는 반지(泮池, Pan Pools)
2번째 출입문에 해당하는 패방. 삼문 형식을 하고 있는데 가운데 출입문에 문묘(文廟)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2번째 출입문에 해당하는 패방
패방을 들어서면 출입문에 해당하는 극문(戟門)까지 연결된 길이 있고 극문 앞에는 비석이 있는 비정이 세워져 있다. 양쪽에는 관리들이 근무했던 사무실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원에는 다양한 수목이 심어져 있는데 베이징 국자감이 비해 간소해 보인다.
패방에서 극문까지 이어지는 길.
비림 마당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인 극문(戟門)
극문을 들어서면 석대효경이 있는 비정(碑亭)까지 직선으로 길이 연결되며 양쪽에 역대 황제 등이 내린 것으로 보이는 비석이 있는 6개의 비정이 세워져 있다. 양쪽에는 이곳을 문묘였음을 보여주는 품위있는 고목들이 비석과 함께 정원을 이루고 있다. 입구에는 이곳이 박물관임을 보여주는 국보급 유물인 대하석마(大夏石馬)와 당 경운종(景雲鐘)을 볼 수 있다.
극문에서 석대효경 비정 사이 정원.
대하석마(大夏石馬). 대하(大夏)는 동진시대 5호16국 중 흉노족에 의해 세워진 왕조로 24년 정도 지속되었다. 단순한 형태이지만 생동감있게 조각해 놓고 있다.
대하석마(大夏石馬).
당 경운종(景雲鐘). 시안 종루에 걸려있던 종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당 경운종(景雲鐘).
중요 비석을 보관하는 비정, 극문과 석대효경 사이에는 6개의 비정이 세워져 있다. 명.청시대 건축 양식을 하고 있다. 취푸(曲阜) 문묘에는 13비정이 있다.
문묘의 권위를 높여주는 신도비 성격의 비석으로 역대 황제들이 내린 것이다.
중요 비석을 보관하는 비정,
비정 내부에 있는 비석.
비정 뒷편 행각 형태의 건물. 성균관 유생들이 공부하던 동.서재와 비슷한 역할의 건물인 것으로 보인다.
비정 뒷편 행각 형태의 건물.
비림 정원
가성호조비(加聖號詔碑, Stele of an Imperial Edict)이다. 원나라 성종 때(1307년) 공자께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란 시호를 올린 이후 이를 전국적으로 공포하는 칙령 성격의 비석으로 1313년에 세워졌다.
가성호조비(加聖號詔碑), 원 1313년, 조세연 서예 발문
비림 중심건물은 석대효경이 있는 “비림”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비정이다. 국자감은 황제가 학문을 논하던 벽옹(辟雍)이, 취푸(曲阜) 문묘는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행단(杏壇)이 중심인 반면 이곳 비림은 황제가 직접 주석을 달고 글을 쓴 “석대효경”이 있는 비정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뒷편에는 유교 13경전을 새긴 개성석경을 보관하는 건물이 있다. 사당이나 강당보다는 유교 경전이 새겨진 비석을 중시했던 비림의 성격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광장에는 원나라 성종 때(1307년) 공자께 “대성지성문성왕(大成至聖文宣王)”란 시호를 올린 이후 이를 전국적으로 공포하는 가성호조비 등 여러 비석들이 있다.
“비림”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석대효경 비정. 청말 아편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관리 임칙서가 현판 글씨를 썼다고 한다.
“비림”이라 적힌 현판이 있는 석대효경
서안비림
서안비림은 북송 원우 2년(1087)에 건설된 것으로 지금까지 9백년 남짓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현재 한나라로부터 근대까지의 비석, 묘지를 4천여개 보존하고 있으며 중국에서 고대 비석을 가장 많이 보존하고 있으며 비석이 임목처럼 죽 늘어서서 비림이란 이름을 득한 것이다. 비림에 있는 비각은 시대의 순서가 완전하고 각종 서법이 겸비되었기에 극히 높은 서법 가치가 있다. 동시에 고대 문헌전적을 집중시켰기에 깊은 역사 문화의 내포를 갖고 있으며 서법 예술 보고, 역사 문화 전당이라 불린다. 1961년에 전국 제1기 중점 문화 보호재로 발표되었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제1전시실에는 개성석경(開成石經, Kaicheng Stone Classics)을 볼 수 있다. 동아시아 사회규범의 기본이 되었던 유가 경전을 돌로 새겨놓은 것이다. 당나라 문종 때(837) 전해오던 여러 유가 경전을 모아 돌에 새겨 여러 경전들의 착오를 바로잡는 표준이 되게 하였다. 청나라 강희제 때 <맹자>가 추가로 새겨재 13경이 완성되었다. 비석이 처음 새겨진 연대가 당나라 문종 때여서 그 연호(開成)를 따라 개성석경이라 부른다. 북송 때 개성석경을 보관하는 건물을 세우면서 비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개경석경이 있는 제1전시실로 들어가는 계단. 오랜 역사를 보여주듯 계단에 많은 글자들이 새겨져 있다.
개경석경이 있는 제1전시실로 들어가는 계단.
개경석경을 볼 수 있는 제1전시실.
전시실을 연결하는 회랑
2실은 당나라의 유명한 비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당나라 때 기독교 일파가 중국에서 활동했음을 보여주는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비롯하여 당나라를 대표하는 명필 구양순, 구양통, 저수량, 왕의지, 안진경, 이양빙, 서호 등이 글씨를 쓴 비석들이 있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 당 781년, 석경정 찬 여수암 서
황보탄비, 당 627 ~ 649년, 우지녕 찬 구양순 서
동주삼장성교서비, 당 663년, 저수랑 서
안씨가묘비(颜氏家庙碑, Stele of Yan’s Family Temple), 당 780년, 안진경 찬 및 서 이양빙 전액
전시실 마당에 전시해 놓은 비석들
3실은 역대 서체들을 살펴볼 수 있는 비석들을 모아서 전시하고 있다. 한대 비석 《희평석경》 잔석, 《조전비》 등에서는 초기 예서를 볼 수 있으며 서진 《사마방비》는 예서에서 해서에로 변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들 수 있다.
비림박물관 3실
사마방잔비(司馬芳殘碑, Broken Stele of Sima Fang), 서진.
미원신천시서비, 당 688년, 위원단 찬.서 가언숙 시 윤원개 서
회소초서천자문(懷素草書千字文), 명 1470년, 회소 글씨
단천자문(断千字文, Broken Stele of Thousand Character Classic), 당, 장욱 서
언수 초서 및 두통첩(彦修草書·肚痛帖), 북송 1058년 석각, 각석 언수 장욱 서
시안 비림박물관 4번째 전시실에는 비석에 새겨진 그림인 석각도화(石刻圖畵)가 전시되어 있다. 주로 송, 명, 청 시기에 새겨진 것들로 당시 중국의 건축과 명산 등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 <태화산전도>, <태백산전도>, <광중팔경> 등이 있으며 청나라 때 새긴 <공자상>이 유명하다.
비림박물관 4실.
집귀거래사시비(集帰去來辞詩碑), 소식 서
공자상(孔子像), 청 1734년, 청 과친왕 그림
태백전도(太白全图), 청 1700년, 가립 회
비림박물관 전시실과 통로
건물 외벽에 있는 글자를 새긴 석판들.
석각예술실(石刻藝術室) 동관에는 한나라, 당나라 시대 무덤을 장식하고 있던 석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주로 유교문화가 정착한 한대 이후의 것으로 한반도의 왕릉이나 무덤 등에서 볼 수 있는 석물들과 비슷한 형태이다. 서역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석관(石棺)을 비롯하여 무덤을 지키는 다양한 형태의 석수(石獸), 불을 밝히는 석등(石燈), 수호신 성격의 인물상 등이 있다.
석각예술실 동관.
노군상(老君像, Potray of Laojun),
짐승얼굴 석관(獸面石棺), 당, 1964년 셴양시 싼위안현(三原縣) 출토
달리는 짐승(走獸), 동한, 셴양시 출토
석등(石燈), 당, 섬서성 건현(乾縣) 서호촌 석우사 출토
비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석조유물들
비정 앞 광장과 극문에서 들어오는 길.
시안비림박물관(西安 碑林博物館)
시안 비림박물관은 9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시안비림(송 1087년에 처음 건설되었음)을 기반으로 공묘 고대 건축군을 이용하여 확대 건설된 테마박물관이다. 역대 비석, 묘지와 돌조각의 수집, 연구 또는 진열을 주요 역할로 한다. 현재 7개의 비석전시실, 8개의 비정(碑亭) 그리고 6개의 묘지 회랑이 있고, 한나라부터 근대까지의 다양한 비석 4,000여 개를 소장.전시하고 있다. 동쪽 돌조각관에서는 종교 돌조각인 <장안불운>을, 서쪽 돌조각예술실에서는 한나라, 당나라의 묘지 돌조각을 전시하고 있다. 이에 “동양 문화의 보고”, “서예 예술의 화랑”, 또는 “한나라, 당나라 돌조각 작품의 전당” 등으로 불리운다. (안내문, 시안 비림박물관, 2019년)
<출처>
- 안내문, 시안비림박물관, 2019년
- 위키백과,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