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간쑤성(甘肃省) 둔황(敦煌)은 간쑤성, 청해성(青海省), 신장 위구르자치구가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인구 19만의 지방소도시이다. 고대 실크로드에서 중국 밖(外地)으로 떠나는 출발지이자, 시안(長安)에서 옥문관까지 이어지는 길이 900 km 하서주랑(河西走廊)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기원전 111년 한무제가 실크로드를 개척하면서 둔황현(敦煌縣)을 설치하였으며 명나라 때 해상교역로가 활성화되기 전까지 실크로드 관문도시로서 물자와 문화 교류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철도를 비롯한 주요 교통로에서 소외되어 있으며 농업과 관광에 주로 의존하고 있다. 주요 유적으로 실크로드 서역북도 출발점인 옥문관, 서역남도 출발점인 양관, 천불동이라 불리는 막고굴 등이 있으며, 중앙아시아 사막 풍경을 대표하는 명사산과 월아천, 아단지질공원 등이 있다.
<실크로드를 대표하는 풍경인 명사산과 월아천>
둔황공황은 도심에서 동쪽으로 12.7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란저우, 우루무치, 시안, 베이징 등과 연결되는 항공편이 있다. 둔황 공항 앞에 기차역이 있으며 시안에서 둔황까지는 10시간 이상 소요된다. 막고굴이 남쪽 15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버스로 직접 연결된다.
<둔황 공항>
막고굴(莫高窟, Mogao Cave)은 명사산 동쪽 남북으로 약 1.6 km 걸쳐 약 600 여개의 석굴사원을 말한다. 오호십육국 때 처음 조성되기 시작되어으며 원대(元代)까지 약 1,000에 걸쳐 조성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것은 5세기 북양 때 조성된 것이며 북위 때 조성된 굴에는 서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북주(北周)와 수당(隋唐) 조성된 굴에서는 중국적인 모습을 많이 보인다. 19세기 말 장경동에서 많은 고문서들이 발견되면서 서구에 그 존재가 알려졌으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도 이곳에서 발견되었다.
<막고굴이 있는 명사산 동쪽 언덕>
<둔황 막고굴>
<막고굴 96호굴인 북대불전>
명사산은 감숙성 둔황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모래언덕으로 모래들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울림소리처럼 들린다고 하여 명사산(鳴沙山)이라 부르며 그 아래 샘이 솟는 작은 오아시스인 월아천이 사막의 극적인 풍경을 잘 표현하고 있어 예로부터 둔황을 대표하는 명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명사산과 월아천은 낙타를 타고 실크로드를 출발하는 장면으로 많이 등장하는 곳이다.
<명사산 모래언덕>
<월아천과 월아산장>
둔황의 전통시장인 사주시장(沙州夜市)에서는 실크로드의 전통 음식과 이곳에서 거래되었던 물품들과 지역민들이 사용하는 생활용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시장에서는 물품이 활발히 거래되는 옛날의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고, 중소도시 전통 재래시장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신장의 중심도시인 우루무치에서 옛 실크로드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다.
<둔황 사주시장>
<생필품이 거래되는 모습>
사주시장에서는 다양한 먹거리와 이를 즐기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서 시장의 활기찬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시장 광장 한편에 설치된 벤치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과 주문을 받는 사람이 다르며 음식 주문을 받으면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 여러 곳에서 음식을 가져다 주고 있다.
<사주시장 중심부 광장>
<광장에 설치된 테이블과 의자>
<실크로드의 특성을 보여주는 낙타고기 요리>
<도심에 위치한 호텔>
실크로드(緋緞路)는 근대 이전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를 말하며 좁게는 고대 북방민족이 중앙아시아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오아시스길을 말한다. 둔황은 실크로드 타클라마칸 사막 남북쪽에 만들어진 서역남로와 북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중국 바깥으로 나간다고 여겨졌다. 둔황에는 한대 만리장성 서쪽 끝 2개의 관문인 양관(陽關)과 옥문관(玉門關)이 있다. 양관(陽關)은 서역남로를 출발하는 관문으로 타클라마칸사막 남쪽길을 통해 호탄, 카슈카르 등을 거쳐 서역으로 연결된다. 옥문관(玉門關)은 서역북로를 출발하는 관문으로 누란, 투루판, 쿠울러 등을 거쳐 서역으로 연결된다.
<옥문관 부근 한대 만리장성>
옥문관(玉門關)은 한 무제 때 흉노를 공략하기 위해 하서사군(河西四郡)을 설치하면서 옥(玉)을 수입하던 통로라 하여 옥문관이라 불렀다. 옥문관은 설치된 이래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겼으며 당대(唐代)까지 서역과 연결되는 중요 교통로로 번창하였다. 둔황 북서쪽 90 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옥문관 유적은 1907년 영국 탐험가가 소방반성(小方盤城)을 조사하다가 옥문도위(玉門都尉)라 적힌 목간을 발견하면서 그 위치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유적은 당나라 때 건설된 것이다.
<옥문관 관성>
<한대 만리장성 성벽>
<옥문관 주변 봉수대>
아단국가지질공원(敦煌雅丹国家地質公園)은 옥문관에서 25 km 정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옥문관을 나서 사막길에 볼 수 있었던 이채로운 풍경은 많은 전설을 만들어 냈던 것으로 보인다. 옥문관에서 사막을 가로질러 물이 흘렀던 강을 따라서 도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주변에 다양한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둔황국가지질공원 전경>
<기암괴석>
양관(陽關)은 서역 남도(南道)로 나가는 관문으로 당대(唐代) 인도를 방문했던 현장법사가 양관을 통해 중국으로 돌아왔다. 양관 일대는 소륵하(疏勒河, Shule River) 주변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크게 번창했는데 송대(宋代) 이후 실크로드와 함께 쇠퇴하였다. 당시 쌓았던 성벽은 남아 있지 않으며 언덕에 봉수대터만 볼 수 있다. 지금은 양관박물관이 세워져 실크로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한대 만리장성 관문을 재현해 놓고 있다.
<양관 부근 봉수대>
양관박물관에는 엣 양관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벽돌로 쌓은 명청대 성벽에 비해 성벽이 높지 않으며 내부도 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양관 성문, 성벽, 치성, 공성과 방어무기 등을 재현해 놓고 있다. 옥문관 주변 있는 한대 장성의 원래 모습을 볼 수 있다.
<양관박물관>
양관은 둔황 도심에서 남서쪽으로 7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양관 일대는 남쪽 높은 산악 지역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모이는 곳으로 여러 곳의 오아시스가 있고, 그 주변에 농경지와 촌락이 형성되어 있다.
<양관 성벽 안쪽에 있는 오래된 오아시스, 황수 파수고(黄水坝水库)라 한다.>
<사막과 풍부한 수량의 저수지>
<저수지 뒷편으로 보이는 양관 봉수대 유적지>
<큰 규모의 저수지>
<저수지 제방>
<제방 아래 수로 입구>
<풍부한 수량의 마을 수로>
마을은 사막지역에 방풍림으로 많이 이용되는 포플러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에 농작물이 심어져 있다. 이 곳의 농작물을 주로 포도를 많이 재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대부분 건포도를 만들어서 내륙으로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경제 발전에 따라서 수요가 늘어서인지 경작지는 계속 넓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최근에 심은 어린 포도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방풍림이 울창한 마을 가로수>
<마을 주택가>
<포도 농장>
<포노 농장 식당>
<사막에서 볼 수 있는 포도 건조장>
<출처>
- 위키백과, 2021년
- 실크로드 문명기행, 정수일, 한겨레출판, 2006년
- 실크로드사전, 편저 정수일, 창비, 2013년
- 百度百科,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