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보물)’이다. 건물은 정청인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 그리고 두 건물을 연결해 주는 복도로 이루어져 있다. 정청 건물인 경근당은 앞면 7칸으로 관청건물 중에서는 상당히 규모가 큰 규모로 의정부나 삼군부 청사와 비슷한 규모이다. 경근당에는 국왕의 어진 등을 보관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 사무공간은 별채인 옥첩당에서 했던 것으로 보인다. 낙산 서울성곽 동쪽과 육사교정으로 옮겨진 삼군부 건물과 함께 조선시대 관청 건물 중 남아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조선시대 관청가인 육조거리에 있었던 의정부를 비롯한 주요 관청과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어 조선시대 관처의 모습을 실제로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건물이다.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보물)>
<오른쪽에서 본 모습>
<뒤에서 본 모습>
의정부의 비롯하여 조선시대 중앙관청건물은 가운데 정청을 두고 양쪽에 실무관헌들이 근무하는 별채 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현재 종친부 건물은 정청에 해당하는 경근당과 별채인 옥첩당이 남아 있다.
<종친부 정청 건물에 해당하는 경근당(敬近堂)>
<오른쪽에서 본 모습>
건물은 앞면 7칸 규모의 큰 건물이다. 종친부에서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영정(초상화)을 보관하였다고 하는데, 이 건물에 보관했을 것으로 보인다. 건물 앞에는 주요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월대가 조성되어 있으며, 별채인 옥첩당과는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근당 현판>
<경근당 앞 월대>
<종친부 별채 건물에 해당하는 옥첩당(玉牒堂)>
앞면 5칸 규모의 건물로 실무 관헌들이 근무하는 장소였던 것으로 보인다.
<옥첩당 현판>
<복도>
종친부 옥첩당과 경근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옥첩당 복도>
옥첩당 앞쪽 복도와 경근당 뒷쪽 복도가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뒤에서 본 옥첩당>
<우물>
조선시대 종친부에서 사용했던 것이며, 두개의 타원형 갓돌로 만들어졌다. 우물 갓돌의 네모형 괴임에는 동서남북을 표시하며, 물동이를 놓기도 하고 정수를 떠 놓고 소원을 기원했던 자리이다. 우물옆 소나무는 약300년전 정자수로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처:서울시청>
종친부 경근당과 옥첩당
종친이란 국왕의 친가 쪽 친척을 말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정식부인에게서 난 자손은 4대손까지, 후궁에게서 난 자손은 3대손까지 종친으로 대우하였다. 종친부는 종친과 관련된 일들을 의논하고 처리하던 관아였으며, 국왕들의 족보와 초상화를 관리하는 일도 담당하였다. 원래 종친부는 경복궁 동쪽 문인 건춘문의 맞은 편에 있었는데, 이는 건춘문이 왕족과 외가의 친척, 상궁들이 드나드는 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1981년에 정독도서관으로 옮겨졌다. 건물은 본채인 경근당과 그 오른쪽 결채인 옥첩당,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복도로 이루어져 있고 본채 앞에는 월대라는 넓은 단이 있다. 복도는 본채의 뒤쪽과 결채 앞쪽의 트인 공간을 서로 연결해 주는데, 두 건물의 바닥 높이가 서로 다리기 때문에 계단의 기능도 겸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 세 동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 서울 중앙 관청의 격식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이다. <출처:서울시청>
경복궁 건춘문은 조선시대 왕실 가족들이 드나드는 출입문이며, 그 앞에는 왕실 친인척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관청인 종친부(宗親府)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현대식 병원이 들어서고 한국전쟁이후 육군통합병원과 기무사령부가 자리잡았다. 종친부 건물은 1980년대에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정독도서관 마당으로 옮겨졌다가 최근에 기무사령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종친부 건물도 같이 옮겨졌다.
종친부는 궁궐을 드나드는 외척이나, 상궁 등을 감시하거나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목적으로 경복궁 건춘문 앞에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종친부는 종친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는 중앙부처이기는 하지만 <경국대전>을 비롯한 법령에는 직제와 인원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종친들에게 명예직으로 관직을 부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까닭에 종친부는 조선시대 최고의 관청이었던 의정부보다 지위가 높은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종친부 건물 또한 그 위상에 맞게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경복궁 동문에 해당하는 건춘문>
조선시대 궁궐을 출입하는 종친, 외척, 상궁, 나인 등은 건춘물을 통해서 출입을 했다. 종친부는 건춘문 앞에 위치하고 있어 궁궐을 출입하는 인사들을 감시하고 있는 모양새를 하고 있다.
<경복궁과 종친부 사이를 지나는 큰 길>
원래는 북악산에서 발원한 개천이 흐르는 곳이었다.
<종친부 터에 남아 있는 고목>
<2010년 정독도서관 마당에 있던 모습>
종친부
조선왕조 역대 모든 제왕의 어보(왕의 도장)와 영정(초상화)을 보관하고, 왕과 왕비의 의복을 관리하며 종실제군(宗室諸君)의 봉작승습·관혼상제 등 모든 사무를 맡아보던 곳이다. 조선 전기에는 ‘재내제군소’라 하였으나 여러 차례 그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가, 세종 12년(1430)에 종친부라 하였다. 순종 융희 1년(1907)에는 이를 폐지하고, 이곳 사무를 규장각으로 옮겼다. 원래 삼청동에 있던 것을 1981년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출처:문화재청>종친의 정원은 없었으며 관직은 대군(大君:王嫡子)·군(君:王庶子)·영종정경(領宗正卿)·판종정경(判宗正卿:정2품)·군(정1품~종3품)·지종정경(知宗正卿:정2품~종1품)·종정경(宗正卿:종2품)·도정(都正:정3품)·정(正:정3품)·부정(副正:종3품)·수(守:정4품)·영(令:정5품)·전부(典簿:정5품 朝官) 각 1명, 부령(副令:종5품)·감(監:정6품)·주부(主簿:종6품 朝官) 각 1명, 직장(直長:종7품 朝官) 1명, 참봉(종9품:朝官) 1명으로 구성되었다. <출처: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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