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재매정(財買井, 사적)이다. 삼국통일에 큰 역할을 한 김유신이 살던 집터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우물은 화강암을 벽돌처럼 쌓아 올려 만들었다. 우물 깊이는 5.7 m이며 넓은 부분의 너비가 1.8 m정도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남아 있는 유서깊은 우물이다. 우물 옆에는 구한말에 세워진 유허비가 있다.
<경주 재매정(사적)>
<재매정 우물과 유허비>
<재매정 우물>
김유신이 살았던 집터는 신라 왕궁이었던 월성에서 서남쪽으로 약 500 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에 통일신라 최고 교육기관이 있었던 자리에 남아 있는 경주향교가 있으며 최부자집이라 불렸던 집을 비롯하여 부유층들이 살았던 마을이 있다. 통일신라 때 귀족층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집터는 1993년에 재매정을 중심으로 주변 집터를 발굴,조사하였다.
<집터에서 출토된 석조유물>
<재매정 동쪽편 건물터>
<재매정 서쪽 건물터>
<뒷편에서 본 재매정>
<재매정 동쪽편으로 보이는 경주 월성과 교촌마을>
<집터 앞을 흐르는 경주 남천>
<집터 남쪽 500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김유신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천관사 절터(사적)>
재매정(財買井), 사적,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91
재매정(財買井)은 신라 명장 김유신(金碩信)이 살던 집터라고 전해지는 이곳에 남아 있는 우물이다. 월성(月城)에서 서쪽으로 약 400m 거리에 남천 (南川)을 바로 앞에 두고 위치해 있다. 『삼국사기, 三國史記』에 김유신 장군이 백제와 싸워 크게 이기고 돌아 오는 중에 백제군이 다시 침범하여 온다는 급보를 받았다. 장군이 쉴 사이도 없이 출전하는 길에 자기 집 앞을 지나게 되자, 병사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마신 다음 “우리 집 물맛은 옛날 그대로구나!” 하면서 떠났 다는 기록이 있다. 우물은 깊이 5.7m, 최대 지름 1.8m, 바닥 지름은 1.2m 내외이고, 판석이 덮여 있다. 옆에는 조선 고종(高宗) 9년(1872)에 세운 유허비가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2년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1년
-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