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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원원사지(사적), 통일신라 밀교를 이끌었던 사찰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봉서산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 절터인 원원사지(遠願寺址,사적)이다. 통일신라 밀교 해동 진언종(眞言宗)을 이끈 안혜, 낭유 등과 김유신 등이 호국사찰로 창건했다고 한다. 절터에는 십이지신상과 사천왕상이 새겨진 동.서삼층석탑과 금당터, 석등 등이 남아 있다. 명랑법사가 세운 사천왕사와 함께 통일신라 밀교의 중심이 되었던 사찰이다. 절터 아래에는 최근 중건된 사찰이 있다.

밀교(密敎)는 비밀의 가르침이란 뜻으로 문자나 언어로 표현된 현교(顯敎)를 초월한 최고의 가르침을 말한다. 인도에서 힌두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대승불교로 다라니(陀羅尼)라 부르는 주문을 중시하며 법신불(法身佛)인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대일경(大日經)>과 <금강정경(金剛頂經)>이 주요 경전이다. 중국에서는 밀종(密宗), 한국과 일본에서는 진언종(眞言宗)이라고 하며 티벳불교도 밀교에 속한다.

<경주 원원사지(사적)>

또한 신라 서울 동남쪽 20여 리에 원원사(遠源寺)가 있는데 언전에는 안혜 등 네 대덕이 김유신(金庾信)·김의원(金義元)·김술종(金述宗) 등과 함께 발원하여 창건한 바이라 한다. 네 대덕의 유골은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안장되어 있고 이로 인하여 사령산(四靈山) 조사암(祖師嵒)이라고 부른다. 곧 네 대덕은 모두 신라시대의 고승이다. 돌백사(堗白寺) 「주첩주각(柱貼注脚)」에 실린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경주 호장 거천(巨川)의 어머니는 아지녀(阿之女)이고, 그 여자의 어머니는 명주녀(明珠女)이고, 그 여자의 어머니는 적리녀(積利女)로 적리녀의 아들은 광학대덕(廣學大德)과 대연삼중(大緣三重) 옛 이름은 선회(善會)이다.인데 형과 동생 두 사람이 모두 신인종에 투신하였다. 장흥(長興) 2년 신묘에 태조를 따라 서울로 올라와서 임금의 행차를 따라다니며 분향하고 수도하였다. 그 노고를 포상하여 두 사람 부모의 기일보(忌日寶)로 논밭 몇 결을 지급하였다.” 곧 광학·대연 두 사람은 태조를 따라 입경한 사람이고 안혜사 등은 곧 김유신 등과 더불어 원원사를 창건한 사람이다. 광학 등 두 사람의 유골은 또한 여기에 와서 안치했을 뿐이고 네 대덕이 모두 원원사를 세우고, 모두 태조를 따른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야 한다. (삼국유사 권 제5 제6 신주 명랑신인,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절터 가운데에는 2개의 탑이 나란히 있는  쌍탑이 남아 있다. 2개의 모두 같은 양식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려놓고 있다. 그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성기때 세워졌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주 원원사지 동.서삼층석탑(보물)>

석탑 기단에는 연화좌에 앉아 있는 십이지신상이 새겨져 있는데 통일신라 석탑 중 처음으로 배치한 것이다. 십이지신은 『약사경(藥師經)』을 외우는 불교인을 지키는 신장이다. 삼국시대에는 밀교의 영향으로 호국적인 성격을 가졌으나 이후에는 방위신의 역할을 바뀌었다.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기단부>

<뒷편에서 본 모습>


<탑 가운데 남아 있는 고려시대 석등>

절터 뒷편에느는 축대부분 만 남아 있는 금당터가 있으며 그 주위로 건물 기둥을 올려 놓았던 석재들을 볼 수 있다.

<금당터>

<건물 기둥을 올렸던 주춧돌>

<주변에 남아 있는 석재들>

절터 아래에는 최근에 중건된 원원사가 있다.

<절터 입구>

<절터 아래에 있는 원원사>

<명부전>

<원원사 절터로 오르는 길>

<출처>

  1. 안내문, 문화재청, 2012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
  5. 삼국유사 권 제5 제6 신주 명랑신인,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