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에 모셔져 있는 대장경판(국보)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불타버린 초조대장경을 대체하고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 새겼다. 현존하는 대장경 중 가장 오래되었으며 체제와 내용도 완벽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려 고종 23년(1236) 시작하여 고종 38년(1251)에 완성되었는데 북송의 관판대장경, 거란 대장경, 고려 초조대장경을 참조하고 내용의 오류를 바로 잡으면서 제작했다. 현재 보존되어 있는 경판의 수는 81,352장이다. 원래 강화도 선원사에 있던 것을 조선 태조 때(1398년) 해인사로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만대장경(국보) 중 ‘반야다라밀심경’>
국보 제32호, 『반야다라밀다심경』 팔만대장경판 가운데 가장 짧게 260자로 서술된 1판 단권의 경판. 당나라 삼장법사 현장의 한역 반야심경 또는 심경이라고도 하며, 반야사상의 중심인 공(空)사상을 260자로 축약하여 서술한 경전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불교의식에서 독송, 유명한 문구는 본 경판의 3행9번째 글자부터 4행 2번째 글자인 “색즉시공 공즉시생(현상에서는 실체가 없다. 실체가 없으므로 형상일 수 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대장경판으로 인쇄한 열반경(대반열반경), 고려 고종 18년(1241), 송성문 기증>
고종 28년(1241)에 대장도감에서 판각한 대반열반경의 유일본이다. 대반열반경은 석가모니의 열반에 대해 말한 경전으로 중국 북량의 인도 승려 담무찬(Dharmakema)이 번역한 것이다. 각 경판 맨 앞의 판수제에는 위에서부터 차례로 권차券次, 장차 張次, 함차 函次를 표시하였다. 장차의 단위는 “장 丈”자를 쓴 초조대장경판과 달리 “장 張”자를 썼다. 간혹 함차 아래에 쓴 것은 경판을 직접 새긴 각수의 이름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해인사 대장경판에서 인쇄한 조선시대 팔만대장경, 1883년 인쇄, 종이에 인쇄, 월정사>
팔만대장경은 고려를 침략한 몽골을 불교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이다. 경판의 수가 8만여 장에 이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 이라고 부른다. 경판은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1393(태조 2), 1458(세조 4), 1500(연산군 6) 등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인쇄되었지만 국내에 온전히 남아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월정사에 소장된 팔만대장경은 해인사 경판에서 직접 찍은 것으로, 1865년(고종 2)에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후원으로 인쇄한 대장경 2부 중 하나이다.(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장경판전에 모셔진 팔만대장경 목판>
고려팔만대장경판은 글자를 새긴 경판 판면과 경판 양끝에 각목으로 덧댄 마구리로 이루어져 있다. 마구리를 포함한 경판의 가로 길이는 약 70 cm, 세로 길이(폭) 약 24 cm, 두께는 약 3.25 kg이다. 글자는 경판 양면에 돋을새김(양각) 되었다. 한 면에 글자를 새긴 세로줄 수는 23행이며, 행마다 새긴 글자 수는 14자 정도이다. 해인사의 고려대장경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인류 최대의 기록물이다. 약 240여년 동안 3차에 걸치 고려대장경 판각은 불교를 꽃피우게 하였고 인쇄문화와 기록문화의 발전에도 크게 공헌하여 아시아 문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이는 정신문화사적으로도 세계적인 자랑거리다. 이러한 가치가 인정되어 장경판전은 199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고려대장경판은 해인사의 다른 경판과 함께 2007년 6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안내문, 합천 해인사, 2017년)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출처>
-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 안내문, 합천해인사, 2017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