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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대고려] 물산의 집산지, 개경

고려시대 개성은 전성기에 10만 가구가 살았다는 대도시였다. 개성 입구에 위치한 벽란도를 통해 지방과 외국에서 다양한 물품들이 공급되었다. 당시 개성사람에게 공급되었던 물품들 중 상류층들이 선호했던 사치품들은 개성 인근에 있는 지배층의 무덤에 함께 묻힌 껴묻거리와 연안 해역에서 침몰한 배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알아볼 수 있다. 출토유물로는 다양한 자기와 장신구 등이 있는데 중국 송나라 뿐 아니라 유목민이었던 거란의 요(遼), 여진의 금(金)에서 수입된 것들도 있다.

물산의 집산지, 개경
수도 개경은 왕과 왕실, 중앙 관료 등 고려의 지배층 대다수가 살아가는 일상의 공간이었고, 이들을 위해 대내외 최고급 물산이 이곳으로 집결되었습니다. 외국산 수입품은 바다와 육로를 통해 개경으로 들어왔고, 고려의 각 지방에서 수취한 조세와 공물 역시 물길을 따라 개경에 도착했습니다. 태안 대섬 인근 해역에서 출수(出水)된 2만여 점이 넘는 도자기는 지방의 최상품이 개경 으로 향하던 모습을 보여줍니다. 고려의 모든 길은 개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금성관기장’이 쓰인 거울, 개성부근, 금, 청동, 2. ‘소주(蘇州)’가 쓰인 거울, 개성부근, 송, 청동>

지배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기물이었던 청동거울은 통일신라시대를 지나면서 점차 상류계층의 일상생활용품으로 자리잡게 된다. 고려시대에는 청동거울을 자체적으로 제작했지만 상류층에서는 화려한 수입품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이며 개성 일대에서는 당시 중국에서 수입된 고급 청동거울들이 출토되고 있다.


<3. 거란 문자가 쓰인 거울, 요, 청동, 4. 청동 보주무늬 거울, 개성부근, 요, 청동>

거을은 나라 간의 교역을 보여준다. 당시 고려에서 제작한 거울 이외에는 육로와 해로를 통해 수입한 거울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개경에서는 거란 문자로 시가 쓰여 있거나 화엄 보주로 장식된 요나라 거울도 출토되었다. 시는 ‘선악을 구별하는 거울같은 존재는 신뢰할 만한 벗과 같아서 항상 옆에 둔다’는 내용이다. ‘금성관기장(金城官記匠)’이라고 새긴 거울은 금나라에서 수입된 거울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충남 서해안 태안반도 일대 해역에서는 고려시대 침몰된 배에서 도자기를 비롯하여 선상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개경과 중국을 오가는 상선과 남해안 지역에서 연안수로를 따라 개경으로 물품을 운송하던 조운선이 이곳에서 침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5.6 백자대접, 태안 근흥면 마도, 송>

<7.8. 흑유 완, 태안 근흥면 마도, 송>

태안 마도 해역에서 인양한 중국자기, 태안 근흥면 마도, 송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굽 안쪽이나 바닥 면에 먹글씨가 쓰인 중국 자기 백여점이 발견되었다. 인양된 자기는 중국 복건성을 중심으로 한 남방지역 가마에서 주로 생산된 것들로, 먹 글씨에는 송.원대 대외무역에 종사했던 중국 상인을 의미하는’綱(강)’자가 많다. 마도 인근에 외국 사신이나 관원을 위해 운영했던 객관(客館)인 안흥정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북송대 서긍의 <고려도경>에는 중국 사신단의 배가 마도에 정박했던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당시 이 일대가 고려로 들어오는 관문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2. 청자 파도무늬 완, 3. 청자 연꽃무늬 대접>


<4.5. 청자 앵무무늬 대접>


<6. 청자 국화 모란 버드나무 갈대 대나무무늬 매병(보물)>

충남 태안 마도 인근 해역에서 인양된 매병이다. 같은 곳에서 연꽃이 음각으로 장식된 매병이 1점 더 조사되었고, 모두 목간과 함께 나왔다. 이 매병은 “중방도장교 오문부, 댁에 올림, 참기름을 준(항아리)에 채워 봉함’이라고 적힌 목간을 목에 단 채 인양되었다. 함께 나온 목간의 내용을 통해 수취인은 중방에 소속된 도장고 오문부이고, 운송품은 참기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매병의 표면을 여섯 등분한 뒤 국화, 모란, 대나무, 갈대, 버드나무 등을 각각의 능화영 창 안에 정승스럽게 상감하였다.


<7. 청자 구름 학무늬 매명, 고려>

고려청자 매병 중 이 작품과 같이 뚜껑이 온전히 남아 있는 예는 매우 드물다. 뚜껑 윗면에 구멍 2개가 달린 것으로 보아 매병 위에 비단이나 자수 보자기를 어깨까지 씌우고 그 위에 뚜껑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매병 뚜껑과 몸체에도 구름과 학이 상감되어 있는데, 이 같은 무늬는 고려 왕실과 중앙관료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도교와 관련된 도상으로 여겨진다. 왕실용 도자기를 제작했던 전남 강진이나 전북 부안 유천리 가마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태안 대섬 바다에서 건져 올린 도자기, 고려 12세기, 태안 근흥면 청죽리 대섬 출토
충남 태안 대섬 인근 해역에서 2만여 점이 넘는 도자기와 목간, 선상 생활용품 등이 인양되었다. 이곳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암초가 많으며 다른 해역보다 안개가 자주 껴, 해난사고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발.접시.완.잔 등 일상용기뿐 아니라 두꺼비 모양 벼루.사자 모양 향로 등 특수한 용도의 그릇도 있었다. 자기에는 앵무, 연판, 물고기, 파도등을 비롯한 각종 문양이 다양한 기법으로 장식되었다. 특히 운송 물품의 발송자와 수신자가 적혀 있는 목간이 발견되어 수로를 활용했던 고려시대 조운제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판독 결과, 출항지는 탐진(耽津, 지금의 전남 강진)이었고 수취인은 수도 개경에 거주하는 최대경(혹은 최씨 성을 한 큰 벼슬을 한 사람)이라는 인물임이 밝혀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고려 지배층은 무덤을 만들 때 다양한 부장품을 함께 묻었는데, 사용하던 물건을 그대로 붙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개성 일대 무덤에서 보물을 찾기 위한 도굴이 성행했다. 이 때 출토된 유물 중에는 한반도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고려청자와 함께 중국에서 수입된 우수한 품질의 도자기와 장신구 등이 있다. 이들 유물들은 정식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 아니지만 동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에 포함될 수 있다.

<1. 백자병, 송, 고려 무덤 출토, 2. 청백자 봉수 병, 송 12세기, 전 문공유 무덤 출토>

개경 속 다른 나라
개경에 살았던 지배층은 국제적인 감각으로 당대 유행을 주도 했습니다. 이들은 고려의 신소재 물품인 청자와 함께, 중국 여러 가마에서 만든 자기도 수입해서 사용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국내에서는 살 수 없는 해외 물품을 직접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처럼, 개경 사람들도 새로운 문화에 대한 소비 욕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다를 건너온 상자를 뜯어 확인할 때의 기쁨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개경 인근 고려 무덤에서 나온 다양한 중국 자기는 당시 사람들의 새로운 문물에 대한 폭넓은 경험을 반증합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6. 백자 국화 넝쿨무늬 잔, 7. 청백자 모란.넝쿨무늬 주자, 송 12세기, 전 문공유 무덤 출토>

<3. 청백자 꽃 넝쿨무늬 주자, 4. 청백자 꽃무늬 합, 5. 백자 꽃모양 접시, 송, 개성부근>

<10. 청자 팔각 모양 항아리, 11. 백자 잔과 뚜껑, 송, 개성부근>


<12. 청백자 참외모양 병, 13. 청백자 주자와 승반, 송, 개성 부근>

문공유 무덤에서 나온 다양한 도자기
문공유(1088 ~ 1159)는 종1품인 판삼사사(判三司事)까지 오른 고위 관료였다. 1115년 송나라에, 1129년과 1150년 금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된 이력이 있다. 문공유 무덤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도자기 중 2점은 고려청자고, 3점은 중국백자다. 중국백자 3점 중 <청백자 봉수 병>과 <백자 모란.넝쿨무늬 주자>는 경덕진 가마에서, <백자 국화.넝쿨무늬 잔>은 정요(定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도 경덕진 청백자는 사회.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상류층의 무덤에 부장되었는데, 고려 역시 동아시아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1. 백자 보상화넝쿨무늬 꽃모양 대접, 2. 백자 모란 꽃모양 대접, 송, 개성 부근>


<3. 청백자 사자장식 베개, 송, 4. 흑유 완, 송>


<5. 백자 합, 송, 6. 백자 보상화무늬 대접, 송, 개성부근 출토>

개성 곡령리에서 나온 중국 자기(3,4,5,6)
개성시 인근 곡령리에서 나왔다고 전한다. 곡령리는 지금의 해선리에 해당하는데, 이 지역은 고려 왕릉이 다수 조성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릇이 모두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무덤이나 구덩이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완(碗) 두점과 합(盒), 베개, 유병(油餠)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시대 사람들의 다앙한 중국자기 사용 예를 살펴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7. 청자 인물무늬 주자, 8. 청자 칠보무늬 대접, 송, 개성부근 출토>


<9. 청자 보상화무늬 꽃모양 접시, 10. ‘대(大)’가 새겨진 백자 타호, 송, 개성부근 출토>

<1. 백자 흑화 모란 넝쿨무늬 병, 2. 백유 모란 무늬 병, 고려무덤 출토, 송>

<3. 녹유 모란 덩쿨무늬 표주박 모양 병, 송, 4. 흑유 주자, 송>

<개성부근 출토 장신구>

고려의 지배층은 죽음을 맞이한 이후에도 개경 인근에 묻히길 원했습니다. 무덤을 만들 때 묘지와 여러 가지 부장품을 함께 묻었는데, 사용하던 물건을 그대로 붙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상과 문화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개성 부근에서 출토된 다양한 자기와 장신구는 고려 지배층이 선호했던 문화적 기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타임캡슐과도 같습니다. 정식 발굴로 세상에 드러난 것이 아니어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지만, 앞으로 우리가 알아내야 할 고려의 모습입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출처>

  1. 안내문, 중앙박물관 특별전, 2019년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3.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