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西安)에 있는 시안 성벽(西安 城墻)이다. 한(漢)을 비롯하여 가장 많은 중국 역대 왕조가 수도로 삼았던 시안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都城)이다. 수(隋) 때 현재의 위치에 도성을 처음 쌓았으며 당나말 수도를 낙양으로 옮기면서 장안성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의 성곽은 명(明) 때 주원장 둘째 아들이 진왕으로 봉해지면서 다시 쌓았는 당나라 황성 터의 성을 연장하여 다시 쌓았으며 그 후 여러차례 수리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61년 중국 최초로 중점보호문물 및 AAAA급 관광경관 지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만리장성과 함께 중국 역사와 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체 둘레 13.74 km로 남북으로 2.6 km, 동서로 3.5 km 정도의 직사각형을 하고 있다. 성벽은 높이이 12 m 정도이며, 상부 너비 12 ~ 14 m이다. 성벽 바깥에는 땅을 파서 만든 호성하(护城河,해자), 성벽 위에는 갑루, 전루, 성루 등의 누각과 여인장, 타구 등의 방어시설을 두고 있다. 동.서.남.북 4개의 성문인 장락문, 안정문, 영녕문, 안원문을 비롯하여 18곳의 성문을 두고 있다. 현재의 성벽은 구운벽돌로 성벽을 쌓은 것으로 명.청대 중국 도성(都城)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시안 성벽>
영녕문(永宁门)은 장안성 남문으로 명나라 초 장안성을 다시 쌓을 때 “영녕문”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옹성 형태의 도성 정문으로 갑루(闸楼), 전루(箭楼), 정루(正楼)를 갖추고 있으며 앞쪽에는 해자를 건너는 다리인 조교(弔橋)가 있었다. 성문 양쪽에는 성문을 호위하기 위한 돌출된 형태의 치성(雉城)과 적루(敌楼)를 두고 있다. 도성 정문 형태가 거의 온전히 남아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한양 도성 숭례문(국보 1호)과 같은 성격의 성문이다.
<장안성 영녕문>
영녕문 정루(正楼)는 성문 위에 세워진 벽돌로 쌓은 3층 누각형태의 건물이다. 천안문처럼 방어적 성격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큰 문루이다. 명나라 초(1378년) 장안성을 다시 세울 때 지어졌으며 청대(1526년) 이후 여러차례 수리가 있었다. 숭례문 문루처럼 중국 성문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영녕문 정루>
영녕문 앞은 옹성이 있으며 방어시설인 전루(箭楼)가 옹성 위에 세워져 있다. 옹성은 명나라 말(1636년) 이자성의 난 때 방어를 보완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루(箭楼)는 성문을 방어하기 위한 벽돌로 쌓은 큰 누각 건물이다. 건물은 4층으로 앞쪽 각층에는 12개의 창을 두고 있다. 옆쪽에는 1층을 제외하고 각층에 창을 두어 총 64개의 창이 있다. 내부는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양쪽에도 건물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영녕문 옹성과 전루.>
<바깥쪽에서 본 전루와 갑루>
갑루(闸楼)는 옹성 바깥쪽 해자를 건너는 현수교 다리인 조교(弔橋)를 통제하기 위한 출입문 위에 세워진 누각이다. 작은 규모의 2층 건물로 바깥쪽을 향해 적을 공격하기 위한 창문을 두고 있다. 전루와 갑루 사이에도 옹성이 있다.
장안성 갑루와 옹성. 그 앞에 해자를 건너는 다리가 있고 도성 출입문을 상징하는 패방이 세워져 있다.
<장안성 갑루와 옹성>
<영녕문 옆을 지나는 도로.>
장안성 바깥에는 성을 둘러싸는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다. 호성하(护城河)라 불리는 해자는 둘레 14.6 km 정도이다. 수당 시기에 처음 건설되었는데 방어시설이면서 전시에 대비하여 물을 저장하며 홍수 때 물을 임시로 배출하는 배수시설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수.당시기에는 그 규모가 크지 않았으나 명.청대에 여러차례에 걸쳐 땅을 깊게 파고 폭을 넓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해자는 남문 주위 주작문에서 건국문까지 약 2.84 km 정도이며 깊이는 4.5 ~ 6 m 이다. 지금은 유람선이 운항되고 있다.
<영녕문에서 동쪽 건국문으로 이어지는 해자.>
<영녕문에서 서쪽 주작문으로 이어지는 해자>
시안성벽(西安城墙).비림역사문화경구(碑林历史文化景区) 호성하(护城河) 소개
수당 시기에 건설된 서안해자는 성을 에둘러 총 길이는 14.6 km이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방어체제라고 할수 있다. 고대의 “외호”는 구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2가지 작용이 있다. 하나는 해자밖에서 적을 막아 서안성 내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것이고, 다른하나는 물저장, 그리고 황수가 배수에 사용되어 도시 기후를 개선하는 것이다. 역사상 서안 해자를 처음으로 판 것은 당나라말기였고 명나라초기 배수로를 넓혀서 확대하는데 서안해자의 중요한 두시기라고 할수있다. 그후 청나라 시기에 이르러 명나라에서 넓힌 재자를 여러차례에 걸쳐서 더욱 깊게파고, 넓혔으며, 준설하여 근대시기의 서안해자를 형성하였다. 2013년부터 정식 시범구역으로 된 해자의 길이는 2.84 km, 물깊이는 4.5 ~ 6 m이며, 주작문부터 건국문으로 향하는 수역을 주선으로 해자연안의 경치에 대하 종합적인 개조를 진행하였습니다. 수로청소, 오수의 흐름을 막고, 물속의 생물을 다스리며, 물양을 증가하는 등 방식으로 해자수역에 대해 기본적인 처리를 진행하였습니다. (안내문, 시안시, 2019년)
시안 성벽 바깥쪽으로는 해자를 중심으로 시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성벽을 따라 정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성벽을 성문, 적루, 성벽, 여인장, 타구 등 다양한 방어시설을 볼 수 있다.
<영녕문 서쪽 성벽>
<성벽 바깥에 조성된 공원>
적루(敌楼)는 성벽 위에 세워진 누각을 말한다. 시안 성벽 위에는 적을 감시하기 좋은 곳이나 성문 주위 등에 다양한 형태의 적루가 세워져 있다. 성문 양쪽에 성문을 호위하기 위해 세워진 치성 위에 세워져 있는 적루가 대표적이다.
영녕문 동쪽에 세워진 치성과 적루
성벽 위에서 본 모습. 벽돌로 지은 2층 누각 건물이다.
영녕문 서쪽에 위치한 치성과 적루
장안성 북서쪽 모서리에 위치한 각루
적루가 없는 치성
장안성 남문 안쪽 문묘였던 비림박물관 앞 성벽 위에 있는 괴성루(魁星楼, Kuixing Tower)이다. 괴성루(魁星楼)는 장안성 남문 동쪽 성벽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문학의 신으로 추앙받는 괴성(魁星)을 상징한다. 한자 “魁”는 “乚”이 “斗”를 들어올리는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과거를 통과할 후보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명나라 때 (1618년) 서안을 다스렸던 지방관이 이 지방 출신이 과거를 통과하지 못한것을 애석하게 생각해 문묘(文廟) 앞 성벽위에 세웠다고 한다. 근대에 파괴되었던 것을 최근 복원하였다.
비림박물관 앞 괴성루
괴성루는 2층 목조건축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크지 않은 편으로 명.청대 이전 누각 건물 형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벽 위에서 본 괴성루.
성벽은 높이 12 m이며, 바닥너비 15 ~ 18 m이다. 성벽 내부에는 황토흙을 다져 쌓았으며 바깥쪽과 상부에는 구운 벽돌로 쌓았다. 성벽 상부는 너비 12 ~ 14 m로 마차 2대가 자유롭게 지나갈 수 있는 규모이다. 바깥쪽을 향해서는 방어시설인 여장과 타구가 설치되어 있다.
안쪽에서 본 성벽
벽돌로 쌓은 성벽
성벽을 오르는 계단.
마차 2대가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넓은 성벽 상부
성벽에서 내려 보이는 비림박물관 부근 도심
성벽 안쪽 도로
장안성 북쪽 성벽은 당나라 황성 성벽 자리에 다시 명나라 때 다시 쌓은 것이다. 황성에 있던 대안궁을 비롯하여 궁궐 등은 남아 있지 않고 시안 기차역을 비롯하여 도시의 중심기능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북쪽 성벽은 동서로 약 4.13 km이며 북문인 안원문(安远门)문을 중심으로 상무문 등 6개의 성문이 있다.
해방문(解放门)은 원래 중정문(中正门)이었는데 1934년에 이름이 바뀌었다. 1952년 시안역 광장이 확장되면서 철거되었다가 최근에 현재의 모습으로 성벽이 연결되었다. 시안 기차역은 해방문(解放门)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뒷편에 당 대명궁이 자리잡고 있다.
해방문 주변
해방문 서쪽에 위치한 적루.
해방문 동쪽 성벽(안쪽).
해방문 동쪽으로는 상검문(尚俭门), 상근문(尚勤门)이 있는데 최근에 성벽을 연결하면서 도로가 지나가던 곳에 성문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방문 동쪽 상검문.
해방문 동쪽 성벽(바깥쪽)
상검문 동쪽 상근문(尚勤门)
장안성 북쪽 성벽
서안 성벽
서안 성벽은 중국에 남아있는 성벽 중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고대 성벽건축물로, 고도 장안의 모든 역사를 한데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또한 그 독특한 매력으로 인하이 새인들에게 웅장하고 장대한 모습을 뽐내며 전 세계에 고대 중국인들의 깊은 지혜를 함축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안 성벽은 기원후 582 년 (수나라 개황 2 년)에 건설되었고 오대, 송, 금, 원나라를 거쳐 명나라 홍무부년에 당나라 시대 당장안성 황성을 기초로 확대 및 복원하였습니다. 서한 성벽 둘레 길이는 13.74 km, 상부 너비 12 ~ 14 m, 하부 너비 15 ~ 18 m 입니다. 성벽에는 성보호 하천(包括护城河,해자), 조교(弔橋), 갑루(闸楼), 전루(箭楼), 성루(城樓), 각루(角樓), 적루(敌楼), 여인장(女儿墙), 타구(垛口) 등의 고대 군사 시설이 갖추이지 있습니다. 현재 중국 최초 중점보호문물 및 AAAA 급 관광경관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늘날에 있어 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 성벽 도시 및 시안 시민들의 무한한 협력과 공동노력으로 양호하게 보호되고 있으며, 오랜 고도의 신비로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벽에는 세월의 변천과 역사의 흔적, 문화 정수의 축적, 풍부한 인류문화 체험을 제공하며 현대인의 생활에 풍요로움을 선사해 주고있습니다. 성벽, 환성 공원 숲, 성보호 하천, 성 보호 하천 외부 도로, 순성항 등이 “벽림하로항”(성벽, 숲, 하천, 도로, 나루터)가 5위일체가 되어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어, 서안의 역사 및 문화적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예로부터 국제화된 대도시로서의 중요한 지표이자 정신적인 정원과도 같은 공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고적 보호 계승에 있어서 모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안내문, 시안시, 2019년)
<출처>
- 안내문, 시안시, 2019년
- 위키백과, 2020년
- 百度百科, 202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