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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대릉원(사적) 호우총

경북 경주시 노서동에 있는 삼국시대 무덤인 호우총(壺杅塚)이다. 경주 대릉원(사적)에 있는 많은 무덤 중 140호분으로 ‘호우(壺杅)’라는 글씨가 돋을 새김되어 있는 청동그릇(보물)이 출토되어 호우총이라 불린다. 1946년 국립박물관이 해방 후 처음으로 은령총과 함께 발굴하였다. 전형적인 신라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옆에 있던 은령총과 함께 쌍분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당시에는 봉분은 없고 주택이 있었으며 현재는 주위보다 약 2 m 높은 대지만 남아 있다.

<경주 대릉원 140호분, 호우총, 은령총>

청동 그릇은 고구려 광개토대왕 사후(415년)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무덤주인이 소장하고 있다가 죽은 후 6세기 초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릉원 일대 무덤의 조성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무덤이다. 출토유물로는 청동그릇(보물), 환두대도, 금동관을 비롯한 장신구, 도깨비얼굴을 하고 있는 화살통 등이 있다. 무덤의 규모나 출토유물로 볼 때 무덤주인은 최고위급보다 한단계 낮은 신라왕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주 호우총 출토 청동 ‘광개토대왕’명 호우(보물)>

바닥에는 글자가 4행 4자씩 총 16자(乙卯年國罡(岡)上廣開土地好太王壺杅十, 을묘년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호우십)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를 통해 고구려에서 만든 그릇이 신라에 전해졌음을 알 수 있다.

<뚜껑>

<용문고리자루칼, 신라. 경주 호우총>

환은 대부분 멸실되었으며 환 내붕 용두가 잘 남아 있다. 용두는 청동으로 부조하고 도금하였는데, 별도로 제작하여 환 안쪽에 부착하였다. 금동판으로 제작된 초구금구에 용문이 부착되어 있고, 도신의 단면에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상감하였다. 용은 금사로, 물고기는 은사로 상감한 것이 특징이다. (안내문, 공주박물관 특별전, 2016년)

<화살집, 삼국시대(신라) 6세기, 경주 호우총, 복원>

화살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손쉽게 사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중국의 고서인 『주례』에 귀신을 몰아내는 방상시(方相氏) 모습의 가면으로 알려졌으나 화살집 장식으로 새롭게 알려졌다.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금제드리개, 삼국시대(신라) , 호우총>

<귀걸이, 삼국시대(신라), 호우총>

 <그릇, 청동, 삼국시대(신라) 6세기>

호우총
호우총은 신라시대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해방 직후인 1946년 3월에 우리나라 고고학자가 발굴한 최초의 고분이다. 호우총이라는 명칭은 고구려의 청동 그릇이 출토되어 붙여졌다. 청동 그릇에는 16자의 명문과 ‘정(井)’자가 돋을 새김되어 있다. 명문은 ‘을묘년(415년)에 광개토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호우’로 광개토대왕을 장사지낸 1년 뒤 이를 기념하여 만든 것으로 추정되어 고구려와 신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무덤은 함께 출토된 유물의 형식으로 보아 6세기 전반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청동 그릇은 만들어진 지 약 백년이 지난 어느 시점에 비로소 무덤속에 부장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경주 대릉원(사적) 노서동 고분군>

<경주 대릉원 노서동, 노동동 고분군 주요 무덤>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20년
  2.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안내문, 중앙박물관, 2014년
  5. 안내문, 공주박물관 특별전, 2016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