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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문성왕릉(사적), 신라 46대 문성왕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 있는 신라 제46대 문성왕(文聖王, 재위 839~857, 김경응)의 능이다. 문성왕은 신무왕의 아들로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난을 평정하고 지방호족 세력을 견체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던 왕이다. 삼촌인 47대 헌안왕과 함께 신라 전성기를 마련한 진흥왕릉 능역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반란을 통해 민애왕을 몰아내고 집권했기 때문에 정통성 확보를 위해 이곳에 능을 마련한 것으로 보있다. 반란에 큰 역할을 했던 김양의 무덤은 태종무열왕릉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경주 문성왕릉(사적)>

문성왕이 즉위하다 ( 839년 07월(음) )
문성왕(文聖王)이 왕위에 올랐다. 이름은 경응(慶膺)이며, 신무왕(神武王)의 태자이다. 어머니는 정계부인(貞繼夫人)이다.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제11 문성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청해진을 혁파하다 ( 851년 02월(음) )
13년(851) 봄 2월에 청해진(淸海鎭)을 혁파하고, 그곳 사람들을 벽골군(碧骨郡)으로 옮겼다. .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제11 문성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왕이 유조를 내리고 죽다 ( 857년 09월(음) )
19년(857) 가을 9월에 왕이 병이 들었다. ~ 생략 ~ ~ 7일이 지나 왕이 죽으니, 시호를 문성(文聖)이라 하고, 공작지(孔雀趾)에 장사를 지냈다.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제11 문성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삼국사기>에 따르면 공작지(孔雀趾)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정조 떄 <승정원일기>에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 같은 언덕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현재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진흥왕릉, 진지왕릉, 문성왕릉, 헌안왕릉이 모여 있는 능역>

<능역 앞에 있는 절터>

김양은 신무왕을 도와 민애왕의 뒤를 잇게 하였으며, 문성왕을 받들었다. 그뒤 헌안왕이 무열왕릉 곁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장보고와 함께 신무왕의 정변을 주도한 인물로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무열왕릉 옆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

<태종 무열왕릉 아래에 있는 김양의 무덤>

신라 문성왕릉(新羅 文聖王陵, 사적), 경북 경주시 서악동 산 92-2
이 능은 신라 제46대 문성왕(文聖王, 재위 839~857, 김경응)이 모셔진 곳이다. 진흥(眞興)·헌안왕릉(憲安王陵)과 함께 선도산(仙桃山)의 남쪽 구릉 말단부 능선상에 위치하고 있다. 능의 지름은 20.6 m, 높이는 5.5 m이다. 신무왕(神武王)의 아들로 신라의 쇠퇴기에 재위하여 나라를 통치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았으나, 청해진(淸海鎭) 대사 장보고(張保皐)의 난을 평정하고 혈구진을 설치하여 지방 세력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임해전을 크게 보수하였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신라진흥왕릉고, 新羅 眞興王陵考」에서 무열왕릉(武烈王陵) 위에 있는 서악동 고분 4기를 진흥·진지(眞智)·문성 · 헌안왕릉으로 추정한 바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삼국사기 권 제11 신라본기 제11 문성왕,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