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시 황남대 일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인 황남동 고분군이다. 일제감점기에 일련 번호가 붙여진 흙을 쌓아 올린 봉분이 30여기 남아 있으며 봉분이 없어진 작은 무덤들도 있다. 고분공원으로 조성된 대릉원에는 미추왕릉을 비롯하여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이 있으며, 월성 아래 계림 부근에는 내물왕릉을 비롯하여 5기 정도의 큰 무덤들이며, 멀리 서쪽편 황남초등학교 부근에도 6기 정도의 봉분이 있는 무덤을 볼 수 있다. 큰 무덤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으로 고분과 주위 풍경은 고도 경주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손꼽힌다.
<경주 황남동 고분군, 내물왕릉 부근>
<경주 황남동 일대 고분들>
신라 왕성이었던 월성 북쪽에는 왕릉과 귀족들의 무덤들이 모여 있는 대릉원과 첨성대를 비롯한 왕궁터가 자리잡고 있다. 첨성대 서남쪽에는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 탄생설화가 담긴 계림과 내물왕릉을 비롯하여 5기의 고분이 자리잡고 있다. 넓은 잔디밭에 첨성대와 계림, 그리고 고분들이 신라 천년의 수도였던 경주를 대표하는 장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주 내물왕릉(사적)>
<내물왕릉 앞 28호, 29호 무덤>
<안쪽에서 본 28호 무덤>
<29호 무덤>
<118호 무덤>
119호 무덤은 황남대총, 노동동 봉황대와 함께 봉분의 규모가 가장 큰 무덤이다. 삼국유사에 첨성대 남쪽에 내물왕릉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왕릉급 무덤으로 내물왕릉으로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황남동 119호 무덤>
<안쪽에서 본 119호 무덤>
황남동 119호 무덤 서쪽 300 m 정도 떨어진 황리단길 부근 들판에는 신라 고분을 대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119호 무덤과 연결되어 있지만 중간에 주택이 들어서 있어 분리된 지역처럼 보인다. 경주시 입구에 위치한 고분답게 가장 이른 시기인 1910년 이전에 일본인에 의해 발굴되어 돌무지덧널무덤의 형태가 확인되었다. 이후 신라 고분 발굴조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경주 황남동 고분군>
<143호 무덤>
145호 무덤은 일제강점기 이전 1906년 일본인이 처음 조사하였으며 1909년에 일부를 발굴,조사하여 돌무지만 확인하였다.
<뒷편에 있는 144호, 145호 무덤>
<144호 무덤>
<주택가에 있는 124호 무덤>
이곳은 최근 경주 황리단길이라 하여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바뀌었다. 황남동 일대에서 보이는 고분의 모습의 고도 경주의 모습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황남동 고분군 앞 길>
황남동 고분군
경주시 황남동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신라 초기의 무덤들로 일제강점기 당시 이 지역 주변의 무덤에 120 ~ 124, 144 ~ 146호의 일련번호를 붙였다. 무덤은 대부분 돌무지덧널무덤으로 추측되며, 1906년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 류가 신라 고본으로는 최초로 발굴 조사를 실시한 황남동 남총이 위치하고 있다. 남총은 1909년에 일본 미술사학자인 세키노 타다시가 다시 조사하여 내부의 돌무지층을 확인하였으며, 이후의 신라 고분 발굴 조사에 영향을 주었다. (안내문, 경주시청)
<출처>
- 안내문, 경주시청
-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 Cultural Heritage Wiki, 문화재청,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