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25대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 김사륜/김금륜)의 능이다. 진지왕은 진흥왕의 둘째 아들로 왕위에 올라 백제군을 격퇴하고 중국 남조 진(陳)과 외교관계를 맺었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집권 4년만에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국정을 문란하게 운영하고 황음에 빠져 폐위되었다고 한다. 귀족세력간의 대립에서 폐위된 것으로 추정된다. 진골로서 처음 왕위에 오르고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태종무열왕의 할아버지이다.
<경주 진지왕릉(사적)>
진지왕이 왕위에 오르다 ( 576년 08월(음) )
진지왕(眞智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사륜(舍輪) 혹은 금륜(金輪)이라고도 하였다.이고, 진흥왕(眞興王)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는 사도부인(思道夫人)이고 왕비는 지도부인(知道夫人)이다. 태자(太子)가 일찍 죽었으므로 진지(眞智)가 왕위에 올랐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지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진지왕이 죽다 ( 579년 07월17일(음) )
〔4년(579)〕 가을 7월 17일에 왕이 돌아가셨다. 시호를 진지(眞智)라고 하고,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지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제25대 사륜왕(舍輪王)의 시호는 진지대왕(眞智大王)으로 성은 김씨이며 왕비는 기오공(起烏公)의 딸인 지도부인(知刀夫人)이다. 대건(大建) 8년 병신(丙申)에 왕위에 올라 고본(古本)에는 11년 기해(579)라고 하였으나 오류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4년 만에 주색에 빠져 음란하고 정사가 어지러우므로 나라 사람들이 그를 폐위시켰다.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 도화녀 비형랑,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삼국사기>에 영경사(永敬寺)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경사는 진흥왕릉이 있다는 애공사(哀公寺)와 같은 사찰로 추정되어 진흥왕릉 아래에 있는 무덤을 진지왕릉으로 보고 있다.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서악동 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 하나라는 견해도 있다.
<삼층석탑이 있는 영경사 절터>
<절터 뒷편에 있는 4기의 왕릉>
<진지왕릉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기도 하는 서악동 고분군(사적)>
신라 진지왕릉(新羅 眞智王陵, 사적), 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 92-22
이 능은 신라 제25대 진지왕(眞智王, 재위 576~579, 김사륜/김금륜)이 모셔진 곳이다. 밑둘레 53m, 높이 3m의 봉분을 둥글게 쌓아 올린 보통 크기의 무덤이다. 진지왕은 법흥왕의 둘째 아들로 왕비는 지도부인(知道夫人)이다. 거칠부(居朵大)를 상대등으로 삼았으며, 부왕의 뜻을 받들어 내리서 성을 쌓고, 백제군을 격퇴하였다. 또한 중국 진(陳)나라에 사신을 보내서 외교관계를 맺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진지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 삼국유사 권 제1 제1 기이 도화녀 비형랑,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