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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계림(사적), 김알지 탄생설화가 있는 곳

경북 경주시 교동에 있는 계림(桂林, 사적)이다.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가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신라 궁성이었던 월성 아래에 있는 신성한 숲으로 원래는 시림(始林)으로 불렸는데 김알지가 태어난 후 계림으로 불렀다고 한다. 김알지의 7대손인 미추왕이 처음 왕위에 올랐으며 내물왕 이후 김씨의 후손이 왕위를 세습하게 되었다. 계림은 느티니무, 물푸레나무, 싸리나무 등 다양한 종류의 수목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경주 계림(사적)>

알지가 태어나고 계림을 국호로 삼다 ( 65년 03월(음) )
9년(65) 봄 3월에 왕이 밤에 금성(金城)1의 서쪽 시림(始林)의 나무 사이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날이 밝자 호공(瓠公)을 보내 살피게 하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보고하니,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다가 열어보았다. 작은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모습이 뛰어나고 훌륭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좌우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좋은 후계를 보낸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거두어 길렀다. 장성하자 총명하고 지략이 많았다. 이에 이름을 알지(閼智)라고 하고, 금궤에서 나왔기에 성을 김(金)씨라고 하였다. 시림의 이름을 계림(雞林)이라고 바꾸었는데, 이로 인해 계림이 국호가 되었다.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월성 북쪽 출입문을 나서면 서쪽편에 작은 숲을 볼 수 있다. 특별히 문화재로 분류할 수 있는 유적,유물이 발굴된 장소는 아니지만 신라 천년을 이끌어온 김알지 탄생 설화가 있는 숲이다. 계림은 오래된 고목들이 많고 종류도 다양해 독특한 숲을 이루고 있다. 계림 끝부분에는 경주김씨 세습 체제를 구축한 내물왕릉이 자리잡고 있다.

<월성에서 계림으로 내려오는 길>

<계림에서 볼 수 있는 고목들>

<계림 숲>

계림에는 조선후기 순조 때(1803년)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이 있는 비각>

계림 끝에는 김알지 후손으로 왕위에 올른 내물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내물왕릉(사적)이다. 신라는 내물왕 이후 김씨와 왕위를 세습하게 되었다. 계림 바깥쪽으로는 신라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인 대릉원이 자리잡고 있다.

<계림에서 보이는 고분들>

<내물왕릉(사적)>

<첨성대 부근에서 보이는 계림>

<계림 야경>

대릉원 입구에는  경주김씨 시조 김알지를 모시는 계림세묘(桂林世廟)가 있다.

<계림 세묘>

경주 계림 (慶州 桂林), 사적, 경북 경주시 교동 1
이 숲은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경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신라 탈해왕(탤해왕) 때 호공(瓠公)이 이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나뭇가지에 금궤(金櫃)가 빛을 내며 걸려 있었다. 이 사실을 임금께 아뢰어 왕이 몸소 숲에 가서 금궤를 내렸다. 뚜껑을 열자 궤 속에서 사내아이가 나왔다하여 성을 김(金), 이름을 알지라 하고, 본래 시림(始林) 구림(鳩林)이라 하던 이 숲을 계림(계림)으로 부르게 되었다. 경내의 비는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워진 것으로 김알지 탄생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안내문, 경주시청, 2009년)

<출처>

  1. 안내문, 경주시청, 2011년
  2. 국가문화유산포탈, 문화재청, 2022년
  3.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소, 2022년
  4. 삼국사기 권 제1 신라본기 제1,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국사편찬위원회, 2022년
  5. Cultural Heritage Wiki, 문화재청,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