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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숭복사 쌍거북비석받침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경주 숭복사 쌍거북 비석받침이다. 이 비석받침은 경주시 외동읍 말방리 숭복사 절터에 남아 있던 것이다. 숭복사는 원성왕릉 원찰 역할을 했던 사찰로 <삼국유사>에 최치원이 비문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마리의 거북이 비석을 받치고 있는 형태는 흔치가 않은데 왕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경주 창림사지와 무장사지에 비슷한 형태의 거북받침돌이 있다고 한다.  높이 0.77 m, 너비 1.8 m 규모이다. 통일신라 전성기에 조성된 것으로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표현이 특징이다.

<경주 숭복사 쌍거북 비석 받침(崇福寺雙龜跌), 경주 숭복사터, 통일신라 9~10세기>

<숭복사지비 조각, 896년, 경주 숭복사지>

<숭복사지비 조각, 896년, 경주 숭복사지>

두 마리 거북이 붙어 있는 이 비석받침은 경주 외동읍 말방리 숭복사 터에 있던 것입니다. <삼국유사> 원성왕(元聖王, 재위 785~798)의 능은 토함산 서쪽 골짜기 곡사(승복사)에 있는데 최치원이 지은 비문이 있다.’ 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로써 승복사는 원성왕의 명복을 빌어주던 원찰이라는 것과 그 곳에 있던 비문을 최치원이 지 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쌍거북 비석받침은 또 어디에 있을까요? 승복사 외 에도 경주 배리에 있는 창림사 터와 경주 암곡동 무장사 터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다른 비석과 달리 쌍거북 받침일까요? 그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세 절 모두 신라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입니다. 승복사는 원성왕 의 명복을 빌기 위한 절이고, 창림사 일대는 박혁거세가 세운 신라 최초의 궁궐터라고 알려져 있으며, 무장사는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를 숨겼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신라 사람들은 왕실과 관련된 비석을 좀더 화려하게 꾸미고 싶지 않았을까요?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2년)

<출처>

  1. 안내문, 경주박물관,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1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1년
  4. 위키백과, 202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