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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박물관특별전, 실경산수화] 그림과 지도사이

조선시대에는 군사, 행정 등의 목적으로 회화식 지도가 많이 그려졌다. 그림에는 산과 물, 사람과 건물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산수화를 연상시키면서도 도로와 건물, 지명과 방위 등 지도에 필요한 요소들이 반영되었다. 지도제작에는 주로 도화서 화원들이 참여했는데 기술적으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으며, 화원의 개성이 지도 곳곳에 반영되어 그림으로서도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선후기에는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그린 병풍이 유행하기도 했다.

<강릉 모선재>

<천연정>

<대관령>

<월정사>

<월정사 사고>

금강산과 관동의 명승(金剛山圖券),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금강산과 관동지역을 그린 두루마리의 일부분으로 강릉의 모선재(慕先齋)와 천연정(天淵亭), 대관령, 오대산 월정사와 사고를 그렸다. 이 그림은 김홍도가 1788년 정조의 명으로 그린 실경산수를 후대의 화가가 옮겨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김홍도는 서양화의 원근법을 활용해 현적 경관을 그려내었는데, <사고>와 같은 일부 장면은 회화식 지도의 부감법으로 지세를 알기 쉽게 표현했다. <모선재>는 김홍도의 원본에 없었던 장면이 추가된 것으로, 지리 정보를 지도에 가깝게 그려 넣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기성 전경(서쪽)>

<기성 전경(가운데)>

<기성 전경(동쪽)>

기성전경(箕城圖), 작가미상, 조선후기, 종이에 색
평양은 상나라 말기 성인 기자가 건너 왔다는 전설에 따라 기성(箕城)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이 그림은 주요 건물의 명칭과 지명을 표기한 점에서 지도와 비슷하지만, 낮은 수평 시점으로 실경의 느낌을 잘 살렸다. 안개에 가려진 듯 지붕만 보이는 건물과 옅은 색으로 그린 아스라한 원경은 서정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날카로운 필선과 부분적으로만 짙게 채색한 수법에 18세기 이전의 고식 실경산수화의 영향이 남아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평양성 전경(서쪽)>

<평양성 전경(동쪽)>

평양성 전경(平壤城圖),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평양성과 대동강을 여덟 폭에 이어 그린 병풍으로 제1폭이 결실되었다. 평양은 내성과 외성으로 구ㄱ획되었으며 성벽을 따라 부벽루(浮碧樓)와 연광정(練光亭) 등 대동강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누정이 이어져 있다. 이 병풍은 평양성의 시가지와 주위의 광활한 공간을 지도처럼 묘사했다. 19세기에는 태평성대를 구가하는 대도시를 그린 대화면 병풍이 널리 유행하였다. 배에 탄 사람들을 희색 점으로 표현하는 등 전형적 평양성도에 비해 생략이 두드러진다. 이는 원본을 여러 차례 베켜 형식적으로 변모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화성 전경>

<화성 전경 중 행궁 부근>

화성 전경,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색
화성은 1794 ~1796년에 정조의 명으로 건설되었으며 군사 요새이자 농업.상업 중심지로 계획된 도시였다. 이 그림은 제6폭의 서장대(西將臺)와 행궁(行宮)을 중심으로 성곽과 화성유수부 일대를 조망하였다. <<화성성역의궤>> 중 <화성전도> 도설의 구도를 차용하였고, 성바깥의 풍광에도 넓은 화면을 할애하였다. 성 밖의 물길과 넓은 논밭은 수리시설을 정비해 비옥한 농토로 거듭난 화성 일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 안의 연못과 정자는 화성이 한성 못지 않은 문화적 도시임을 천명하는 듯하다. 우측 상단부터 지지현(遲遲峴) 고개를 남어 장안문을 지나 행궁으로 향하는 국왕의 행차가 이어지며, 곳곳에서 활쏘기와 군사훈련을 비롯한 행사들이 벌어지고 있다. 행궁 위쪽에 1801년 건립한 정조의 사당인 화령전이 그려져 있어 정조 사후에 제작된 그림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한양전경,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북악산이 가운데 솟은 한양 시가지를 그린 것으로, 남산 자락에서 조망한 경관이다. 원각사 십층석탑과 창덕궁 인정전의 중층 건물은 단층집 사이로 두드러지게 표현되었다. 경봉국 터는 숲이 우거져 있어 1868년 경복궁 중건 이전의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오른쪽의 삼각산과 도봉산 연봉은 엷은 색으로 그려 공간감을 나타내었다. 북악산을 중앙에 우뚝하게 그리니 구도는 회화식 지도와 유사하다. 화가는 민가가 가득 들어선 한양의 도시경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하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남한산성을 그린 지도,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경기도 광주에 자리한 남한산성의 전모를 그린 회화식 지도이다. 서울 방어의 주요 거점이었던 남한산성은 1597년 쌓기 시작해 1626년까지 대대적으로 수축되었다. 이 지도는 보는 방향에 따라 산세와 건물의 각도를 달리하여 그렸으며 방어시설과 도로를 상세하게 표시하였다. 산은 부드러운 윤곽선과 미점으로 산수화처럼 표현하였다. 동문 밖 초현(草峴)으로 넘어가는 길목에는 ‘검복평주막(黔福坪酒幕)’이라 표기되어 있어 당시 교통로와 상업 발달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서문과 수어장대가 위치한 서쪽 일부는 결실되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칠보산(七寶山圖),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비단에 색>

<칠보산 (서쪽)>

<칠보산(가운데)>

함경도 명천군에 위치한 칠보산을 그렸다. 칠보산은 기기묘묘한 바위가 깎아 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름 높았다. 이 그림의 산수 형상은 한시각이 그린 <<북관수창록>>의 <칠보산전도>와 유산하여 조선후기에 칠보산을 그리는 일정한 법식이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화가가 실경에 상상을 더한 결과 천불봉은 석불을 닯은 수많은 바위가 쌓여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지명을 별지에 써서 붙이고 경물을 나열한 형식은 회화식 지도와 서로 통한다. 화면에 남은 들의 흔적으로 보아 원래 여덟 폭 병풍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금강산,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말 ~20세기 초, 비단에 엷은 색>

금강산과 해금강의 넓은 권역을 포착한 병풍 그림이다. 전도식 금강산 그림은 일반적으로 왼쪽에 내금강을, 오른쪽에 외금강을 그리는데 이 병풍은 가장 왼쪽에 외금강의 구룡폭을 그리고 오른쪽에 내금강 만폭동 계곡을 그려 놓았다. 삼일호와 총석정 등 해금강 권역의 명승을 내금강에 이어지듯 그린것도 실제 지리와 다른다. 지리정보에 착오가 있고 묘사 솜씨도 다소 서투르지만, 지도와 같이 금강산 전역을 담은 병풍이 민간에서도 유행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서울지도, 작가 미상, 조선 18세기 후반, 종이에 엷은 색>

조선의 수도 한성부 일대를 그린 회화식 지도이다. 한양성곽은 북쪽으로 북악산, 인왕산, 낙산을 휘감고 남쪽으로 목멱산을 두르고 있다. 북쪽으로는 북한산과 도봉산, 박석고개까지 지도에 등장한다. 한강 이남은 표현되지 않았다. 빈 터로 남은 경복궁, 종묘와 이어진 창덕궁 영역이 잘 묘사되어 있다. 1776년 건립된 사도세자의 사당 경모궁이 모이며 1785년 설치된 장용위가 기재되지 않아 정조 재위 초반의 상황을 보인다. 산수 표현에는 정선의 실경산수화 영향이 엿보이며 삼각산에서 북악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잘 드러나 있다. 행정구역을 표시한 실용지도인 동시에 왕조가 창성할 명당이라는 한양의 상징을 담은 그림이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동대문 밖 마장원을 그린 지도, 작가 미상, 조선 19세기 전반, 종이에 엷은 색>

나라의 말을 기르더너 마장(馬場)과 이를 관리하는 관청인 마장원(馬場院)을 묘사한 지도로, 살곶이 일대에 해당한다. 울타리 바깥의 산세는 꽃잎처럼 바깥쪽으로 눕혀 그렸는데, 동쪽으로는 용마봉과 아차산, 서쪽으로는 배봉산 자락의 구릉이 경계가 된다. 화면 아래쪽 근경에는 수목이 우거진 언덕에 마장원 건물과 화양정이 들어서 있고, 서쪽 구릉에 말의 건강을 기원했던 마조단(馬祖壇)이 그려져 있다. 울타리 안 갈포지(葛浦池)는 말이 목을 축이던 곳이다. 마장원은 1846년 익종의 능인 수릉을 천장산에서 용마봉으로 옮겨옴에 따라 폐지되었으므로 그 이전의 지도로 볼 수 있다. 김홍도 실경산수화의 영향을 받은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 묘사의 사선 투시도법과 섬세한 선묘가 돋보인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하회와 안동의 명승, 이의성, 조선 1828년, 종이에 엷은 색>


<1폭 도산서원>


<2폭 안동부치>


<3폭 석문정>


<4폭 수동>


<5폭 망천>


<6폭 하회>


<7폭 구감>


<8폭 지보>

경상도 안동 일대의 경치를 그린 실경산수화에 시와 발문을 더한 병풍이다. 제2폭부터 도산서원, 안동부치(安東府治), 석문정(石門亭), 수동(壽洞), 망천(輞川), 하회(河回), 구감(九潭), 지보(知保)의 순으로 실경이 표현되었다. 16세기 문인 유중영은 고향 안동의 산수를 그림으로 그리게 했고, 정유길과 이황이 시를 붙였지만 전란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약 200년 후, 유중영의 후손 유철조가 강원도 고성 군수로 재임할 떄 정유길의 후손인 강원도 관찰사 정원용을 만나 옛 일을 떠올리며 그림과 시를 합친 병풍을 꾸미기로 하였다. 그림은 마침 강원도 흡곡 현령으로 와 있던 문인화가 이의성에게 부탁하였다. 이의성은 실경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지도를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감법으로 내려다 본 시점과 다소 도식적인 경물 표현은 회화식 지도의 영향을 보여준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통영지도 (서쪽, 사천방향)>


<통영지도(가운데, 통영항 서쪽)>


<통영지도(가운데, 통영항 동쪽)>


<통영지도 (동쪽, 거제 견내량 부근)>

통영지도, 작가미상, 조선 19세기, 종이에 엷은 색
경상도 통영을 중심으로 주변의 거제.고성.사천.남해 지역을 하늘에서 비스듬히 내려다 본 시점으로 포착한 회화식 지도이다.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이 있었던 곳으로, 경상.전라.충청의 수군을 지휘한 통제사의 관할이었다. 지형은 실경산수에 가깝게 표현되었고 성곽과 시설물도 꼼꼼하게 묘사되었다. 이순신을 모신 충렬사와 포구에 정박한 거북선은 이 지역의 역사 정보를 전달한다. 통영성 남문인 청남루 밖의 물화전(物貨廛), 미전(米廛) 등의 점포가 늘어서고 포구에 배가 들어찬 광경은 조선후기 상업과 도시의 발달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조선시대에는 지방 군영에 그림과 지도를 담당하는 화사군관을 두었다. 이 병풍은 군사.행정용 지도이면서 산수화의 역할을 겸한 작품으로 통영에 배속되었던 화사군관이 그렸으르 가능성이 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

그림과 지도 사이
여기, 지도인지 산수화인지 선뜻 구분하기 어려운 그림들이 있습니다. 도로와 건물, 지명과 방위를 나타낸 방식은 지도처럼 보입니다. 아름다운 산과 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 폭의 산수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조선시대 지도 제작에서 그림은 도화서 화원들의 몫이었습니다. 화원이 그린 ‘회화식 지도’는 지리정보를 충실히 담으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불러 일으킵신다. 국토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려 한 점에서 회화식 지도는 경산수화와 통합니다. 지도와 실경산수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닮은 골이 되었습니다. 조선후기에는 병풍 형식의 도시 그림도 유행하였습니다. 한양, 평양, 진주와 같은 유서깊은 도시는 물론, 신도시 화성의 전경도 지도처럼 펼쳐졌습니다. 부산과 남해, 함경도와 같은 변방의 강산도 아름답게 표현되었습니다. 국토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회화식 지도를 통해 옛 사람들이 현실에서 찾아낸 이상향으로 떠나보시기 바랍니다. (안내문, 중앙박물관특별전, 2019년)